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_욥37:23
1 "이러니 내 마음도 떨리고 펄쩍펄쩍 뛰는 것입니다. 2 잘 들어 보십시오. 천둥 같은 그분의 음성, 그 입에서 나오는 우레 같은 소리를 말입니다. 3 그 소리를 모든 하늘 아래 펼치시고 번개를 땅끝까지 보내십니다. 4 그런 뒤에 천둥과 같은 위엄 있는 음성이 울려 퍼지고 그분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5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난 일들을 하십니다. 6 그분은 눈에게 '땅에 떨어지라'고 명하시고 비에게도 '억수로 쏟아지라'고 명하십니다. 7 그분은 모든 사람의 손을 봉해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이 하시는 일을 알게 하십니다. 8 그러면 짐승들이 굴에 들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됩니다. 9 남쪽에서는 태풍이 나오고 북쪽에서는 한기가 나옵니다. 10 하나님의 입김에 서리가 내리고 넓디넓은 물이 얼어붙습니다. 11 또 두터운 구름을 물기로 적시시고 번개 구름을 널리 퍼뜨리시니 12 구름은 그분의 계획대로 운행되는 것으로, 땅의 온 지상에서 그분이 명령하시는 대로 수행합니다. 13 그분이 징벌을 내리실 때나 혹은 땅을 위해서나 혹은 은총을 베푸실 때도 비를 내리십니다. 14 오, 욥이여!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15 하나님께서 언제 구름을 움직이시고 그 번갯불을 내시는지 압니까? 16 구름이 어떻게 공중에 잘 매달려 있는지, 지식이 완전하신 분의 이런 기이한 일들을 알기나 합니까? 17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땅이 고요해지고 당신 옷이 어떻게 따뜻해지는지 압니까? 18 당신이 그분과 함께 부어 만든 거울처럼 단단한 하늘을 펼칠 수 있습니까? 19 우리가 그분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도무지 캄캄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20 하고 싶은 말이라고 그분께 다 고하겠습니까? 삼킴을 당하고 싶어서 말한단 말입니까? 21 사람들이 구름 속의 빛을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맑아지는 법입니다. 22 북방에서 금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습니다. 23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 24 그러므로 사람이 그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지혜롭다는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_욥37:1-24, 우리말성경
엘리후의 연설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무대 배경이 미묘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희미한 천둥소리가 들려오고, 순간적으로 번개가 번쩍이는 듯한 조명 효과가 나타난다. 엘리후는 마치 폭풍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자신이 묘사하는 자연 현상과 하나가 된 듯 연기한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와 겹쳐지고, 그의 손짓은 번개의 움직임을 따른다. 그는 이제 욥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경외심에 사로잡혀 신적인 위엄을 선포하는 예언자와 같은 모습이다.
이 장면은 엘리후가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설명하려는 마지막 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말이 장엄해질수록, 그리고 무대 위의 폭풍이 거세질수록, 그의 '설명'은 점점 더 무의미해진다. 그는 자신의 말로써 논쟁을 끝내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말과 그가 불러낸 폭풍은, 이제 곧 시작될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위한 전주곡이 될 뿐이다. 인간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연극은 마침내 하나님의 직접적인 등장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준비한다.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 _욥37:23
엘리후의 마지막 말이다. 여기선 이 구절을 주목해 보았다.
엘리후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분리되어 멀리 떨어지신 분이 아니다. 그런데 나아갈 수 없다는 이 부분이 정말 멀리 있기만 하다는 의미보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단순히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러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능력이 크신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는 왜곡될 수 없습니다. _욥37:23, 우리말성경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_욥37:23, 개역개정
The Almighty—we cannot find him; he is great in power; justice and abundant righteousness he will not violate. _Job 37:23, ESV
The Almighty is beyond our reach and exalted in power; in his justice and great righteousness, he does not oppress. _Job 37:23, NIV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크시니, 우리가 전능하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을 대하실 때에, 의롭게 대하시고, 정의롭게 대하여 주십니다. _욥37:23, 새번역
영문 해석을 두고 비교해 보면 find, reach 를 썼고, 우리나라 성경 번역 대부분은 찾을 수 없나니(개역개정), 나아갈 수 없습니다.(우리말성경, 새번역), 등으로 유사하다.
שַׁדַּ֣י לֹֽא־מְ֭צָאנֻהוּ שַׂגִּיא־כֹ֑חַ וּמִשְׁפָּ֥ט וְרֹב־צְ֝דָקָ֗ה לֹ֣א יְעַנֶּֽה׃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מְ֭צָאנֻהוּ 라는 단어가 그 뜻을 지니는 것 같은데 역시 '찾다'는 뜻이다. 이러면 의미가 통일성이 있다.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니라 _욥37:23, 개역한글
다만 개역한글판만 '측량할 수 없나니'로 번역을 해서 해석의 결이 달라져버린다. 찾을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고 하면 거리감 있는 하나님이지만 측량할 수 없다고 하면 거리감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고 뭔가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개역한글판의 해석에 아쉬움이 있다고 보인다. 개정판에서 수정을 잘 한 것 같다.
37장에 나온 엘리후의 말은 이제 다음장부터 등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떤 마음의 바탕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 바탕의 한 자락이 23절에 드러난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가갈 수도 바라볼 수도 없는 분이 아니다. 멀리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저 바라는 것을 정성으로 구해 얻어내기만 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우리가 아버지라 부른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가 고민을 털어놓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도움을 구하고, 든든한 위로를 얻고, 푸근한 안식처로 삼을 수 있는 분이다.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기도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의 진정한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시고, 우리의 구할 바를 이미 아시고 먼저 기도하는 분이며,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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