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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12. 2016

26. 로마여행 마지막 날

로마여행 마지막 날


오늘이 로마에서 3일째이며 마지막 여행일 이다.  

로마제국의 기원이고 또 서양문화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이곳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나 열정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 14세는 3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를, 몇 개월 이상 머물던 사람에게는 ‘로마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3주일은커녕 3일도 못 채우고 떠나는 우리를 보면 인사도 건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여지를 남겨놓고 떠나면 다음에 다시 올 빌미를 주지 않을까? 내 개인적인 느낌은 로마에서 여행하는 것이 스페인에서의 여행보다 상당히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과거에는 우연히 내 체력이 지쳐있을 때라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에 스페인을 거쳐 와 보니 그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다.  

같은 광장 문화 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경우는 광장마다 항상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녹지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심지어는 여행객을 위한 식수대도 설치되어있는 반면,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광장은 뜨거운 햇빛이 여과 없이 쏟아졌고, 앉아 있을 의자 는 커녕 지친 관광객들이 계단 등의 장소에 잠깐 걸터앉아 있기만 해도 관리인들이 못 앉게 제지를 했다. 식수도 내가 가본 관광지 중에서는 트레비 분수에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처럼 만난 식수대에는 모든 관광객이 몰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고 한참 줄을 서야 겨우 물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을 여행할 때는 모든 여행객들이 활기에 차 있는 반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모든 관광객들이 상당히 지친 모습을 보이며, 광장에서 제지될 것을 알면서도 아무 곳이나 주저앉거나 걸터앉았다가 관리인들의 지적을 받으면 힘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3일째 인데도 건강이 넘쳐나던 아들도 상당히 지쳤는지 몸 컨디션이 별로인 듯해서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여행 와서 몸이 아픈 것이 가장 문제가 되므로 잘 먹이려고 해도 몸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잘 먹지를 못했고 그런 와중에도 여행 일정은 계속 강행군을 지속하고 있으니 걱정이었다.

호텔을 나와서 아침 식사는 늘 먹던 chicken hut이라는 곳에서 버거를 먹고 물 1.5리터짜리를 구입했다.  식사 중 집시로 보이는 남루한 옷을 입은 여인이 구걸을 했다. 만일 여기서 돈을 주면 갑자기 많은 집시들이 몰려든다고 해서 돈을 주지 않았는데, 이 여인은 정말 끈질기게 빵이라도 주던지 아니면 같이 먹고 있는 프렌치프라이라도 달라고 버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주인이 쫓아냈는데 영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아침 식사와 물을 합쳐서 13.5유로를 지불했다.


 테르미니 역 방면으로 나와서 오늘까지 유효한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대전차 경기장 앞에서 내렸다.  첫날 콜로세움을 보고 베네치아 광장 가는 길에 스치면서 본 곳인데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대전차 경기장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영화 ‘벤허’ 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면 살짝 실망하게 된다.  그저 황량하고 넓은 공터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옛날 로마시대를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당시 25만 명을 수용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이 넓은 트랙을 4륜 마차들이 서로 부딪혀 가면 질주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직접 경기장까지 내려가서 보았는데 위에서 보던 것보다는 상당히 넓은 것 같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근처의 팔라티노(Palatino) 언덕을 보았다.  로마 탄생의 언덕이기도 하고 로마시대 황제 귀족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또 흔적만 남았지만 고대 로마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역시 첫날 미처 못 보았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시간을 보냈다.  이곳이 로마제국의 중심지이고 이곳에 우리가 아는 로마의 신화적인 인물들이 살았고, 집무를 보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약 2000여 년의 세월을 두고 같은 공간에서 내가 있다는 사실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성당이나 박물관들을 보는 것보다는 이런 역사적인 곳에서 그 당시를 상상하고 이 곳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고 하는 이런 시간들이 정말 좋았다.

남들이 보면 황량한 볼 것 없는 공터에서 멍하니 무얼 생각하고 있냐고 말하겠지만.


 내가 충분한 시간을 보낼 때까지 기다려 주던 아들은 근처에 있는 진실의 입을 보러 가자고 하였다.  이곳은 산타 마리아인 코스메딘 성당 입구에 있는 해신(海神) 트리톤의 얼굴이다.  원래는 로마 시대의 하수구 뚜껑인데 이해신 트리톤의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입을 다물어 손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역시 트레비 분수와 마찬가지로 영화 ‘로마의 휴일’ 덕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그 옛날 로마시대 맨홀 뚜껑인데…  일개 맨홀 뚜껑이 훗날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변하는 로마시대 문화의 우월성과 하찮은 이런 맨홀 뚜껑도 명소로 만드는 영화의 힘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별도의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들어간 김에 성당 내부도 둘러보았는데 그렇게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워서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여기서 도보로 다시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가서 판테온(Pantheon)으로 갔다.

판테온은 모든 신의 신전을 의미하며 기원전 27년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아그리파가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판테온은 125년 화재를 당한 후 복원한 것이라 하는데 원형을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도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내부를 들어가 보면 더욱 경이로운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둥이 없다는 점이다. 이 큰 건물이 지붕과 아치의 원리를 이용해서 오직 벽만으로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천장의 아치 가운데에 있는 둥근 채광창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이 자연 채광 만으로도 조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는 어떻게 할까?  궁금해졌는데 생각보다 그리 많이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고 한다.   건물 안의 더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면서 들이치는 비를 밖으로 밀어내는 원리라 하는데 2000년 전의 로마의 건축 기술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현재 이곳에는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또 1세, 라파엘로의 납골당으로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했던 점은 밖의 기온은 숨쉬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더위였는데 내부는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이 시원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유럽의 모든 건물같이 석조 건물의 특징답게 단열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페인에 비해서 녹지공간이 없고, 앉아서 휴식을 취할 공간이 없는 이탈리아의 경우 이런 건물의 내부의 시원한 공간에서 몸을 다시 충전시켜 주어야 한다.

