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4. 로마여행 첫째 날

by Jason

로마여행 첫째 날


아침에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고 드디어 로마에서의 첫째 날을 맞았다.


20년 전인 지난번 로마 방문이 아무것도 모르고 온 것이었고 더군다나 여행사 패키지여행이어서 그저 책에서 보았던 콜로세움, 영화에서 보았던 트레비 분수들을 실제로 보는 감동이 있었을 뿐이었다. 또 그 당시는 내가 로마제국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 보았자 기독교를 탄압하던 그리고 네로 황제의 폭정 등의 안 좋은 편견만 있었을 때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읽고는 로마제국에 대한 다른 좋은 시각으로 세뇌되어 있어서 단순히 유적지 관광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곳에 서서 거의 2700년 전의 사건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상당히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 태동한 로마제국은 그리스 문명을 바탕으로 예술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현재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현재 서양문화의 근간은 기독교 사상인데 로마는 이 기독교 사상의 중심지가 되어 서양문화의 정신세계를 구축하였다. 그런데 이런 로마가 초기 기독교를 박해한 곳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아마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도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한 곳을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는 중심지로 삼아서 전 유럽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뿌리박아 놓았다. 물론 신대륙의 발견을 계기로 아메리카 대륙에도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되었고…


여행 준비를 마치고 오늘 새벽 체크 인한 호텔 로비로 갔다. 어제저녁에 이 데스크를 지키던 아랍계 직원은 없고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가 서 있었다. 상당히 잘 생겼고 성격도 쾌활하다. 먼저 오늘 새벽 여기 직원한테 여권을 맡겼었다고 이야기하니 전달받았다고 하면서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내 아들에게 상당히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잘 생겼고 체격이 좋다. 특히 팔뚝이 굵은데…’ 뭐 이런 내용의 말을 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내 아들은 한국인의 체형은 아니고 유럽 중에서도 북유럽 사람들과 체형이 비슷하다. 나중에 네덜란드에 도착하니 내 아들이 그곳 사람들과 비슷한 체형이었고 더 북쪽인 덴마크에 가니 내 아들보다 더 컸다. 전체적으로 한국 하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체형이 이탈리아 인보다 더 커 보이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좋은 인상으로 시작된 관계 덕분에 이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단 오늘 일정에 대하여 이곳에서 약 15분 정도 걸어가면 콜로세움이 나오니 거기부터 관람하고 이어서 포로로마노 그리고 베네치아 광장 등을 둘러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호텔을 나와서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고 물을 구입했다. 가격은 모두 17유로였는데 이곳 역시 카드를 안 받았다.


다시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자 콜로세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30707_121234.jpg

이 콜로세움은 학생 때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것이라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외관만 보아도 감동이었다. 이집트에 갔을 때 호텔 창문을 열자 바로 피라미드가 지척에서 보였는데 그때의 감동이 가장 컸던 것 같고, 아마도 콜로세움이 그다음이지 않을까 싶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 더운 날임에도 이미 입장객이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아서 서 있는 것 같다. 혹시나 아들이 안 들어간다고 할 까 봐 얼른 아들한테 이 내부는 꼭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들 역시 시간이 걸려도 볼 계획이었던 것 같다.

입장료는 인당 12유로씩이어서 24유로를 지불하고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니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다. 이때도 아들은 나를 그늘에 가서 앉아 있게 하고는 혼자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줄에 서서 기다렸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혼자 시원하게 앉아 있는 것이 편치 않아서 같이 서있거나 아니면 교대해서 내가 서 있고 아들 보고 시원한 데 가서 앉아 있으라 해도 막무가내로 자기가 궂은일을 다 했다.


내가 옛날에는 어린 아들을 여행에 데리고 오면 항상 챙기고 보살폈는데, 언제 시점부터 인지 몰라도 이번에 같이 여행 와서 보니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서, 아들이 나를 알뜰히 모시고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나를 챙기고 있었다. 하긴 이제는 나보다 키도 더 크고 몸도 더 큰 아들이 나를 돌보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지만 대견하고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2주 동안 여행하면서 아들은 어떤 때는 내 전속 수행비서로 또 어떤 때는 나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빈틈없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입장하고 보니 20년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아들도 낮게 탄성을 지르며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이 곳은 알다시피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네로의 궁전 터였던 늪지대에 건설한 것이라 한다. 스페인의 웬만한 성당들이 보통 건축 기간이 몇십 년씩 걸렸다고 하는데 웅장한 극장을 건설하는데 단지 8년만 걸렸다고 하니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로마의 건축 기술은 경이로운 것 같다.

