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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14. 2016

27. 피렌체 도착 및 피사 사탑

피렌체 도착 및 피사 사탑


오늘은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다. 

 나 역시 피렌체는 처음이다.  근처의 피사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서 가 보았지만 피렌체는 가보지 못했다.


피렌체는 정말 유명한 도시다.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린 곳이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이기도 하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의 패권을 다룬 책들을 보면서 나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공국이 얼마나 강국으로 군림했는지 잘 안다.  또 피렌체 하면 그 유명한 메디치 가 생각난다.  막강한 재력으로 피렌체의 상업, 공업, 예술을 발전시켰다.  단 하나 단점은 이탈리아 남성은 잘 생긴 걸로 유명한데 이 메디치 가는 전혀 미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아는 미켈란젤로,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모두 피렌체 출신이고, 1982년에 이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피렌체 사람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대구와 같이 분지인지 여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를 각오해야 한다.

  

미리 피렌체가 덥다는 정보를 입수한 아들은 피렌체에서는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쉬면서 여유를 가지겠다고 했고 피사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  기울어진 사탑 하나 보러 가기에는 일정상의 여유가 없는 듯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했다.  

항상 우리 아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매니저가 너무 섭섭해하면서 아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호텔에 조식 뷔페가 있어서 인당 10유로씩 내고 아침을 해결하기로 하였고, 호텔비는 총 164유로가 나왔다.  정말 저렴하게 숙박을 해결한 셈이다.  아들의 능력은 단순 경비 절감이 아닌 비용 대비 최상의 호텔을 잘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와 보지도 않고 한국에서 이런 호텔들을 찾아내는지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호텔을 나와서 도보로 가까이 위치한 역으로 가서 9시 20분 기차를 탔다.  10시 50분 피렌체 도착이니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차는 특급열차로 초 고속열차였다. 우리가 탄 것이 1등석이다 보니 실내 모든 장치와 의자들이 상당히 고급이었고 음료와 물 타월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었다.  시속 200-240Km를 오가면서 정말 총알같이 달렸는데 그러면서도 거의 진동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기차 여행도 좋았지만 이 구간의 기차는 정말 고급스러운 여행이었고 즐거운 기억이었다.


정확히 10시 50분에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했는데 내리기 싫을 정도로 이 구간의 기차여행은 너무 좋았다.  아들이 예약한 피렌체의 숙소는 Gemini Studio라고 되어 있었다.  이름만 보면 원룸 형태의 아파트 같은데 어떤 종류의 숙소인지 궁금했고, 정작 예약한 아들도 나와 똑같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했다.

일단 어떤 곳이든 체크 인 시간이 오후 2시-3시 사이일 텐데 시간이 너무 남았다.  역에 큰 짐을 맡기고 먼저 피렌체 시내를 구경하기로 하고 코인 락카를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짐을 맡길 락카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일단 숙소로 가서 체크 인 시간 전에 짐을 먼저 맡기고 돌아다니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주소를 가지고 능숙하게 숙소를 찾아가던 아들은 일반 호텔과 같은 중심지 번화가가 아닌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서고 있었고 우리의 큰 가방의 바퀴 구르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미 들었던 대로 피렌체의 더위는 우리를 숨 막히게 했고, 이렇게 고생해서 찾은 숙소는 우리를 다시 한번 절망시켰다.

로비라 할 것도 없는 작은 공간에 데스크만 있었는데 그 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현관 유리문이 잠겨 있었다.  문에는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우리의 계획을 송두리째 앗아버리는 문구가 있었다.

‘luggage deposit not allowed’(짐은 맡아주지 않습니다)

