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려고 합니다.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는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애정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1월에는 [만약에 우리], [프로젝트 Y]를 관람하였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중학생딸과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저희 딸은 역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계유정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직전, 간단히 알려줍니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죽어서 단종은 열한 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고요. 나이가 어리니까 단종을 노리는 자가 있었는데 문종의 동생 수양대군이라고요. 수양대군 뒤에는 한명회라는 인물이 있었고, 굉장한 책략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단종은 왕위를 빼앗긴 지 2년 만에 사약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때 단종의 나이가 열여섯입니다.
저희 딸은 영화를 보고 잘 우는 편인데 울지 않았습니다. 반면 저는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양쪽 소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울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 특성상 가족관람객이 많았는데 다른 관객들도 저희 집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울컥했고 아이들은 웃다가 슬퍼진 영화로 끝이 났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감독이 단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듯해서, 어린 왕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깊이 느껴져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죽고 혼자 남은 아이에게 딱 그만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같은 어른 한 사람이 그가 가는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것이 나에게도 위로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영화가 따듯합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좋았던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좋았던 장면은 단종이 활을 겨눠 호랑이를 쓰러뜨리는 장면입니다. 무척 똑똑한 한 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종이 어떤 사람인지를 한 컷에 보여주는 동시에 단종에게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입니다. 무기력했던 전과 달리 기운을 차리는 계기가 됩니다. 나를 죽이려는 자가 있는 궁과는 달리 아들을 살려줘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사람이 있는 유배지가 단종에게는 무척 위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단종과 엄흥도는 급속도로 친해집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갑니다. 감정선을 후루룩 잘 붙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항준감독이 멜로를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보다 어린 왕과 엄흥도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에 집중한 영화 같았습니다. 그게 눈물이 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딸은 영화가 차갑다고 했습니다. 냉정한 어른들이 나와서 재미있는 장면들도 화가 나고 답답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총감상평은 그랬는데 다른 관객들이 웃을 때 소리 내서 웃는 걸 저는 보았습니다.
12세 관람가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잔인한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즘 장르물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잔인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은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는 영화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의 생각의 깊이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진짜 진짜 재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