특히 4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자세히 보면 각 층마다 양식이 다르게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만 명이 넘는 인원이 단 10분 정도면 입장해서 자리에 앉을 수 있게 80개가 넘는 출입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현재 한국의 경기장보다 더 우월하지 않을까?

현재 경기장의 바닥은 다 무너져서 미로처럼 나누어진 여러 방들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곳이 검투사 대기실, 무기창고, 동물 우리 등이 있었다고 한다.

20130707_133042.jpg

또 이 곳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나 맹수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해 기독교의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현재 콜로세움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있는데 지진의 영향이라 하고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무너진 콜로세움의 잔해를 왕궁이나 다리 등의 건축자재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기독교 성지로 지정되면서 교황령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이곳에서 한참을 보낸 후 밖으로 나왔는데 사실 아들이나 나나 쉽게 나가지 질 않았다. 그만큼 내부는 그냥 있기만 해도 그 옛날 로마제국의 영상이 떠오를 정도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아들은 베네치아 광장으로 간다고 했다.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광장 가는 길에 포로 로마노(Foro Romano)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이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지이다. 여기에서 사법, 정치, 상업, 종교활동이 활발했었는데, 지금은 기둥과 초석만 놓여있을 뿐이다.

20130707_144250.jpg

사실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나는 이곳에 앉아서 비록 흔적만 남은 곳이지만 시오노 나나미 같이 그 옛날 로마 제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보지 않은 아들한테는 그저 허한 공간일 뿐일 것이다. 또 아들의 여행 일정상 로마는 3일만 계획되어 있어서 하루를 바티칸에서 보내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상당히 아쉬웠지만 아들의 여행임을 다시 한번 나한테 상기시키면서 아들의 여행 계획을 따르기로 하고 훗날을 기약했다. 아마도 이 날 여기에 앉아 있었다면 수많은 영상들과 영감들이 떠올라서 시오노 나나미를 능가하는 상상력을 발휘했을 텐데…^^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는 길에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거렸다. 상당히 더운 날씨임에도 모두 밝은 얼굴을 하고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걸어가다가 아들이 문득 나한테 질문을 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고 이 많은 관광객들이 많은 돈을 쓰고 갈 텐데 왜 경제가 이렇게 어렵냐고? 갑자기 한마디로 답하기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유럽의 경제가 원래 식민지를 만들고 착취를 통해서 부를 이루었기 때문에 식민지가 독립하자 이제는 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을 위시한 북유럽에서는 이런 부를 근간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자기만의 산업을 키워서 그나마 오늘날까지 선진국으로 살고 있지만, 스페인을 포함한 남부 유럽은 그때의 돈으로 이런 인프라를 구축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영원히 식민지를 가지고 돈을 착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스페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불을 넘어서 우리나라 보다 높은데 다른 산업은 거의 없고 오직 관광 수입으로 이런 수치가 나오니 정말 관광산업이란 것이 공해 없는 가장 우월한 산업인 것 같다. 조상 잘 만났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중국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많은 옛날 모습들을 다 헐어 버리고 수많은 현대식 빌딩을 세우는데 온 재원을 쓰고 있고 이 여파로 몇몇 도시들은 빌딩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반이 상당히 침하한 곳도 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대부분의 구 시가지들은 개발하지 않고 보존만 해도 매년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관광 수입이 생길 텐데 굳이 공해 산업으로 바꾸어서 그 공해의 여파가 한국까지 미치고 있다.


베네치아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 볼 만한 것들이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로마 병정이나 검투사 등으로 분장해서 돌아다니는데 멋모르고 같이 사진 찍으면 반드시 돈을 요구하니 피해 다니는 것이 좋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막대 하나를 손바닥에 받치고 있는데 이 막대 위에 다른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신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그 비밀을 풀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그들의 옷 안에 막대와 연결된 단단한 재질의 형상 틀을 입고 앉아 있을 것이다.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이 광경도 사진 찍으면 돈을 요구했는데 살짝 모르게 찍었다.

