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시련을 받는 것입니다! _욥34:36
1 그러고는 엘리후가 말을 이었습니다. 2 "지혜로운 분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학식이 많은 분들이여, 내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3 혀가 맛을 보듯이 귀는 말을 분별합니다. 4 무엇이 옳은지 우리 스스로 분별해 봅시다. 무엇이 선한지 함께 알아봅시다. 5 욥이 '나는 의롭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공의를 빼앗아 가셨다. 6 내가 옳은데도 아니라고 해야겠나? 내가 죄가 없는데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7 누가 욥처럼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물 마시듯 하겠습니까? 8 그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고 악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9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라고 말합니다. 10 그러니 지각이 있는 분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전능하신 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11 그분은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고 사람이 살아온 대로 대하십니다. 1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으시고 전능하신 분께서는 절대로 공의를 왜곡하지 않으십니다. 13 누가 땅을 그분께 맡기기라도 했습니까? 누가 온 세상을 그분 손에 두기라도 했습니까? 14 만약 그분이 마음먹고 그 영과 숨을 거두신다면 15 모든 육신은 다 같이 숨을 거두고 사람은 흙먼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16 당신이 지각이 있다면 이것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17 공의를 미워하는 분이 다스리시겠습니까? 의로우신 전능자를 당신이 정죄하겠습니까? 18 그분은 왕에게라도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귀족들에게도 '너희가 불결하다'고 못하시겠습니까? 19 그분은 통치자라고 편을 들어 주지 않으시고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생각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들 모두가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이니 말입니다. 20 그들은 순식간에 죽습니다. 백성들은 한밤중에 재앙을 만나 사라집니다. 아무리 장사라도 손 하나 대지 않으시고 없애 버리실 수 있습니다. 21 그분의 눈이 사람의 행위를 지켜보시고 하는 일마다 일일이 살펴보십니다. 22 거기에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 숨을 만한 어둠도, 죽음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23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른 권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심판으로 들어가야 할 뿐입니다. 24 그분은 세력가들을 수도 없이 산산조각 내시고 그들 대신 다른 사람들을 그 자리에 세우십니다. 25 그분이 그들의 행위를 아시기 때문에 밤중에 그들을 엎어 멸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6 그분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나게 그들을 악하다고 치십니다. 27 그들이 그분에게서 등을 돌려 그분의 길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8 이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가고 결국 고난당하는 소리를 그분이 들으십니다. 29 그러나 그분이 잠잠히 계신다 해도 누가 문제 삼겠습니까? 그분이 그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분을 뵙겠습니까? 어떤 민족이든 어떤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30 이는 경건하지 못한 사람이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또한 백성들이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1 사람이 하나님께 '내가 벌을 받았습니다. 더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32 그러니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잘못했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까? 33 당신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분이 당신 생각대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내가 아니라 당신이 선택할 일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해 보십시오. 34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내게 말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들을 것입니다. 35 '욥이 무식하게 말을 하니 그 말에는 지혜가 없다'고 말입니다. 36 내가 바라는 것은 욥이 악한 사람처럼 대답했으니 끝까지 시련을 받는 것입니다! 37 그는 죄를 짓고 거기에다 반역까지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박수를 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들을 자꾸 하고 있습니다." _욥34:1-37, 우리말성경
엘리후의 연설이 이어진다. 33장에서 보여주었던, 욥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던 공감적인 태도는 사라진다. 이제 그는 지혜로운 스승이자 재판관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를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더 단호해지고, 욥을 향한 어조는 '가르치겠다'는 선언을 넘어 '심판하겠다'는 위협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장면은 엘리후의 신학이 가진 내적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그는 고난의 '구속적 목적'을 제시했지만, 결국 고통받는 개인의 현실보다는 추상적인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로써 그 역시 욥의 고통의 실체에 가닿지 못하고, 또 다른 형태의 '정답'으로 욥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반복하게 된다. 그의 젊은 열정 또한 결국 이전 세대의 신학적 오류를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3장에서 엘리후는 고난을 '회복을 위한 훈계'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34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를 변호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의 태도는 다시 세 친구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그는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신다는 명제를 지키기 위해, 그 불의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욥을 '무식하게 말하는 자'(34:35)이자 '악한 사람처럼 대답하는 자'(34:36)로 몰아세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긍정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듯했던 엘리후의 명백한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욥이 악한 사람처럼 대답했으니 끝까지 시련을 받는 것입니다! _욥34:36, 우리말성경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엘리후를 질책하지도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칭찬도 하지 않으셨다.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면 서론이 길고 자기 정당성의 주장이 강하다. 젊은 사람의 혈기를 드러내고 있는듯 하다. 그 혈기로 매우 심한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죄를 지었을 때 그에게 징벌을 가하는 문제는 철저히 하나님의 소관이다. 더구나 엘리후는 욥의 행동으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 그런데 스스로가 판사를 자처하며 시련을 더 받아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하는 것은 큰 월권이 아닐 수 없다.
욥기의 등장인물들은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적절하지 않은 때에 적절하지 않은 생각으로 내뱉을 뿐이다. 다들 무엇인가에 통달한 사람처럼 말하지만 결국 우매한 자처럼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인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욥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욥은 지금 하나님께 더욱 다가가기 위한 경계에 서 있다. 깨닫게 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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