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 하면 당연히 극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건강함은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값이 되어버린, ‘문제없는’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구조 속, 불평등한 건강권이나 아픈 몸이 전유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폭로는 심심찮게 등장하는 서사다. 자본주의 가부장제 체제 속에서 이상화된 몸이라는 전제, 사회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은 특정 몸으로 표상된 특정한 주체들에 대한 억압으로 드러난다. 젠더화,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배제와 차별 등-정상성에 가까운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몸이 억압의 기제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몸을 수단화하는 사회이면서 동시에 몸에 갇힌 사회의 단면들을 이야기한다. 불안한 사회가 만드는 몸, 경제적 궁핍-불평등이 만드는 몸, 폭력 권력 전쟁 트라우마가 새겨진 몸, 문화에 따라 국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몸, 사회의 규범, 문화, 습속 등에 익숙해진 몸들.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철저히 사회, 문화적 상호작용의 산물인 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먼저 몸은 절대 보편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라는 렌즈로 굴절되고 있다고 말한다. 몸에서 느끼는 통증은 얼핏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감기조차도 병원에 가며 약처방을 받지만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웬만한 감기 가지고는 처방조차 어렵지만 항우울증 등 정신과 약물에 대한 처방률이 상당히 높다. 우울증 등의 정신적 통증을 병리화해온 역사가 상대적으로 오래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의료체계나 가치, 문화에 따라 통증은 보편적이지 않다.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다. 죽음은 나라는 주체의 소멸일 뿐인 서양의 가치관과는 다르게, 전생과 현생이 이어진다고 믿으며 오로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이나 혈연에서 내 삶이 나뉘어졌다는 믿음을 가진 동양 문화권에서 과학적으로 납득키는 어려운 치유의 풍속이 남아 있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보다, 그저 몸으로 함께 느끼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대는 몸을 증강시키는 시대라고도 말한다. ‘약물화된 자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대입 같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약물을 먹는 수험생, 마약에 중독되는 민중들, 고된 노동을 이기기 위해 설탕에 중독되는 이들, 식민화의 산물로 담배를 알게 된 남미에서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담배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이들 등. 치열한 경쟁과 폭압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몸을 증강시킨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썼던 역사에서, 역으로 몸이 변혁시킨 사회에 대해서도 말한다. 체념증후군은 실제 난민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집단적인 심인성 질환으로 난민 통보를 받으면 나아진다는 관찰 결과가 있다. 꾀병 같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절 상태에 이르러 혈압과 맥박도 떨어지는 꽤 심각한 질병이라고 한다. 불안정한 삶에서 오는 몸의 고통이 집단적으로 보고된 사례다. 난민 거부가 얼마나 참혹한 현실에 이르게 할지 몸이 기억하고 반응했던 어린이들의 사례를 통해 난민을 통제하려던 스웨덴은 난민들을 대거 허용하기도 한다. 이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몸이 기억하고 말하는 폭력은 현현하다. 트라우마는 이제 흔한 말이 되었다. 몸을 혹사시켜야만 생존하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 더 이상 그런 세상의 논리가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들 사이의 연결. 존엄과 연대가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도 똑똑하게 몸들은 보여준다.
사회가 개개의 몸에 거주하고도 있다고 말한다. 현실에 적응하고 저항하는 몸이라는 개체, 이제 몸이라는 집 안에 사회가 온 세상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 몸의 자세가 곧 문화라는 단언이 흥미롭다. 사회가 수치심을 통해 몸에 대한 규범을 문화적으로 처방해왔다는 것이다. 생애주기, 통과의례, 시시때때로 규범 내에 위치지어지는 몸. 몸은 보이는 것이고, 보이기에 수치심이 들러붙기 쉬우며 규범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요소로 선택된다는 돌레잘의 논리를 반영한다. 오랫동안 심신이원론으로 전개되던 서양철학의 역사에 획을 그은 메를로 퐁티는 결국 몸이 매개하는 감각의 문제를 짚지 않고 바로 인식의 주체를 논하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사고란 몸과 뚜렷이 구별되는 마음(정신)에 의해 구조화된 일련의 명제가 아니다. 애초에 신체적 습관이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몸에 대한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 관계 속의 몸, 등급화된 몸, 경계에 있는 몸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아파도 되거나, 아프면 안 되는 몸에 대한 계급적 단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장애인의 몸, 젠더이분법에 갇힌 퀴어의 몸 등 숱한 경계 위에 있는 몸들.
종국적으로 문화적 시공간 위에서 흘러 온 몸은 단지 시간의 흐름이나 서사가 아니라 순서(드라마) 위에 놓여 있다 주장한다. 현실과의 조우, 갈등, 생존을 위한 분투와 저항 등 결국 순행이든 역행이든 순서를 따라가다 결국 소멸로 끝나기 때문이다.
*금욜에 있을 반올림 책 모임, 요약 겸 인상적인 점들 기록.
책은 짧지만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 읽어볼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