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출발했던 비행기는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에 3개씩의 의자가 배열되어 있는 작은 비행기였다. 창가 쪽에 외국인 학생이 앉았고 아들과 내가 나란히 앉았는데 나중에 아들이 이 외국인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브라질 대학생인데 방학 때 유럽으로 여행 왔다고 한다. 영어가 서툰지 잘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인지 수줍어한다고 한다. 비행기는 예정시간인 11시 45분에 로마에 도착했고, 입국 절차를 마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아들 이야기가 밤도 너무 늦었고 대중교통도 여의치 않아서 우리가 숙박할 호텔에서 차를 가지고 우리를 픽업하러 나오기로 되어 있고 요금은 65유로라고 한다. 자기가 시세를 알아보니 택시를 타고 가도 그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고 한다. 아들한테 잘 했다고 칭찬해 주고 무거운 짐을 들고 이 늦은 시간에 전철 등을 타고 헤매지 않고 고생 안 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65유로는 배낭여행객에게는 큰 돈이었지만.
이탈리아는 1993년에 집사람과 같이 와 보고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번째 방문이 여행사 패키지여행이었으니 실제로는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감회에 젖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수많은 피켓을 들고 서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이름이 적힌 팻말은 없었다.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속속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우리만 마냥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들한테 다시 물어보면서 최종 confirm을 언제 했냐고 했더니 6개월 전에 호텔 예약할 때 신청하고는 그 후 한 번도 연락 안 했다고 한다. 내 질문에 모든 상황을 이해했는지 아들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듯 언제가 되었건 한 번 약속한 사항인데 픽업 서비스를 안 나오는 호텔을 욕하기 시작했고, 비즈니스 할 때 항상 confirm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나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쌍방 모두 문제가 있었다.
당황해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무 이야기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이 상황은 수습해야만 했다. 나는 아들에게 빨리 나가서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고, 아들은 늦게라도 나오지 않겠냐 하면서 기다리고 싶은 눈치였다. 이럴 때일수록 아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따지지 말아야 한다. 아들은 이런 confirm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뜩이나 당황하고 억울해하는 아들 보고 네 잘못이라고 말하면 과연 그 말이 아들한테 제대로 받아들여 질까? 아마 반감만 더 커질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오히려 아들 편에 서서 이 상황을 넘어가면 똑똑한 아들은 감정이 진정되면 본인도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할 것이고 그 아이 장래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사회생활할 때는 매번 confirm 하는 좋은 습관이 생길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야단치고 어떤 잘못이었는지를 따져야만 아이들이 깨닫는다고 생각해서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곤 하는데, 부모 생각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성숙하고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계속 흥분해 있는 아들을 달래어서 택시를 타러 공항을 나오고 있는데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와서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이탈리아를 다녀오신 분들은 이런 상황만 보아도 바로 눈치채셨겠지만 여행 책에 단골로 나오는 이탈리아에서 조심해야 할 상황 1번이다.
아들도 얼른 내 손을 잡아끌며 ‘아빠, 이런 사람 조심하라고 책에 나와 있어요. 상대하지 마세요’하고 말했다. 그래도 궁금한 내 호기심은 이 사람에게 로마 중앙역인 떼르미니 역이라고 말했고, 이 사람은 즉석에서 40 유로면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진짜 인지 몇 번 확인하고는 망설이는 아들을 달래서 그 사람을 따라갔는데 아들은 영 불안한 눈치였고 나는 호기심에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어떤 사기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1인당 40유로인지 아니면 2명 합해서 40유로인지를 다시 물어보았고, 이 이탈리아 인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당연히 2명 합해서 40유로라고 말했다. 마치 ‘아! 이놈 진짜 의심 많네’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데려간 곳에는벤쯔 SUV 차량이 있었고 운전기사는 따로 있었다. 즉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모객만 책임지는 것 같았다. 이미 차량에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앉을자리가 없는데도 옛날 우리나라 만원 버스같이 사람들을 더 좁혀 앉게 하고는 나와 아들이 따로따로 끼어 앉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이 운전기사에게도 40유로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는데 말을 붙일 사이도 없이 서둘러서 차는 출발하였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차 안에는 이미 정원 초과였는데 운전석 옆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고 이탈리아 아니면 스페인 사람 같았다. 내 옆과 뒤의 아들 옆에 있는 젊은 여성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영국 영어는 아닌 것으로 볼 때 미국에서 온 학생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맨 뒤에도 몇 명이 앉아 있는 듯했고… 이 좁은 차 안에 다국적 다언어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가진 듯 보였는데, 차량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더 커진 듯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성행(?)했던 총알택시와 똑같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이런 택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짧은 괴성을 지르며 아슬아슬해하고 있었다. 특히 내 옆에 있던 2명 의미 국 여성들은 처음 해 보는 경험이 싫지 않은지 깔깔거리기 까지 했다.
