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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탈리아의 역사

by Jason

이탈리아의 역사


이탈리아 하면 수도 로마가 떠오르고 로마 하면 고대 로마제국이 생각난다.


로마를 건국한 이는 기원전 753년의 로물루스라고 배웠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13세기 소아시아의 트로이 지역(오늘날의 터키 영토)에서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로 그리스에 패배하고 겨우 도망쳐 나온 트로이 국왕의 사위인 아이네이아스가 지금의 이탈리아 서쪽 해안으로 접근해서 로마 근처 해안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로마 역사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 형제에 의해 지금의 로마에 도시국가를 세웠다고 하는 그럴듯한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

로마를 건국했다는 시기인 기원전 8세기는 너무 옛날이라 역사시대가 아닌 듯 생각되겠지만 그리스에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피아드 경기가 이미 6회가 끝난 시점이다.


이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는 중북부는 에트루리아 인들이 살고 있었고, 남부지역은 그리스 인들이 들어와서 정착해서 살고 있었는데 정작 이 두 민족은 로마라는 도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테베레 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이 있는데 강 하류에 있다 보니 일곱 개의 언덕을 제외한 평지는 대부분 습지였기 때문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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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북부에 있던 에트루리아 인들은 해상무역도 활발했던 민족이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유럽 국가의 도시들과 같이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용이한 높은 지역을 선호하였다. 따라서 지금의 피렌체도 로마인들이 건설해서 평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과거 에트루리아 인들은 인근 높은 지역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또 이들이 건설한 여러 도시 중의 하나인 페루자 같은 경우만 보아도 마치 우리가 다녀왔던 스페인의 톨레도 같이 기차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고개를 한참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남쪽은 그리스 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는데, 이 당시 그리스는 귀족들이 통치하는 도시국가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농업에서 공업이나 해상 무역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이로 인해 엄청나게 발전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빈부 격차 때문에 밀려난 세력들은 인근 도시로 이민을 가서 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흑해 연안까지 서쪽으로는 에스파냐와 프랑스 남부까지 진출했으니 인근의 이탈리아 남부는 당연히 많은 그리스 인들이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 당시 가장 높은 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 인들답게 단기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해상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었으므로 그들이 건설한 대표적인 도시 나폴리 같이 바다에 접해있는 항구 도시만 관심이 있었지 바다에서 테베레 강을 따라 들어가야 비로소 나타나는 로마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원전 8세기의 이탈리아는 북부를 제외한 포강 이남만 보면 북쪽의 에트루리아 인과 남쪽의 그리스 인들의 양대 세력이 존재하였는데 그 중간 지역인 로마에 새로운 세력이 태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강대한 세력이 로마에 새로 형성된 집단을 정복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앞서 말한 이유로 로마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이 지역에 사는 로마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경제적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없는 취급을 받던 로마가 힘을 키워서 전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 엄청난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데, ‘로마인 이야기’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 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 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 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 보다 못한 로마인들이 어떻게 이들을 모두 정복했을까?

