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로마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바티칸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어제 친구와의 카톡에서 오늘 바티칸을 방문한다고 하니 예전에 자기는 너무 줄이 길어서 바티칸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포기했다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들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다고 하면서 시스티나 성당을 포함한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을 바로 구매했다. 요금은 16유로인데 아들은 학생이라고 8유로밖에 안 했다. 총 24유로를 내고 입장권 구입을 완료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일을 말만 하면 즉시 깔끔하게 처리하는 아들이 믿음직했고 이에 비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행 시작한 지 2주가 지나자 나의 아들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히 높아져 갔다.
바티칸 국은 인구 1,000명이 채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고, 1929년 2월 교황령에 의해 독립국가가 된 나라이다. 가톨릭의 총 본산이고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교황이 있는 곳이다.
숙소를 나와서 어제저녁에 치킨을 먹었던 Chicken Hut이라는 곳에서 brunch로 fried chicken을 먹었다. 오늘은 체력이 많이 소모될 것 같아서 아침부터 든든히 먹어두려고 했다. 1.5리터짜리 물도 구입했는데도 총 12유로 밖에는 들지 않았다.
항상 거리에서 식수 구하기가용이했던 스페인과 달리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물을 계속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 로비에 가니 어제 아들한테 우호적이던 매니저가 오늘도 아들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띠며 반가워한다. ‘very strong and handsome guy’라고 하면서.
시티 투어 버스를 알아보니 상세히 설명해 주는데 48시간에 28유로이었으며 노선을 확인해보니 바티칸 시국에도 들른다. 이 매니저는 자기가 가지는 수수료까지도 명쾌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당당함과 투명함에 반해서(?) 바로 56유로를 내고 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이 매니저가 가르쳐 준 대로 버스 정류장에 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고 생각보다 배차 간격이 지금까지의 스페인, 포르투갈보다는 느린 버스가 이미 많은 사람을 태우고 와서는 조금씩밖에 승차시키지를 못했다. 상당히 시간을 보내고서야 겨우 우리 차례가 와서 버스를 타고 바티칸으로 향했다.
바티칸에 도착하자 버스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하차를 했으며, 이미 안에는 긴 줄이 서 있었다.
오늘은 어차피 고생을 각오하고 왔던 관계로 아들과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줄 뒤에 서 있었고 다행히 바티칸 광장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기둥이 있는 회랑이어서 위에는 천장이 있었고 그나마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어서 견딜 만했다.
1시간 정도 줄을 서서 가니 우리 차례가 왔는데 입장 전 짐 검사하는 곳이 난리도 아니었다. 거의 9.11 직후 미국 가는 비행기 탈 때 하는 수준의 짐 검사였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워낙 만연하니 가는 곳마다 입장 절차가 장난이 아니었다. 옛날 같으면 투덜거렸을 법도 한데 요즘 워낙 때가 때인지라 오히려 고마워하면서 이 절차를 다 밟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이 회랑에서 1시간여를 줄을 서서 기다리며 가운데의 광장을 보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장 오래 관람한 곳이 싼 삐에뜨로(San Pietro) 광장이다.
삐에뜨로는 성경에 나오는 12 사도 가운데 한 명인 베드로를 뜻하는 이탈리아 발음이다. 미국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피터가 이 베드로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광장은 교황 알렉산드로 7세 때 유명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베르니니(Bernini)가 1655년부터 12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광장 한 가운데는 25미터의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눈에 띈다. 서기 37년 칼리쿨라 황제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 광장은 한 번에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일요일 낮 미사를 마치고 나면 교황이 성당 창문에서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며 가끔씩은 광장으로 직접 나오기도 해서 운이 좋은 사람은 바로 앞에서 교황을 직접 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광장 정면에 싼 삐에뜨로 대성당이 있다. 원래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언덕에 초라한 모습의 성당이 있었는데 교황 니콜라우스 5세는 이 성당을 개축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을 만들도록 명하는데 1506년에 착공해서 현재의 이 웅장한 싼 삐에뜨로 대성당은 1626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어진 것은 아니고 그 사이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오늘날의 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결정판이 탄생한 것이다.
이 대성당은 오늘날은 나를 위시한 많은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눈을 호강시켜 주지만 건설 당시에는 많은 구설수에 휘말린 건축물이다. 교황과 추기경의 외압에 의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참여하였으며, 후에 건축자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틴 루터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건축만 해도 브라만테의 주도로 시작되어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에 넘겨지는 등 우리가 알만한 대가들이 모두 참여했고, 또 건축자재를 로마 유적에서 충당했기 때문에 오늘날 로마 유적지의 많은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면에 보면 문이 3개인데 가운데 문이 원래의 성당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한다.
