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레미 진심일기 1편
처음엔 4평짜리 방 하나였다.
부모님 집.
창문은 있긴 했지만,
오래된 커튼과 계절 지난 옷가지,
이삿짐처럼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로
거의 가려져 있었다.
햇빛도 사람 눈치도 잘 안 들어오는 그 방.
딱 그만큼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주워온 듯한 낡은 1인용 책상 위에
노트북 하나 놓고 앉아 있는 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책상 위엔 늘 커피 한잔, 볼펜 두세 개,
그리고 메모지에 끄적인 아이디어 조각들이 ok
널려 있었다.
그냥 ‘방’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초라해서
나는 매일 아침 이렇게 주문처럼 되뇌었다.
“여긴 스티브 잡스의 차고다. 여긴 실리콘밸리다.”
엄마는 “밥 뭐 먹겠냐”며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는 그 타이밍에 콘텐츠를 짜고 있었고,
폰 화면엔 인스타그램 피드가 켜져 있었다.
그땐 그게 나의 출근이자, 나만의 출사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방에서, 나는
진짜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17년.
호주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전 해에 다니던 외국계 회사를 퇴사했고,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해보며
내 인생에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는 핑계로
방황하던 시기였다.
어릴 때부터 초콜릿이랑은 애증의 관계였다.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트윅스, 킷캣, 스니커즈 같은 애들 앞에서는
늘 무너졌고,
먹고 나면 꼭 후회했다.
“다 먹고 나면 왜 항상 이렇게 허무하지?”
초콜릿은 나에게 늘
달콤한 위로이자, 씁쓸한 처벌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초콜릿은
달콤한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의 콜스(Coles)란 대형 슈퍼마켓에서
처음으로 무설탕 초콜릿을 마주했다.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말티톨’이라는 대체 감미료가 들어 있었고,
‘No added sugar (무가당)’라는 문구가 낯설게 다가왔다.
호기심에 사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 맛있었다.
단맛은 있는데
혈당이 확 올라오는 그 묘한 불쾌함이 없었고,
뇌가 평온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초콜릿을 기쁘게 먹었다.
마치
그동안 싸우기만 했던 친구와 화해한 느낌.
그때 머릿속에서 진짜 유레카처럼 번뜩였다.
“이걸 나만 알고 있긴 아깝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거.
통장에는 거의 잔고가 없었고,
그나마 코인으로 묶여 있던
천만 원어치 가상화폐가 전부였다.
사무실은커녕,
부모님 집 방구석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걱정은 당연히 부모님의 몫이었다.
“30 넘은 애가 집에서 맨날 폰만 만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SNS를 모르는 부모님의 시선에선
그 모습이 좋게 보였을 리가 없었다.
그런 시선을 견디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1년 안에 이 방을 나간다.”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1/3은 인스타그램 콘텐츠 제작.
어떤 말이 사람들한테 닿을까 고민하며,
건강, 다이어트, 루틴에 대한 글을 올렸다.
1/3은 초콜릿 레시피 개발.
재료를 혼합하고, 온도를 조절하고,
식감 하나하나를 실험했다.
1/3은 사업 공부.
해외 브랜드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마케팅은 어떤 식으로 했는지
책을 보고, 블로그를 보고,
다시 노트에 옮겨 적으며 머릿속에 새겼다.
그때 만들었던 콘텐츠들과 실패한 실험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레미레미의 뿌리가 됐다.
초콜릿 만드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특히 ‘템퍼링’이라는 온도 잡는 기술이 잘못되면
식감도, 맛도, 모양도 다 망가졌다.
냉장고에서 꺼낸 초콜릿이 하얗게 뿌옇게 변할 때면
속이 같이 하얗게 식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매일 만들고, 또 만들었다.
해외 제품도 직구해서 뜯어보고
레시피, 마케팅, 디자인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벤치마킹했다.
제조사를 찾는 건 또 다른 고비였다.
전화 돌리고, 이메일 보내고,
답변도 없이 씹히고, 거절당하고.
미팅까지 잡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그러다 인스타 팔로워가 7천 명쯤 됐을 때,
한 제조사에서 내 연락에 응답했다.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미팅 날,
레미레미의 콘셉트를 설명했다.
내가 왜 이걸 하게 됐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그분이 말했다.
“같이 해봅시다.”
문제는,
초기 생산비가 내가 가진 돈의 두 배였다는 거.
그래서
신용보증재단에서 500,
부모님께 또 500,
나머지는 코인을 현금화해서
총 2천만 원.
그 돈으로
레미레미의 첫 무설탕 초콜릿을 만들었다.
출시 며칠 전부터 인스타에 티저를 올렸다.
만드는 과정도, 실험 실패도,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줬다.
그리고 출시일.
첫 주문 알림이 떴다.
“결제 완료”라는 알림 문구.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살짝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울컥했다.
“내가 만든 걸,
누군가가 진짜 사줬다.”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벅찼다.
그리고 그렇게,
레미레미는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지금은 사업 5년 차.
그동안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물류센터 화재로
재고 4천만 원어치가 젖어버리고,
제조사가 문을 닫고,
카카오 원료가 급등해서
생산이 멈추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내 루틴은 하나다.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
그게
나를 살렸고,
레미레미를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그때 그 방구석에 앉아 있던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잘하고 있어.
꾸준히 하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발전하는 것도 잊지 마.
배움은 매 순간 어디에나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다음 이야기 예고
→ 레미레미 첫 번째 위기,
2020년 여름에 닥쳤던 물류센터 화재 사건.
그때는 진심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