20130707_144330.jpg

베네치아 광장은 로마 중심부에 있는 광장이다. 한쪽에 궁전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이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로마 대사관 역할을 하던 곳이라 한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지금은 같은 나라지만 과거의 도시 국가 시절에는 대사를 파견했던 다른 나라였으니,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역시 지역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0707_150930.jpg

미국에 경제적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통합 유럽을 꿈꿔왔고 유로화를 통해서 화폐를 통일했어도 유럽이라는 나라는 근본적으로 통합되기 힘든 역사적인 배경들이 있다. 나라 간 통합은커녕 같은 나라 안에서도 과거 다른 왕국이나 작은 도시 국가들을 거치면서 서로 문화가 틀려서 틈만 나면 독립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사실 유럽은 통합은커녕 앞으로도 더욱 작은 국가로 분열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벌써 내가 학창 시절에 배운 유럽보다 지금의 유럽은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열되었고, 유고연방도 여러 나라로 나누어지는 등, 소련의 해체로 인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앞으로도 몇몇 도시들과 문화권에서 분리 독립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유럽의 통합이란 사실상 요원한 것 같다

.

이 베네치아 광장 인근에 상당히 눈에 띄는 멋진 건물이 있었는데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라 한다. 이 사람은 앞의 이탈리아 역사에서 언급된 것 같이 1870년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인물이다. 흰 대리석의 웅장한 건물인 이 기념관은 현지인에게 ‘웨딩케이크’라는 별명으로 통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보면 정말 웨딩케이크가 연상되는 모습을 가졌다. 앞에 위치한 기마상은 당연히 비또리오에마누엘레 2 세일 것으로 보이고 내가 본 동상 중에서 가장 큰 것 같다.

20130707_150514.jpg

그 아래에는 멋진 복장을 한 군인 2명이 지키고 있는데, 이곳에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의 용사들 무덤이 있어서 24시간 꺼지지 않은 불꽃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첫날 로마에서 본 가장 멋진 건물이었다.

20130707_150734.jpg

아들은 지도를 유심히 보더니 여기서 걸어서 트레비 분수에 가자고 한다. 생각보다 좁은 골목이 여기저기로 펼쳐져 있어서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 간단하지 않았지만 트레비 분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네치아 광장부터 조금씩 흐려지던 하늘은 트레비 분수에 도착과 동시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에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보였고, 재빨리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아들을 불렀다. 어리둥절해하는 아들을 앉게 하고 잠시 지나니 비가 세차게 뿌리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다급히 카페에 들어오지만 자리가 없어서 다시 나가고 인근 카페들이 상황이 비슷해서 모두들 헤매고 있었다. 아들이 아빠의 민첩한 행동에 경의를 표했다.

그래도 우리가 있던 카페의 직원들은 친절해서 카페 앞에 접어 두었던 큰 파라솔을 다시 피고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더위에 지쳐있던 우리는 시원하다 못해 이빨까지 시린 슬러시를 먹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물론 10유로 밖에 안 되어서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카페 안의 큰 TV에서는 테니스 중계가 한참이었는데,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고 있었고, 각자 응원하는 선수들이 다른 지 한 선수가 점수를 딸 때마다 서로 환호했더. 유럽에서 테니스 인기는 상당한 것 같았다. 옆의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자기 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관광객들이었다.

나도 본의 아니게 테니스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고, 아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아 와서는 열심히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게 세차게 오던 비는 4시경이 되자 잦아들기 시작해서 우리는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와는 어느덧 상당히 멀리 와 있었는데 아들의 선택은 역시나 도보였다. 이제는 힘들던 도보가 괜찮아졌고 무엇보다도 상당한 운동이 되어서 몸에 좋을 듯했다. 게다가 식사까지 많이 줄였으니 체중도 줄면서 건강해지지 않을까? 한참을 걸어서 숙소가 보이는 근처까지 왔는데 치킨 집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아들과 나는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고 들어가서 치킨과 버거를 맛있게 먹었다. 음식도 괜찮았고 가격도 만만해서 11.5유로 밖에는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카드가 되어서 좋았다. 주인은 터키 계통의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터키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푹 쉬었다.


기대했던 로마에서의 첫 번째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스페인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아마 이것이 양국의 미묘한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3. 이탈리아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