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욥기 묵상

욥기 9장

아직도 내 모든 고난이 두렵습니다.... _욥9:28

by 제이프릭

1 그러자 욥이 대답했습니다. 2 "그 말이 맞는 줄은 나도 물론 아네. 그러나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는가? 3 제 아무리 그분과 따져 보려 해도 천에 하나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네. 4 그 지혜가 심오하고 그 힘이 막강하니 그분을 거역하고도 잘된 사람이 누구겠는가? 5 그분이 진노해 산들을 옮기고 뒤집으시더라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네. 6 그분은 땅을 그 자리에서 흔드시고 그 기둥을 떨게 하시며 7 그분이 해에게 명령하시면 해가 뜨지 않으며 별빛까지도 봉인해 버리신다네. 8 그분은 혼자 하늘을 펴시고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네. 9 그분은 북두칠성과 삼성과 묘성과 비밀의 남쪽 방을 만드신 분, 10 알 수 없는 큰일들을 하시는 분, 셀 수 없이 많은 기적을 보이시는 분 아닌가. 11 그분이 내 곁을 지나가셔도 내가 보지 못하고 그분이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내가 깨닫지 못한다네. 12 이보게, 그분이 빼앗아 가시면 누가 막겠는가? 그분께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누가 물을 수 있겠는가? 13 하나님께서 진노를 억누르지 않으시면 라합을 돕는 무리들도 그분 아래 굴복하거늘 14 하물며 내가 어떻게 그분께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골라 그분과 논쟁하겠는가? 15 내가 의인이었어도 그분께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내 재판자에게 간구할 뿐 아니겠나. 16 내가 그분을 불러 그분이 내게 응답하셨다 해도 나는 그분이 내 음성을 듣고 계시리라고 믿지 못하겠네. 17 그분이 폭풍으로 나를 상하게 하시고 아무 이유 없이 내게 많은 상처를 내시니 말이네. 18 숨 돌릴 틈도 없이 쓰라린 고통으로 나를 채우신다네. 19 힘으로 하자니 그분은 힘이 세시고 재판으로 하자니 누가 그를 불러내 주겠는가? 20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요, 내가 아무리 스스로 온전하다 해도 내 입이 내 죄를 증명할 것이네. 21 내가 온전하다 해도 내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 싫을 뿐이네. 22 모든 게 다 똑같은 게야.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던가? 그분은 온전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멸망시키신다고 말일세. 23 재앙이 갑자기 닥쳐 죽게 돼도 그분은 죄 없는 사람이 시험당하는 것을 비웃으실 것이네. 24 이 땅이 악한 사람의 손에 떨어져도 그분은 그 땅의 재판관들의 얼굴을 가리실 것이네. 그분이 아니면 대체 누구겠는가? 25 내 인생이 달리는 사람보다 빨라서 좋은 것을 보지도 못하고 날아가 버리는구나. 26 내 인생이 갈대배와 같이 빨리 지나가며 먹이를 보고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 같이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27 내가 '내 원통함을 잊어버리고 내 무거운 짐을 떨어내고 웃음을 보이리라' 해도 28 아직도 내 모든 고난이 두렵습니다. 주께서 내가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29 내가 정녕 악한 사람이라면 왜 이처럼 헛되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씻어도 31 주께서 나를 시궁창에 빠뜨리실 것이니 내 옷마저도 나를 싫어할 것입니다. 32 그분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시니 내가 그분께 대답할 수도 없고 서로 대면하여 시비를 가릴 수도 없구나. 33 우리를 중재할 누군가가 있어 우리 둘 사이에 그 손을 얹어 줄 이도 없구나. 34 그분의 회초리가 내게서 사라지고 그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지 않기를 바라노라. 35 그러면 내가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위치에 있지 않구나." _욥9:1-35, 우리말성경


빌닷을 비추던 핀조명이 꺼지고 다시 욥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이번에 욥은 친구들을 향해 항변하듯 말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친구들을 넘어, 어두운 무대 허공 어딘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나 억울함을 넘어선, 경외심과 두려움, 그리고 그 거대함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인 절망감이 뒤섞여 있다. 연극의 논쟁은 이제 인간 대 인간의 차원을 넘어, 인간 대 신의 독백으로 전환된다.




욥은 빌닷의 논리를 반박하는 대신, 오히려 그 논리를 집어삼켜 더 거대한 절망으로 확장시킨다. "그 말이 맞는 줄은 나도 물론 아네." 그는 친구들의 말처럼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단순한 인과응보의 근거'로 삼았지만, 욥은 그 전능하심을 '소통 불가능한 절대적 격차의 근거'로 삼는다. 산을 옮기시고 해를 봉인하시는 그분 앞에서 한낱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내 원통함을 잊어버리고 내 무거운 짐을 떨어내고 웃음을 보이리라' 해도 아직도 내 모든 고난이 두렵습니다. 주께서 내가 죄 없다고 하지 않으실 줄 내가 알기 때문입니다. _욥9:27-28


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얼마나 완전하신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아무리 흠 없이 살고자 애를 써 왔어도 그분 앞에서는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욥이 절규하는 이유는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고통은 '까닭 모를 고난'이다. 이 고난 앞에서 친구들은 인과응보라는 쉬운 답을 제시했지만, 욥은 그 답을 거부하고 고통의 심연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마침내 욥은 친구들의 신학적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분은 온전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멸망시키신다고 말일세." 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인과응보라는 질서정연한 세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욥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은 선과 악을 구분하여 상벌을 내리는 예측 가능한 분이 아니라, 때로는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두렵고 불가해한 주권자이시다.


이 거대한 절망 속에서 욥의 가장 깊은 갈망이 터져 나온다. "우리를 중재할 누군가가 있어 우리 둘 사이에 그 손을 얹어 줄 이도 없구나." 전능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 그 건널 수 없는 간극을 이어줄 '중재자'에 대한 갈망이다. 그는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맞서 변론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양쪽을 화해시킬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 욥의 씨름은 이제 하나님을 떠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분과 관계를 이어가려는 처절한 외침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이해를 넘어선 관계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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