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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rame Feb 04. 2016

여수의 사랑

아름다운 슬픔과 마주한다.

"오랫동안 여행하다가 돌아온 사람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피로와 너그러움이 그녀의 얼굴에 저녁 역광 같은 따뜻한 그늘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풍부하고 깊은 묘사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문장에선 슬픔과 괴로움, 고통, 절망, 고독과 외로움이 듬뿍 묻어난다. 하루를 겨우 버텨낼 수밖에 없는, 나보다도 젊은 등장인물들은 너무도 여상스럽게 그 삶을 이야기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과장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애써 피하려고 했던 비참하지만 실존하는 삶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그는 늦은 밤에 숲을 헤매다가 덫에 걸린 짐승과 같았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그는 덫에 걸렸다. 그는 새벽을 기다렸다.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으므로 울부짖고 신음하는 것에마저 지쳐버렸으므로 이제 그는 날카로운 덫에 찢겨 피가 흐르는 다리를 핥으며 기다렸다."


문장을 곱씹으며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한다. 숨기고 싶은 미숙함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점을 바라본다. 깊은 상처에서 배어 나오는 듯 한 슬픔을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따뜻한 문장에 나는 말문이 막힌다.

"저문 하루를 향하여 우뚝우뚝 솟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정환은 보았다. 나무의 뼈대는 아름답구나. 정환은 그 사이의 짙푸른 하늘에, 거기에 떠오른 한 점 별에 넋이 나가있었다. 하늘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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