차 안에서 과연 이들이 어떻게 사기를 칠 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마 이 운전기사는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그 사람이 40유로라고 한 것은 모르겠다고 할 것이고 많은 금액을 청구할 것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가 예측이 되니깐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나 역시 이에 대응해야 할 방법을 생각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방법이 별다른 것이 있을 리 없다. 안 주고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마침 우리가 가장 먼저 내리게 되었다. 운전기사가 내려서 뒷문을 열고 우리 가방인 큰 트렁크 2개를 내려주었다. 내가 50유로짜리를 주면서 10유로를 거슬러 달라고 하자 아니나 다를까 요금이 50유로라고 한다. 아까 안내한 사람이 40유로라고 했다고 하니 우리가 짐이 많아서 10유로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는 적은 금액인 10유로를 더 요구해서 웬만하면 주고 올 수도 있었지만 또 평화를 사랑하는 아들도 그 정도 선에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원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렇게 끝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바로 10유로를 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새벽 1시경 거리는 인적이 끊겨 있었고 조용한 거리에서 언성을 높이자 운전기사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이 주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몇 분 후에 그들이 맞닥뜨릴 상황이니 어떻게 처리되나 하는 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아마 모두들 나를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상황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자 이 운전기사는 당황했고 처음에 비해서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동양인이 자기보다 더 체격이 크고 하니 결국 이 운전기사는 10유로를 줄 것 같이 하였다. 그러나 곧 누구나 아는 만국 공통의 변명인 10유로짜리 지폐가 없다고 한다. 내가 40유로를 줄 테니 50유로짜리를 돌려달라고 하자 또 말을 안 들어서 큰 목소리와 험악한 표정을 지으니 얼른 돌려주었다. 내 주머니의 잔돈을 모두 합하고 아들의 동전까지 합해서 40유로를 정확히 지불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운전기사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차에서 내다보던 다른 승객들은 소리는 못 질러도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텃세(?)에 맞서서 승리했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이미 새벽 1시를 향하고 있는 이 시간의 피로도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다.
다시 가방을 끌고 인적이 끊긴 로마 시내를 다녔는데 바로 찾지 못해서 살짝 헤매다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사실 아들만 찾느라 애썼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냥 아들 뒤만 졸졸 따라다녔고…
아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 호텔에 묵는 것이 아니고 이 호텔의 별관 같은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 체크 인 만 하고는 다시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하는지는 몰라도 아들과 같은 배낭여행 다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체크인 데스크에는 아랍 계통으로 보이는 직원이 있었는데, 전산이 고장 나서 그러니 여권을 여기에 맡겨두고 내일 아침 찾으라고 하는데 또 불안해졌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데 한 번 당하다 보니 모든 것에 믿음이 안 갔다. 그래도 이 새벽에 그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별관의 위치를 가르쳐 주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직원을 불러서 우리를 그곳까지 안내해 주라고 했다.
별관은 호텔 형식이 아닌 우리 같으면 콘도미니엄 같은 곳이었는데 깨끗했고 생각한 것보다 좋았다. 욕실도 아들은 공용욕실 일수도 있다고 했는데 방안에 전용 욕실이 있었다. 리스본에서 숙소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여기서 보상받는 것 같았다.
대충 정리하고 씻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니 정확히는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드라마틱한 24시간이었던 같다.
아침에 늦잠을 자자고 아들과 이야기하고는 피곤했던 하루와 리스본에서의 잠 못 이룬 이틀 밤 그리고 리스본에 갈 때 거의 잠 못 이루었던 야간 버스까지 합쳐서 그 모든 피로를 보상받듯 정말 죽은 듯이 기절해서 잠을 잤다.
정확히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로마는 도착과 동시에 많은 이야기 소재와 깊은 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