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외노자가 되려 해요
실질적인 퇴사일은 2월 1일이었지만 11일을 기점으로 나는 공식적인 백수가 됐다. 지금까지 죽기살기로 버텨왔던 하드쿠아 생활인데 어떻게든 최소 3년은 꽉 채우고 나오리라 다짐했건만..사회생활이란 내맘처럼 되는것이 아니었다 ㅋㅋ
뭐라도 먹고살길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영국 워킹홀리데이 결과 발표가 났다. 작년엔 떨어졌고 이번에 설마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신청했었는데 진짜 막상 합격하고 나니까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서류 쓸 때만 해도 붙기만 하면 무조건 간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막상 진짜로 갈 생각을 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서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어떻게 영국으로 내 삶을 통째로 옮겨야 하나 막막해졌다.
게다가 회사를 관두고 나니 생각보다 많은 데서 기회가 생겼다. 간절히 꿈꿨던 종대사, 신입 공채 때 인적성만 두 번 보고 떨어졌던 대기업, 자금력 빵빵한 대기업 신규 프로젝트팀 등등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나를 흔들었다. 그동안의 생고생이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기쁘긴 했지만 오히려 심란했다. 한꺼번에 몰려오는 썸남같은 쓸데없는 상황은 뭐람.
그동안의 고생을 딛고 드디어 결실을 볼 때가 되었는데, 과연 이 모든 안정적인 상황을 다 버리고 영국으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무리 비자가 있다 한들 2년짜리 단기 비자이고 영국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 내가 그다지 길지도 않은 4년짜리 경력을 가지고 과연 현지 취업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만약에 커리어를 살려서 취업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은 다 쓸모가 없어지는 건데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내가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자기만 하면 악몽을 꾸는 너무나 심란한 시간이었다ㅜㅜ
돌이켜 생각해보면 워홀을 떠나겠다는 생각은 하루 이틀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2년 전에 페이스북 아일랜드 지사 인터뷰를 봤었는데 아쉽게도 그때는 불합격했었다. 하지만 그때를 계기로 미디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데이터 분석 경험을 쌓고 영어만 좀 더 잘하게 된다면 외국에서도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소셜 본부에서 퍼포먼스 본부로, 미디어본부로 익숙해질 만하면 계속 직무를 바꿔왔고 미친 듯이 바쁜 와중에도 코딩을 배우고 영어학원을 다녀가며 나름의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오랜 시간 고민해서 차차 준비해온 기회가 실제로 눈앞에 다가왔는데 무섭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지레 겁먹고 도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결국 후회로 남게 될 것 같다. 여러 사람들에게 고민을 상담해봤는데 다들 어렵겠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걱정 안 한다고 따뜻하게 건네줬던 말들도 큰 용기가 됐다. 어쩌면 나를 가장 과소평가하고 있는 사람은 나 스스로일지도.
바로 눈앞에 주어진 한국에서의 좋은 기회들도 아쉽긴 하지만 영국에서 일한다는 경험은 이 시기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못해볼 기회니까 일단 도전해보려고 한다. 아직 엄청 막막하지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해내게 되겠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