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욥기 묵상

욥기 32장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생기는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_욥32:7

by 제이프릭

1 이렇듯 욥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자 이 세 사람이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2 그러자 람족 출신인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는 화가 불끈 솟았습니다. 그가 욥에게 화가 난 것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3 또 세 친구들에게도 화가 났는데, 그것은 그들이 욥에게 반박할 것이 없으면서도 정죄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4 엘리후는 그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 그런데 세 사람이 더 이상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자 화가 났던 것입니다. 6 그리하여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여러분은 연세가 있으시니 내가 두려워서 감히 내가 아는 것을 말씀드리지 못하고 7 '나이가 말해 주겠지.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생기는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 그러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영이요,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더군요. 9 어르신들만이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니고 나이 든 사람만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나도 내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11 보십시오. 여러분이 얘기하시는 동안 내가 기다렸고 여러분이 할 말을 찾는 동안 그 논리를 내가 들었습니다. 12 물론 여러분의 말씀을 나는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한 분도 욥의 잘못을 증명하지 못했고 여러분 가운데 한 분도 그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13 그러니 '우리가 지혜를 찾았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반박하실 것이다'라고 하지 마십시오. 14 사실 욥과 내가 논쟁을 했다면 여러분이 한 말처럼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5 그들이 놀라 대답이 없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16 그들이 묵묵부답으로 서 있으니 더는 못 기다리겠습니다. 17 나도 내 할 말을 하고 나도 내 의견을 말해야겠습니다. 18 내가 할 말이 가득 차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19 보십시오. 내 속이 마개를 꼭꼭 막아 놓은 포도주 같고 새 가죽 부대와 같아서 곧 터지려고 합니다. 20 내가 말해야 속이 후련하겠습니다. 내 입술을 열어 대답해야겠습니다. 21 나는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사람에게 아첨하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22 어차피 나야 아첨하는 말을 할 줄 모르니까요. 그렇게 한다면 나를 지으신 분이 나를 곧 데려가실 것입니다." _욥32:1-22, 우리말성경


욥의 마지막 독백 이후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무대. 이 침묵을 깨는 것은 욥도, 세 친구도 아닌, 지금까지 한쪽에서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젊은이, 엘리후다. 그는 젊음의 열정과 의로운 분노로 가득 찬 채 무대 중앙으로 나선다. 그의 등장은 교착상태에 빠진 극에 새로운 활력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의 목소리는 연장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동시에 그들의 실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연극의 국면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 양쪽 모두를 비판하며 제3의 길을 제시하려 한다. 그는 지혜의 근원이 나이나 경험이 아닌 '전능하신 분의 입김'에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전까지의 모든 인간적인 논쟁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그의 등장은 이 지루한 인간들의 논쟁을 끝내고, 마침내 신적인 지혜의 등장을 예고하는 서곡과 같다. 관객들은 이제 '과연 이 젊은이가 해답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새로운 질문을 품게 된다.




'나이가 말해 주겠지.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생기는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_욥32:7

어르신들만이 항상 지혜로운 것은 아니고 나이 든 사람만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_욥32:9


나도 어릴 땐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혜가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보니 '저절로'란 없다. 그냥 저절로 나이만 먹을 경우 자칫 연륜이 아니라 아집과 독선만 커질 수 있는 것 같다.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더구나 난감한 것은,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내 생각은 어릴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는 사실이다. 연륜은 의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조절하면서 습득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자랑할 것도 아니다.


고난을 많이 겪었다고 - 겪고 있다고 - 생각하는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가 보니, 본인이 다른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여러가지 많은 고생을 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고생을 가볍게 보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산전수전을 겪었으니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고 생각하여 쉽게 조언하려 하고, 너의 고생은 내가 겪은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나 겪는 것이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한다. 본인도 그 일을 겪고 있는 동안에는 힘들어 했고 지나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건만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상대에게 위로나 힘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교만이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다시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욥의 세 친구들에게 누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겠는가? '야 그거 가지고 뭘 힘들다 엄살이냐?' '네가 잘못해서 그런거지 뭐' 하는 말만 듣게 될 것이다. 그런 나이든 이들에게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도 뻔한 답을 말하는 사람에게 찾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욥과 세 친구의 기나긴 논쟁은 완전한 교착상태, 즉 실패로 끝이 났다. 친구들은 욥을 설득하지 못했고, 욥은 친구들에게서 어떤 위로도 해답도 얻지 못했다. 인간의 경험(엘리바스), 전통(빌닷), 교리(소발)에 기반한 모든 지혜가 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낸 순간이다. 바로 이 지적이고 영적인 공백 속으로, 새로운 인물 엘리후가 등장한다.


그는 먼저 논쟁의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 욥을 반박하지도 못하면서 정죄만 한 친구들의 무능함에 분노하고,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여기는 듯한 욥의 태도에도 분노한다. 그의 등장은 이 지루한 논쟁을 지켜보는 독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엘리후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지혜의 출처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다. 그는 '나이가 지혜를 준다'는 전통적인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대신 참된 깨달음은 '전능하신 분의 입김', 즉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 지혜의 한계를 명확히 선언하고, 이제 논의의 차원을 신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할 말이 가득 차서... 곧 터지려고 합니다"(32:18-19)라고 말하는 그의 열정은 과연 순수한 신적 영감일까, 아니면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고 싶은 젊음의 조급함일까? 그 역시 "나도 내 의견을 말하겠습니다"(32:10)라고 말하며, 또 다른 인간적인 해설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닐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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