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낭만의 유체과학사
판타 레이, 모든 것은 흐른다
과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기초 상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봐도 재밌는 책이네. 천체의 움직임-근본적인 운동 역학은 에테르라는 매질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믿었던(매개하는 물질이 있어야 힘이 전달된다는 논리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과학적일테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과가 떨어진다는 게 더 미신 같았을 테니까) 소용돌이-보텍스에 근거한 유체역학을 따랐던 데카르트와 논쟁을 벌이던 뉴턴도 에테르를 전제하고서 만유인력을 설명하려 했었으니.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수학적 증명으로 우주를 설명하려 했던 뉴턴의 방식은 향후 과학적 방법론과 패러다임의 기반이 된다. 판타레이의 시작점은 여기서부터. 근세의 과학자들에게서 근현대로 오기까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는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짚는다. 저명한 과학자, 철학자, 혁명가, 예술가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얽혀있다.
사실 과학사의 발전은 체제를 뒤엎는 혁명, 제국의 진행과정에서 전개되는 전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대체로 과학자들은 (구)공화파-혁명파들이지만 라부아지에처럼 화학에서의 혁명적 발견들을 이뤄낸 과학자는 적폐 조폐국장이라며 단두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고.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던 저명한 과학자들은 신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최대 과학 강국이었던 독일은 최악의 전범국이 된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과학 기술들의 집적으로 돈을 벌고, 그 막대한 돈이 돈을 불려 금융자본이 되고 결국 산업자본을 먹는 형태로(지금처럼) 과학 엔지니어들이 자본가가 되어 시대를 주름잡고 세계를 군림한다.
에테르라는 전제가 뒤집혀진 것은 꽤 늦은 19세기후반 20세기 초반, 여러 물리학자의 실험에 거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우주 공간을 채우는 빛의 매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공 상태에서도 빛은 전달된다'는 게 밝혀지며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다. 저자는 왜 유체역학의 역사로 접근했을까, 뉴턴식으로 말하면 매우 어려운 수학공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고, 미시세계에 집중되어 있는 물리학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는데(양자역학의 선구자라 하는 하이젠베르크도 난류를 공부하다 바로 때려쳤다는). 허구적 개념인 에테르가 근대까지 상당기간 과학자들을 지배하면서 얻어낸 결과들과 그것이 부정된 현재, 동력이 되고 있는 유체역학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를 보면 뭔가 연관성이 있을까. 과학은 과학 자체로만 남겨지지 않고, 수많은 영역들과 교류하며 지평을 넓혀왔다는 사실. "모든 것은 흐른다"의 의미 또한 순수과학 따위로 온존해오지 않고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온 과학의 역사성, 시대와 세상만사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의 산물이라는 것.
일단 재밌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음. 개념들을 깊이 있게 알면 더 재밌었겠는데 그러지 않아도 재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