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에 그 딸>

오펜 단막극 대본분석 1.

by 일우

1월이 다가오니까 스멀스멀 대본 생각이 났다. 매년 1월에 오펜에서 드라마 대본 공모전이 있기 때문이다. 당선작은 TVN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한다. 공부 삼아서 2025년 당선작부터 차례로, 취미 삼아, 천천히, 올려보겠습니다.



오펜 당선작들을 보면 확실히 눈에 띄는 설정, 소재가 있는 것 같다. <그 엄마에 그 딸>도 설정이 좋았다. 엄마는 50세이고 딸은 30세인데 엄마 남자 친구, 딸의 남자 친구 40세. 둘이 친구. 대본에 장르가 따로 적혀있지는 않았지만 휴먼/코미디 같다. 장르를 코미디로 설정하면 드라마적 허용 범위가 넓어진다. 현실감은 없지만 드라마니까 용서가 되는 그런 부분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대본을 읽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엄마도 솔로고, 딸도 결혼하지 않은 마당에 두 사람의 남자친구들이 왜 나이가 같으면 안 되는지, 친구이면 안되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두 사람은 싫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대본에서 감정선이 튀는 부분들이 있는데 코미디라서 허용 가능한 범위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재미가 애매했다. 감정선이 튀어도, 설정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재밌으면 넘어가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애매해서. 그래서 눈에 걸리는 부분들이었다.


15씬에서 "기를 쓰고 울지 않으려는 우수" 엄마가 남자를 많이 만나는 게 창피해서 그런 건지, 엄마를 두고 하는 험담이 마음에 걸렸던 건지. 전자는 주인공이 서른 살이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았고, 후자는 사람들이 험담을 해서 우수가 상처받는 부분이 15씬보다 앞에 나와야 설득이 가능하다. 어떤 의미로 우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18씬에서 강욱의 대사가 튀었다. "영업부 고장인 나보다 ~ 비범하시지." "회사에서도 백화점 내에서도 ~ 인기 최고잖아." 강욱이 우수에게 우수의 엄마를 두고 이야기하는 대사인데 정보성 대사가 나열하듯이, 구어체의 느낌도 없이 쭈욱 써져 있어서 어색했다.


20씬. 우수의 대사에서 아빠가 외롭다고 말하는 부분. 이런 대사를 쓸 때는 앞부분에 깔아 둔 씬이 있어야 한다. 우수와 아빠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거나, 아빠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튀는 대사가 되지 않는다.


21씬. 우수가 사천만 원을 강욱에게 빌려주었다는 것. 이건 대사가 문제라기보다 우수의 캐릭터를 헷갈리게 했다. 앞씬에서 우수의 엄마는 우수가 백수라고 말하며 우수의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강욱에게 어떻게 4천만 원을 빌려줄 수 있었을까.


22씬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옥희는 성일을 왜 좋아하는가. 젊어서? 잘생겨서? 성일은 어떤 캐릭터인가. 카페에서 노트를 펴놓고 카페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그래서 어떤 사람이지? 사람들을 잘 관찰하면 옥희를 세심하게 챙겨주나? 아니면 글을 쓰기 때문에 옥희에게 어필이 될만한 소설을 선물했나? 옥희가 성일을 좋아할 만한 액션이 없어서 설득이 어렵다.


성일이 옥희를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잘 이해한다던지, 옥희의 진심을 처음부터 알아준 사람이라던지 그런 부분들이 표현되어야 47씬의 대사에서도 튀지 않고 지나간다. 47씬의 대사들도 성일이 갑자기 왜 우수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43씬. 우수가 옥희에게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갑작스럽다. 우수는 아빠와 어떤 부녀사이일까. 애정이 있는 것 같지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리에도 처절하게 우는 장면이 없어서 든 생각이다. 그래서 옥희의 물음에 착하게 대답을 해주는 부분이 튄다. 앞에서 읽은 우수의 캐릭터라면 뭔 상관이냐고 소리 지를 것 같아서.


2025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부모의 재산이 자식들에게 자동으로 상속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리얼리티 차원에서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상속포기각서 부분이 반전이 되고 좋았는데 리얼리티적인 부분에서 걸리면 오래된 대본같이 느껴진다.


구성이 현재에서 과거, 과거에서 과거 혹은 회상으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이 적재적소에 설명이 된다고 느껴진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12씬)도 있었다. 과거씬은 이야기의 진행속도를 더디게 한다. 현재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수정되면 좋을 것 같다.


연출적인 부분일 수 있지만 5씬에서 마네킹에 머리띠가 보이지 않는 것은 시청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옥희가 쓰고 있어서? 작가의 의도대로 영상에서 시청자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16, 17씬이 이어지는 부분이 어색하다. 16씬의 야식집에서 창문 밖(17씬 도로)을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10씬, 핸드폰은 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인지.


이 대본에서 아쉬운 부분은 딱 하나밖에 없다. 작가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설정한 것들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 핸드폰도 옥희와 성일이 키스를 하다가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섬세하게 쓰이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대본을 읽다가 눈에 걸리는 것 같다.


대본을 읽으면서 노희경 작가의 <세리와 수지>가 생각났다. 두 인물이 아웅다웅하면서 단막극 한 편이 잘 끝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물이 늘어나면 에피소드가 늘어나면서 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니까. 분명 수정되어야 할 부분은 있는데 이야기가 힘이 있달까. 왠지 드라마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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