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같이 지나간 12주
지난주 금요일 드디어 코딩 부트캠프가 끝이 났다. 낙오하지만 말자는 각오로 시작했었는데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내서 정말 다행이다... 최근 세 달 동안은 눈 뜨고 있는 하루 종일 내내 코딩만 하다가 집에 와서는 쓰러져 자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젠 굳이 내가 애써 할 일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코스가 끝나고 나서 일주일 동안 너덜너덜해진 체력을 보충하고 쉬엄쉬엄 솔로 프로젝트 때 짰던 코드를 갈아엎으며(과거의 나야 도대체 왜 그랬니ㅜㅜ) 시간을 보냈는데, 부트캠프 동안 나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은 이젠 마치 꿈같이 느껴진다.. 그동안 하루가 너무 쏜살같이 지나가서 나에게 생기는 변화들을 제대로 체감할 수가 없었는데, 스스로를 돌아볼 만큼의 여유가 생긴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새삼 많은 것들이 변했다.
뭘 모르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혼자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파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막막했던 건 이것저것 공부해야 할 것들은 많아 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뭘 알고 뭘 모르는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만들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었어도 그걸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볼 능력도 안됐었다. 그렇지만 부트캠프를 끝낸 지금은 웹 개발에 대해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런 걸 만들어보려면 어떤 기술 스택을 써야 하는지, 어떤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야 할지는 대강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커뮤니티를 기웃대며 여러 기술 스택들을 어설프게 주워 들었을 때는 왜 써야 하는 건지 잘 와 닿지가 않았었다. 그렇지만 리액트로 맨틀을 뚫고 들어갈 지경의 깊은 컴포넌트 구조상에서 상태 관리를 겪어보고 나면 왜 리덕스가 소중한지 알게 되고, API 요청 하나씩 만들 때마다 MVC 구조를 다 뜯어고쳐야 하는 수고를 겪고 나면 왜 GraphQL을 쓰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고생을 겪는 게 최고의 동기부여인 것 같다.
더 이상 영어 문서가 두렵지 않다
프로그래밍 실력을 빨리 늘리려면 영어로 구글링하고 기술 문서도 원문 그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는데, 막상 초보자로서 영어로 된 문서를 읽는 건 너무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어로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영어로 읽으라고여..?ㅠㅠ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원어민 친구들조차도 문서를 읽고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경우도 많았던걸 보면, 기술 문서가 읽기 어려운 이유는 영어 독해 실력 자체의 문제기보다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강제로 영어문서를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되고 프로그래밍 지식도 조금씩 쌓이다 보니 예전처럼 영어로 된 문서를 맞닥뜨렸을 때 마냥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 정도로 살짝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젠 어설프게 번역된 한국어 문서를 읽느니 차라리 영어로 읽는 게 속편 할 때도 있다..ㅋㅋ
새 기술을 배우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제 처음으로 코딩 인터뷰 과제를 받았는데 코드를 다운로드하고 열어보니 리액트가 아닌 뷰로 작성된 프로젝트였다. 세 시간 만에 주어진 데이터로 대시보드를 만들어서 내라는데 생전 처음 보는 뷰로 작성된 코드를 읽으려니 처음엔 좀 당황했었다. 근데 튜토리얼 몇 개 찾아보고 나서 코드를 잘 뜯어보니 클래스 버전 리액트랑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 다는걸 금방 파악할 수 있었고 결국 무사히 과제를 끝냈다.(사실 뷰보다도 부트스트랩 그리드 적용해서 사이트를 반응형으로 만드는 게 더 어려웠다^_ㅠ) 리액트에 익숙해지는 데는 거의 일주일이 걸렸는데 뷰에 익숙해지는 데는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 걸 보면, 프레임워크 하나를 빠삭하게 다뤄두면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프레임워크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친구다운 현지인 친구들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영국에서의 내 인맥은 카카오 다녔을 때의 직장동료들과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가족들로 한정적이었는데, 부트캠프를 하면서 비슷한 나이대 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사실 코드웍스 부트캠프가 좋았던 건 커리큘럼과 강의였다기보다는 이미 프로그래밍 기본기가 잘 잡힌 의욕 있는 학생들과 같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점이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그걸 코드로 구체화해가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리고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고 극복해오는 과정 동안 동지애(?)도 생기고 프로그래밍 커리어를 함께 쌓아갈 든든한 동료들이 생겨서 좋았다.
코딩 캠프를 끝내고 나니 본격적으로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고민이 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모두 얕게나마 겪어보고 나니 백엔드 쪽에서 데이터베이스의 구조를 고민하고 api 요청을 설계해서 프런트엔드와 백엔드를 연결하는 로직을 만드는 게 더 재밌었다. (차라리 디버깅을 하는 게 낫지 하루 종일 div박스 제대로 정렬하느라 css 태그랑 싸우는 건 정말 진 빠지는 일이었다ㅠㅠ....) 그리고 그간의 커리어 동안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일들이 많았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프로그래밍으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작업들이 재미있다. 엑셀로 했었더라면 수기로 했어야 할 일들이었을 텐데 한번 코드로 짜 놓고 나서 자동으로 업데이트가 되는 걸 보면 정말 뿌듯하다..ㅋㅋ 그래서 백엔드 쪽을 좀 더 공부하면서 비즈니스 대시보드를 만드는 회사들의 풀스택 엔지니어로 취업을 하고 싶어서 이런 분야의 회사들 쪽을 찾아보는 중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공고가 엄청 활발하게 올라오지는 않는데, 취업지원 매니저인 마크가 취업시장 비수기일수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눈에 잘 뜨일 수가 있으니 계속 서류를 내라고 해서 하루에 한두개씩은 꾸준히 이력서를 뿌리는 중이다. 칼같이 탈락했다고 연락하는 회사들의 메일을 받을 때면 이러다 평생 백수 되는 거 아닌가 무섭기도 하지만 세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내버려 둘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말을 믿으며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좋은 기회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