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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띠 Oct 09. 2020

내 안의 상처를 위로하는 법

내 안의 젖은 낙엽, 꺼내어 말리기




어느 가을, 길가에 홀로 오뚝 서 있는 나무를 마주했다. 가지 끝에 대롱 매달려 있는 이파리는 여름 내내 품었던 푸릇함을 꺼내어 놓고는 자신을 말려 낙엽이 되었다. 마음속 아주 고요하고 깊은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텅-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 같은 요즘, 이 계절의 변화도 내게는 그냥 다가오는 법이 없다. 나는 요즘 내 안에 깊숙이, 그리고 아주 은밀히 자리하고 있는 무언갈 꺼내어 보고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쉬이 다독여지지 않지만 한 걸음씩 다가가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려 애쓰고 있다.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또 멀어지지만 내 마음에 들어찬 그 응어리들을 그저 묻어만 두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한두 가지쯤 저마다 아픔을 지니고 살아간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아주 공공연한 것이든, 아니면 나 혼자만이 마음속에 아주 은밀히 품고 있는 것이든- 그게 어떤 종류든 내 안 깊은 곳에 상처를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충분히 위로받고 공감받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탈을 일으킨다. 어느 때인가 불쑥- 그때 그 녀석이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난다. 아니, 나타나기만 하면 다행이지 끊임없이 괴롭히고 심지어 나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려면 충분한 시간과 세심한 어루만짐이 필요한 법인데, 그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눈에 보이지 않도록 성급히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흔적만 남았다. 그 당시엔 상처를 받아들일 힘이 없었다. 나는 연약하고 미숙했다. 그저 피하는 걸로 잠시 괜찮아지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가려버렸다. 상처 받은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기는 커녕, 그저 덮어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버렸다. 그리고 그 녀석은 어느새 손쓸 수 없이 커져버렸다. 나를 압도했고 어느 날엔 삼켜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꺼내어 말리는 것



몸집이 커져버린 이 녀석 앞에서 또 힘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했다. 그리고 이제 이런 나를 그저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이러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나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려 한다. 나는 내가 깊이 상처 받았던 그 아픔의 장소와 시간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어쩌면 다시 떠올리는 게 나를 더 고통스럽고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모든 두려움과 고통의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하지는 않으려 한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질책하고 꾸짖었던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멀찍이 바라보고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장 소중한 아이를 대하듯 온 몸으로 껴안으려 한다. 그때의 내 감정에 공감해주고 고생했다, 애썼다- 모든 게 다 괜찮다, 그저 다 괜찮다고 따뜻하게 꼭 안아주려 한다.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말리는 것*. 자신을 말려 낙엽이 된 저 이파리처럼- 우리의 아물지 않은 상처들도 꺼내어 보듬고 위로해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내 안의 젖은 낙엽을 꺼내어 말리면 여름엔 또 푸릇한 새 잎이 돋아나겠지.



* '기역띠'의 브런치에서 '민샤'님의 댓글 일부를 발췌하여 사용하였습니다.

* 기역띠의 브런치: brunch.co.kr/@puplegr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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