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다양성과 장애

기후위기, 종다양성, 장애에 대한 고민

by 백선영



인간이 지구를 위계적으로 지배하는, 인간만을 위한 지극히 편안한 삶의 양식들이 보편화된 것은 인간 개인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갖는 생존본능 때문인 걸까. 체제가 강제하는 생태 파괴는 산업화만이 아니라, 그 이전 인류의 농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데.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에서 시작된 인간의 생산활동, 파괴를 줄이면서 소규모의 생산을 강제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 필요로 인정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인간을 위한 케이블카, 스키장, 골프장 같은 자연을 여가의 대상으로 즐기기 위해 대규모 자본이 동원되고 산을 깎아내고 농약과 인공 눈을 퍼붓는 이런 건 없애야 한다는 것, 욕망도 자본주의적으로 구조화될테니 이런 시설들은 없애면 되는데...




인간에게 거의 생래적으로 존재하는 이용의 욕구, 도구화의 관습 같은 것 말이다. 체제를 바꾸면 획기적으로 바뀔까. 개개인에게 남아 있는 습속, 철학-사상부터 너무 촘촘히 디자인된 "인간 우위의" 사회, 이러한 인간 우위는 마찬가지로 장애가 없는 수퍼유전자 사회를 노리고 있기도 하다.




진흙과 흙탕물을 먹으며 버티기도 한다는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본래 덥고 가뭄이 심해서 식량을 구할 수 없는 것인가. 기후위기가 집중적으로 노리는 지역, 특히 온난화에 취약한 적도 부근의 국가와 사막 등 식량 생산이 어려운 자연적 조건 하에 놓인 지역들이 치명타일테다. 자연적 조건이 그 지역에 장애인 셈.




인간 생태계는 어떠한가. 다양한 인간 종이 어우러져 살아야 마땅할 터인데, 히틀러나 그리는 불가능의 도식이 인간이 지구를 점령한 것과 같은 속도로 이미 사회를 점령하고 있다. 결함이나 불편으로 읽혀오고 명명된 많은 유전자들이 제거되는 현상.




공존을 위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야 절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으로, 능력 효율 안전과 같은 가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이를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가능했던 인간 우위의 사회, 바꾸려 한다면 그러한 가치들을 퇴행으로 읽어야 한다. 과연 그렇게 읽히는 시대가 올까. 우리가 무엇을 수단 삼지 않고 모두가 그 자체로 목적인 어떤 삶들을 누리게 하는, 그런 시대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