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다지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유독 두고두고 생각나는 몇몇 도시들이 있다. 특히 요즘들어 문득 생각나는곳이 바로 아르헨티나 코르도바라는 도시이다.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 제 2의 도시이지만 대부분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남쪽의 엘칼라파테를 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부에노스의 로망과 엘칼라파테의 미친 경치에 비교하면 볼 것 많은 남미여행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도시인게 당연한지도.
사실 나에게도 역시 코르도바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그러하듯 남미 여행에서 예정에 없던 도시였다. 하지만 볼리비아에서의 여행일정이 엉망진창이 되는바람에 얼떨결에 2일정도가 비게 되었고, 칠레 북부의 산 페드로 아타카마부터 수도 산티아고까지의 24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여정을 견딜 자신도 없었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루트가 아타카마에서 아르헨티나 살타-코르도바-멘도사를 경유해 산티아고까지 이동해가는 방법이었다. 어떻게든 산티아고만 가면 되는거지!!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방법ㅋㅋ결론적으로 말하면 남미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었느냐고? 그곳에서 내가 한거라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따뜻한 호스텔 스탭이 차려주는 소박한 조식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TV를 보다가 싸고 맛있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고, 공원에 앉아서 버스커들의 음악을 듣고, 읽고싶은 책을 읽는 그 어떤 때 보다도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그 무엇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같은 여행을 하면서 소소하게 행복했다.
빠듯한 여행밑천을 탈탈 털어 Grido 아이스크림을 매일 사먹으며,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것이란,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 동안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때 다짐했다. 그 어려운걸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겠다고
불과 그곳에 있었던 지 8개월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그 때의 시간들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득하다. 눈을 떠서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삶을 반복할때면, 그 때 다짐했던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코르도바에서의 소소하게 행복하던 일상은 왜 내 것이 될수 없는가 억울하기도 하다.
대단한 걸 바라는게 아니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저녁에는 내 삶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텐데. 이것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면 지금 내 인생은 과연 잘 살고 있는 인생일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가끔은 허무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