볼수록 신기한 내부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고, 안의 카페에서 4유로씩 하는 과일 주스 한잔씩을 마시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판테온을 떠났다.  첫날 비가 온 관계로 제대로 못 본 트레비 분수를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트레비 분수 방면으로 걸어가다가 길가에 늘어선 상점 들의 가판대에서 몇몇 옷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옷들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들도 많지만 일반 옷들도 제품의 디자인과 질이 좋으며 특히 염색기술이 우리보다 우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물론 명품 브랜드의 가격은 상상을 뛰어넘지만.

특히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이즈가 내 몸에 잘 맞는다는 점이다. 아마 내 체형 조건이 이탈리아 남성과 흡사한지 상의의 경우 어깨부터 허리까지 맞춤복 같이 잘 맞는다.  

나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디자인도 좋고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의 체형이 당당해서 인지 멋있고(그들의 축구 매너는 전혀 멋있지 않다), 특히 아주리 해를 상징하는 짙은 푸른색이 너무 좋다.  앞서 말한 염색 기술의 차이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짙은 푸른색이 맑고 깨끗하게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상점 가판대에서 이런 이탈리아 축구 유니폼과 같은 색상과 디자인을 이용한 티셔츠가 있어서 바로 구입했다.  가격도 8유로로 엄청 저렴했다.  옆에 같은 디자인의 점퍼가 있었는데 아들에게 하나 사 주었다.  이것도 20유로이니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다시 트레비 분수에 도착하니 첫날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영화 때문에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분수는 영화의 도움이 없었어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유명해 질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식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식수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서인지 식수 나오는 곳이 특별히 붐비지는 않았는데 여기는 이런 곳이 드물어서인지 많은 관광객들이 식수를 받으려 줄을 서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들 역시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가지고 다니던 생수통에 물을 가득 받아왔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물을 사서 먹자고 했는데도 기어이 더운 곳에서 줄을 서서 물을 받아오는 아들을 보니 ‘아! 이 아이도 돈을 상당히 귀하게 여기는 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미처 느껴보지 못하였던 아들의 모습이었다.  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돈을 벌게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런 아들이 참 대견하기도 했고 앞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안 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고 항상 가치 있게쓰 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들의 돈에 대한 교육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 로마를 방문하고 싶은 우리는 열망을 담아서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던 유로 동전을 하나씩 분수로 던졌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트레비 분수에서 아들은 스페인 광장으로 가 보자고 한다.  아마 아들이 학원 다닐 때 알았던 여학생이 이곳 로마에 여행 왔다고 하는데 여행사에서 하는 패키지 투어로 온 모양이었다.  지금 로마 시내를 다니고 있는데 5시경 스페인 광장에 도착하니 가능하면 한 번 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시간 맞추어 부랴 부랴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도착해 보니 스페인 광장에서 137개 계단 위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였다. 밑으로 까마득히 스페인 광장이 보였다.

저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암담해서 나는 그 위에 그냥 있기로 하고 아들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들한테 이제 더 이상 갈 곳도 없으니 천천히 시간 보내고 오라고 이야기하고는 위에서 광장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광장에는 사람도 엄청 많고 관광버스도 여기저기 정차되어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마침 옆의 교회에서는 결혼식을 막 마쳤는지 신랑 신부가 계단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흥미롭게 이 나라의 결혼문화를 엿보고 있었는데 어떤 이탈리아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여행을 떠나서 계속 면도를 안 하고 있어서 내 수염은 상당히 길게 자라 있었는데 내 수염이 너무 멋있다고 말을 걸더니 일본에서 왔는지 기타 등등 너무나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손목에 갑자기 오색실로 새끼를 꼬듯이 하면서 팔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순간 상황을 눈치채고 필요 없다고 팔을 빼려고 하니 절대 사라고 하는 것 아니라며 한 번 해 보기만 하라고 하면서 순식간에 능숙한 솜씨로 내 손목에 팔찌를 완성시켰다.  완성시키자마자 멋있다고 말하고는 20유로라고 말했다. 내가 기가 막혀서 웃으면서 ‘너라면 이런 것 20유로 주고 사겠냐’고 되묻고는 필요 없으니 빨리 풀라고 하였다.  그러자 같은 패거리로 보이는 흑인 1명이 같이 가세해서 그러면 10유로에 해 주겠다고 하면서 약간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좋게 말로 해서는 해결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도 인상을 쓰면서 빨리 풀라고 소리 지르면서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다가섰고, 이 친구들이 예상 못했던 반응에 당황하였는지 서로 이탈리아 말로 이야기하더니 얼른 내 손목의 팔찌를 풀고는 급히 도망갔다.  

때 맞추어서 밑의 광장에서 아들도 올라왔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히 내게 달려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들은 처음에는 놀라서 눈이 둥그레지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참 이탈리아 로마 소문대로네요’하고는 웃었다.

이 스페인 광장이 우리가 로마에서 방문한 마지막 장소가 되었고, 여기서 로마 일정이 마무리되었는데, 로마는 도착과 동시에 당할 뻔한 사건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날 마지막 스페인 광장에서의 팔찌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다 당당히 맞서서 돈을 뜯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지?

그래도 유럽이기에 망정이지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꼼짝없이 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첫 방문지인 수도 로마는 모든 면에서 인상적인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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