3개의 문 양옆에는 동상이 있는데 베드로와 바울의 동상이다. 이 중 왼쪽의 천국의 열쇠를 가진 동상이 바로 베드로의 동상이다.
가운데에 있는 지붕의 돔은 꾸뿔라 라고 부르는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이 돔의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별도의 입장료를 받았다. 걸어 올라가는 것은 7유로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것은 9유로이다. 엘리베이터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포기하고 걸어 올라가려고 알아보니 계단만 537개라고 한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입장하기 위하여 1시간 이상을 기다린 지친 몸으로 이 500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고 싶진 않았다. 깨끗이 포기했다.
성당 내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을 준다. 지친 몸도 안에 들어가서 그저 천정과 벽의 섬세한 예술성을 보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여러 조각 작품들도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삐에타(Pieta)를 직접 보니 너무 큰 감동이 왔다. 성모 마리아가 숨진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인데 정교한 작품의 예술성과 더불어 어떤 숭고한 종교적인 감상에 젖게 하는 작품이다.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인데 한참 그 앞에서 작품을 감상했다.
이밖에 베르니니의 청동 기둥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제작 당시 이 청동을 판테온의 입구에서 뜯어왔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또 이곳에 있는 지하무덤에는 역대 교황이 안치돼 있고 베드로의 무덤을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베드로의 유해는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진품으로 확인된 바 있다.
대성당을 보고 나서 밖으로 나오면 정원이 있는데 특이하게 솔방울 조각이 있다. 정원 이름은 삐냐 정원이라 한다.
크게 약 1 KM를 돌아서 박물관에 도착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것을 스마트 폰 자체로 보여주니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바로 표를 발부해 주었다. 가장 고전적일 것 같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지금까지 여행 중 어떤 곳보다도 현대화된 발권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최고의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일 것이다. 이 박물관의 입장 수입이 아마도 바티칸 국의 주요 수입원일 것이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 때 당대의 유명한 화가, 조각가, 그 밖의 예술가들을 모두 로마로 초빙해서 건축과 장식을 맡겨서 오늘날 바티칸의 기초를 다져 놓았고 그 후 600년에 걸쳐 전 세계의 명작을 수집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것이 당시 교황의 높은 예술적 안목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권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탐욕이었을지 몰라도 아무튼 오늘날 우리가 이런 멋진 박물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박물관은 여기서 글로 소개할 수 없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고 그중 상당수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명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스티나 예배당에는 천지창조 천장화가 있는데 여기서는 상당히 엄숙해진다. 당대의 교황과 가까웠던 브라만테는 유독 미켈란젤로를 싫어했다고 하는데 교황이 이 시스티나 예배당의 장식을 위해서 조언을 구하자 미켈란젤로를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당시 브라만테의 생각은 아무리 미켈란젤로가 천재라 할지라도 이 넓은 공간을 훌륭한 그림으로 다 채울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이 기회에 미켈란젤로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 일을 훌륭히 완수했다. 물론 그 대가는 엄청났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이 천장화를 완성하고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의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하는 학창 시절에 책에서 보았던 일화도 생각났다. 미켈란젤로는 이 필생의 업적과 자신을 맞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을 나올 때는 나선형의 계단을 이용하게 되는데 디자인이 인상적이 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자료를 보니 이 달팽이 모양의 계단도 쥬세페 모모의 작품이라 한다.
또 박물관을 나오면서 보면 옛날 로마식 건축답게 이곳도 4개의 건물들이 사각형을 이루고 그 사각형 안쪽에 정원을 조성하여놓았 다. 책에서 보았던 로마 제국시대의 가옥 양식을 직접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또 이 바티칸 국은 오직 스위스 용병만이 경비를 맡을 수 있다. 현재에도 100여 명의 용병이 있는데 사실 상징적인 의미이고 실질적인 경비는 이탈리아 경찰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용병의 제복도 미켈란젤로 작품이라 하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명품인 셈이다.
박물관까지 관람을 마치자 갑자기 너무나 큰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와 아들은 모두 박물관 체질이 아닌 지, 박물관만 관람하면 너무 지쳐서 꼼짝을 못 한다. 그래도 오늘은 바티칸 박물관이니만큼 그런대로 선방해서 평소 답지 않게 많은 것들을 보았다.
관람 후 안의 카페테이아에서 음료수와 파이들을 먹으며 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는 버스 안에서 아들과 나는 서로 말을 나누기도 힘들 만큼 지쳐 있었고, 나머지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로 탈진 상태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바티칸 국의 관광은 모든 관광객들의 영혼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몸에 있는 모든 힘을 빼앗아 가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It’s a long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