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육아일기
아들내미 생후 273일 (2022.01.10)
" 이유식은 데워놨고, 냉장고 첫 번째 칸에는 오빠 먹을 거 챙겨놨고, 두 번째 칸은 산이 꺼야,
치즈도 먹이고 요플레도 먹여, 갔다 올게, 사랑해 "
사부작사부작 아침 5시 30부터 괜스레 내가 걱정 반 긴장 반 상태로 설거지하고, 젖병은 젖병소독깅에 넣고 돌리랴 정작 출근해야 하는 나는 고양이 세수하고 대충 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은 남편이 독점 육아(?) 하는 날이라 괜히 내가 더 분주했다.
베이비시터분이 오늘 개인 사정으로 쉬는 날이다.
연초에 변경되는 일들이 많아 당분간 팀장님이 휴가자 없이 일을 하자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라 나는 쉴 수 없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본인이 연차 쓰고 아들을 돌보겠다고 흔쾌히 말했던 날이 드디어 와버렸다.
" 안 떨려? "
" 지난번에는 떨렸는데... 오늘은 괜찮아"
" 오~~~ 이번에도 어머니 찬스 쓰라니까..."
" 싫어, 혼자가 편해"
두 달 전, 주말 코로나19 상황실 당직근무로 일을 하게 되면서 주말에 아들을 돌 본적이 한차례 있었지만
시어머니가 와서 봐줬던 터라 수월하게 육아를 했던 적이 있는데...그땐 티안냈만 엄청 떨렸었다고 핬는데
이번에는 무슨 자신감인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고 출근 잘하고 오라고 하는 남편을 뒤로
'그래, 아빠가 설마 아들을 굶기기라도 하겠어, 괜찮아, 괜찮아'
애써 걱정 반 긴장반되는 내 마음을 집에다 두고
기저귀로 꽉 찬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들고 출근했다.
회사에 출근해서 틈틈이 CCTV로 남편과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라 이 사람 봐라, 육아 고수 아냐...'
나랑 같이 있을 때는
아들을 안고 있다는 핑계로 리모컨 갔다 줘, 물 좀 갔다 줘, 아기띠 메는 거 도와줘, 쉴 틈 없이 나를 부르더니...
혼자서 척척 여유 지게 하고 있다.
이유식도 다 먹이고, 얼굴, 손도 씻기고 로션도 발라주고, 기저귀도 척척 갈고
둘이서 책 가지고 노는 모습도 보인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아들을 잘 재운다.
한번 재웠다 하면 2시간씩 잔다. CCTV 넘어 울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다.
참내,
(나도 모르게 참내를 연거품 내뱉고 있다. )
이 감정 뭐지...?
아빠랑 아기랑 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걱정돼서 아침에 부랴부랴 다 챙겨놓고 나왔으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아기를 잘 돌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 아 이럴 때, 남편도 고생 좀 해봐야 하는데... 너무 수월하게 육아하면..
내가 힘들다고 아우성쳤던 게 왠지 엄살 부린 것처럼 될 것 같아 '
나오는 마음의 소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무탈하게 아이랑 같이 독점 육아해줘서 고맙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양가감정이 드는 알 수 없는 이 마음을 흘려보내고,
남편에게 칭찬 샤워해 줄 마음만 가지고 퇴근 후 집으로 향한다.
" 최고 신랑, 최고남편, 최고 아빠네~~~"
" 잘한다 잘한다 하니 진짜 잘한다."
" 역시~육아 고수 아냐~"
남편 입이 귀에 걸리고 어깨뽕이 송곳처럼 솟아오르는 남편.
하루 종일 본인이 어떻게 육아를 했는지 쉴 틈 없이 수다를 떠는 남편 모습을 보며...
그래, 칭찬! 하며 살자.
엄마 된 지 273일 차일뿐인데...
서툴고 어설프지만 잘하고 있다고
남편한테 해주듯... 과장해서라도 나한테 칭찬해주며 나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