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아픈 여자들, 미셸 렌트 허슈(2022)

by 백선영

젊고 아픈 여자들의 서사를 떠올릴 때마다 활동하면서 만난 많은 선배들과 동료들이 생각난다. 사회 운동을 경력으로 한다기에는 쑥쓰러운 이야기지만, 출산후 5년 말고는 늘 활동 언저리에 있었던지라 일하다가 얻는 아픔이나 고통이 낯선 소재가 아니다. 여타의 직업이든 내가 의식이 있어서 하는 운동이든 현실과 자아의 불일치는 어디에서나 겪는 것 같다. 굵직한 활동 단체에서 역할을 하다가 지쳐서 쉬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나로서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픈 내가 문제인가?' 라는 질문을 여러 순간 했었던 것 같다. 쉬고 있는-물론 공부도 꽤 힘든 노동이라 주장하고 있기에 장애학 공부와 불충분한 청소년 돌봄을 병행하는 중이지만- 지금은, 어느덧 암이나 중증의 질환 등을 겪고 있다는 또래의 친구나 선배 언니들의 소식이 종종 들리는 나이가 되었다.


작년에는 고등학교 내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생을 달리했다. 친구는 국내 매장이 가장 많다고 하는, 세계 굴지의 커피 체인 매니저로서 오랫동안 일했다. K-장녀로서 생계의 주요 부분을 책임지던 친구, 조동진과 유재하를 좋아하고 뮤지컬 배우를 하고 싶다던 그 친구의 부재가 내게 준 충격은 컸다. 공황장애가 있다고 했을 때는 누구나 겪는 것 아닌가 하다가, 함께 모임을 못할 정도라고 할 때는 많이 힘든가보구나 생각만 했었다. 백혈병이라고 할 때 너무 놀랐지만 아직 사십대 초반이니 치료 받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었나보다. '우리는 젊잖아, 그래 젊은 나이니 이겨낼 수 있어!'


퀴어 작가 미셸 렌트 허슈가 여러 몸의 변화를 잇달아 겪으며 마주한 일상을 기록한 ‘젊고 아픈 여자들’의 원제는 'invisible'이라고 한다. 사회가 젊음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는 생기, 낙관, 탄력, 매끄러움 같은 고정된 것들이다. 여성이라면 여기에 억압적인 젠더 규범이 추가된다. '젊은데 어쩌다' 같은, 나조차도 떠올렸던 통념은 젊은 여성이 아파서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까지 가 닿지 못한다. 젊은 여성들이 겪는 아픔이라는 실재는 보이지 않고, 젊은 여성의 몸에 부여된 구태의연한 인식들은 매우 보편적이라는 걸 당사자들의 삶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퀴어, 비백인, 노동자 등-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내러티브 속에서. 스스로 유방암을 진단한 사람이 계속 병원에서 본인의 증상을 설명했지만 검사 결과상 나오는 게 없어 번번이 돌아오다가, 결국 얼마 안 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했던 이야기는 비슷하게 우리 주변에서 목격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소위 '전문인'에게 부여된 권위와 권력으로 당사자들의 호소는 묵인되는 사례, 남성 의료인들이 여성 환자에 대해 가진 태도들, 의료 행위 중 성폭력 가해 사실이 월등히 높은 수치들은 어찌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없을까 혀를 끌끌차게 한다. 남성중심 가부장적 사회,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의 사회, '전문인-의료권력' 중심의 사회가 어떠한가를 밝히는 데에, 현현한 실체를 가진 당사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사회에 전하는 것이 유용한 전략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이 갖는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반올림에서 ‘몸’을 주제로 한 책 읽기를 한다고 해서 선뜻 참여하고 있다. 우연히도 다수가 여성활동가들인 모임이고, 두번째로 읽은 이 책의 주제처럼 통상 젊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여러 표지와 상징적 의미들을 즐거우면서도 깊이 있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젊은 여성은 신체적 취약성이란 표적이 되기도 한고 보여지는 것-성적인 매력까지-에 항상 평가당한다. 또한 재생산 도구로써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건강과 보호'의 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 'K-장녀' 프레임까지 얹힌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질병 경험에 대한 수많은 모욕과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결국 자리에 참여한 모두가 한번씩은 겪었을-의 끝을 맺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양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다 보니, 장애와 질환 사이의 경계를 뚜렷하게 갖고 있는-마치 질환을 갖고 있는 몸의 복잡함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장애로 규정하기에는 상당히 망설이고 있는-분들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장애연금 받는 사람들을 의존적이기만 한 사람'으로 규정하거나, 장애를 상당한 불가나 부존재 같은 정의로 정체화하는 느낌을 주는 문장들을 발견했을 때는 솔직히 읽기가 어려웠다.

요즘 나의 화두는 '환자가 자신의 통증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가?'와 더불어 '통증과 현존하는 자신의 삶을 아픔과 질병을 터부시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이기도 하다. 책에 거론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암에 걸린 젊은 여자가 "아침에 출근할 때 암은 문 앞에 놓고 사무실로 들어오기 바랍니다" 따위의 상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아 보이도록 미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이야기다. 아픈 몸들이 개개의 공동체 혹은 사회의 진입장벽에 부딪힐 때 감춰야 하거나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거나, 과잉 동정을 받거나 혹은 아예 무시되거나 등등의 상황들이 펼쳐질 때, 실재하는 고통과 부정적인 질병서사 사이의 균형 같은 것들을 왜 당사자들만 고민하고 있었던가. 주변에서는 어떠한 관계 맺기가 필요한가. 결국 사회에 던져지는 관계의 교훈들에 착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통을 존중하면서도, 너무 부정적으로 낙인화하지 않은 채 힘과 위로를 전하는 몫들.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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