여기에 대해서 시오노 나나미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녀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모두 읽으면 여러 가지 경쟁력 있는 로마인들의 장점들이 보인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패자도 동화시킨다는 정복 정책이 일단 크게 부각된다. 즉 어떤 지역을 정복하면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동등하게 대접받게 해 주었다. 초창기 때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것이 큰 혜택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세력이 커졌을 때는 요즘의 미국 시민권에 버금가는 큰 특혜였을 것이다. 그래서 못 살던 지역 사람들이 로마에 정복당해 로마 시민권을 받고 로마 시민으로서의 많은 복지 등의 특혜를 로마인과 동등하게 누리게 해 주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로마에 복속당하기를 기대했을 것 같다. 단순히 시민권만 부여한 것이 아니고, 그 지역의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적극 육성해서 이전보다 더 잘 살게 해 주었고, 로마 제국 전체로 보면 각 지역의 특화된 경쟁력 있는 산업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어 거시 경제 전체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틀이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위하여 로마로 통하는 길들을 건설하는 인프라 공사를 해서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들의 원활한 이동을 도왔고, 또 이로 인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만들어졌다. 사실 로마 제국 이후 어떤 제국이나 나라도 식민지를 만들면 박해와 착취만을 일삼았지 이런 정책을 취한 경우는 없다. 특히 앞서 언급한 스페인의 경우 신대륙에서 금과 은을 얻기 위하여 거의 원주민들이 말살당하는 끔찍한 결과도 초래했고, 영국도 인도에서 착취만 해서 영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식민지를 이용만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로마인들의 유연성이다. 초기에 공화정을 하다가 통치 지역이 넓어지면서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자 왕정으로 바뀌는 등의 과정을 보면 상황 변화에 따라 제국의 시스템을 적응해서 변화시키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로마제국도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수 없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서 로마제국이 건설되었는데 다른 민족과의 차이점은 실패를 할 때마다 끊임없이 배우고 개선시켜서 다음의 성공으로 꼭 이어지게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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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다 장기적인 정책을 들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도 건설이다. 좋은 수질의 물이 있는 원천수를 확보하고 이 물을 수도교를 통해서 끌어들여서 로마의 모든 사람들이 이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오늘날 같이 전기가 없었던 그 시절에 오직 고저 차만 이용해서 그 먼 곳에서 물을 끓어 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로마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먼 훗날 생길지 모를 장기적인 가뭄에 대비하여 이런 시설을 물이 풍성할 때 건설했다는 것은 백년대계라기보다는 천년대계라 해야 될 것 같다. 또 이렇게 조성된 물은 마을 공동 취사장에 모아져서 마을 사람들이 무상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으며, 물 길러 가는 것이 귀찮은 사람은 별도의 돈을 받고 집안까지 물을 보내주었다는 사실도 참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마을에 저장된 물도 계속 흘려보냈다는 사실은 현대보다도 더 위생관념이 철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로마가 향락에 젖었다는 증거로 자주 제시하는 목욕문화이다. 그런데 사실 초기 이 목욕탕은 대중목욕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근거해서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회에 기증한 것들이다. 이렇게 목욕문화를 만든 것도 각종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적극 장려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세 유럽에서도 페스트라는 병으로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고대 로마 제국에서는 어떤 돌림병이나 전염병의 기록이 없다. 항생제가 없던 이 시기에 로마인들은 치료보다는 예방이 우선이며 청결만이 병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목욕 문화를 활성화시켰다고 한다.


많은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고 가장 인상적인 로마인의 특징은 이것들이다.


이 책은 로마 하면 기독교를 박해했던 그리고 민중들을 탄압했던 강력한 군사정권 같은 안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런 로마 제국도 항상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해서 3세기 말에는 동서 로마로 분리되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는 지역별로 분리되어 도시국가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특히 르네상스를 통하여 북부 도시 국가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다. 이중에서도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은 엄청난 주체할 수 없는 부를 움켜쥐게 되는데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고 이로 인해서 나타난 통일 운동의 조짐에 동참하게 되고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때 지금의 이탈리아로 통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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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차 세계대전 때 패전 국가가 되어 시련도 겪었고, 지금도 남북 간의 지역 갈등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큼 심한 수준인데, 이탈리아의 경우는 주로 경제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즉 북부의 부자도시인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들은 자기들이 내는 세금으로 남부의 게으른 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고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사실 여행 다니면서 보면 북부와 남부의 빈부 격차는 상당히 심한 편이고, 조상덕에 살고 있는 남부에 비하여 북부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자국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엄청난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 로마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인의 후손이 지금의 이탈리아 인일까? 여기에 대해서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는 펄쩍 뛰면서 지금의 이탈리아 인들은 과거 로마제국의 로마인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과거 로마제국을 만들었던 로마인은 체격도 왜소하고 육식보다는 곡물 위주의 식사를 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이 할머니가 지금의 이탈리아 인들은 아주 싫어하는 듯하다. 아마 로마 도착했을 때 내가 탔던 총알택시를 타고 바가지요금을 강요받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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