아들은 절망했고, 이탈리아를 욕하기도 하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곳은 주택가라 근처에 그 흔한 카페 한 곳 없었고, 12시 경의 피렌체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어떤 곳도 없었다.  가끔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만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이런 상황에서는 나이가 많은 내가 결정을 내려 주어야 했다.  아들에게 다시 역으로 가서 큰 짐을 맡길 라카를 다시 한번 찾아보고 피사를 다녀오자고 했다.  아들은 아까 찾아보았지만 라카는 없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이런 아들에게 다시 한번 찾아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정 최악의 경우 라카가 없으면 큰 짐을 가지고 피사를 다녀오자고 하였다.  어차피 여기서 피사까지는 기차가 데려다줄 것이고 피사 역에 도착해서 피사의 사탑까지도 차편이 있을 것 같으니 그리 고생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안의 말을 하자 아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다시 그 무거운 짐을 끌면서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받으며 역으로 향하면서 나는 아들에게 이런 돌발적인 힘든 상황들이 나중에는 귀중한 추억이 되며, 하나님이 너에게 꼭 피사의 사탑을 보라고 하는 좋은 뜻일 거라며 이야기해 주자 아들도 이제는 기분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해서 넓은 역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어디에도 코인 라카는 없었다.  설마 했지만 이제는 무거운 짐을 가지고 피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사실 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큰 짐을 들고 피사를 가자고 했지만 실제로 이럴 상황이 되자 절망스러웠다.  이런저런 힘든 상황에 피곤해진 아들과 나는 우두커니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하는 한국말이 들렸다.  깜짝 놀라서 옆을 보니 키가 작고 이쁘장하게 생긴 한국 여성이 서 있었다.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이탈리아를 돌아다닐 때 역마다 그런 제복을 입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아마도 이탈리아 관광 당국에 소속되어 관광 안내를 돕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한국 분 이세요?’하고 물어보았고 바로 큰 짐을 맡길 코인 라카를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분 말씀이 이곳에 코인 라카는 없고 짐을 유료로 맡아 주는 창구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분의 안내를 받아 그곳까지 온 우리는 이 분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했고, 이곳에 우리의 짐을 맡겼다.

요금은 짐당 5유로씩 받았으며 5시간 기준이고 시간 초과하면 초과 요금을 받았다.


큰 짐이 해결되자 아들과 나는 갑자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고 다시 상쾌한 기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행복이란 것이 정말이지 별 것 아니다.  12시 28분 기차를 탔고 정확히 1시간 뒤인 1시 28분에 피사 역에 도착했다.  피사 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정말 우연 이라기에는 너무 적시에 나타나서 우리를 도와주고 홀연히 사라진 그 한국 여인이 계속 생각났다.  사실 그 후 우리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역마다 이런 제복을 입은 직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한국 여성은 물론 아시아계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두 이탈리아(아니면 유럽) 사람만이 있었다.  이런 분들의 도움이 필요 없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한국 사람이 하필 피렌체 역에서 그것도 우리는 알지도 못했는데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에서 먼저 그분이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도움받을 일 없느냐고 물어보았고 이런 모든 사실들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이 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큰 짐을 들고 짜증스럽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왔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감사하는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아무튼 이 날의 기억은 그 후 여행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주는 큰 힘이 되었다.

피사 역에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아들이 알아보고 오더니 피사 사탑까지 가는 버스인데 인당 왕복 1.2유로씩이라고 한다.  단 70분만 티켓이 유효하다고 하는데 사실 피사의 사탑에서 1시간 이상씩 소요될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피사의 사탑만이 유명한 조그마한 소도시로 있지만 사실 피사도 한때는 제노바, 베네치아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였다.


 피사의 사탑은 여전히 경이로웠고 기분 때문인지 과거 보았을 때보다 더 기울어져 보였다.

이 사탑은 옆에 있는 두오모의 부속 종탑이었는데 지금은 두오모 와는 상대도 안 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건설 당시부터 약한 지반과 3미터밖에 안 되는 석조 토대 때문에 3층으로 올라갔을 때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사를 중단하고 면밀히 검사해 본 결과 기울기는 했어도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사탑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자 사람의 입장을 금지시키고 보강공사를 했고 2001년 공사가 마무리된 후 한정된 수의 인원만 입장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날 입장객 수가 다 채워져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곳에 안 오기로 계획했었던 아들도 막상 와서 보니 상당히 즐거워했고 오전의 피렌체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도 다 잊어버린 듯했다.

 과거에는 이 피사의 사탑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옆의 두오모와 우아한 원형의 세례당 역시 상당히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망중한을 즐겼다.  실로 이탈리아 와서 처음 만나는 넓은 녹지와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탄산음료와 물 등을 사서 마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 타고 역으로 돌아와서 3시 20분 기차를 탔다.  

4시 20분 경 피렌체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잠깐 지나가는 비가 아니었다.  하늘도 어두워지면서 폭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맡겨둔 가방을 찾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우비를 입고 가방도 비닐 케이스를 꺼내서 덮고 역을 나와서 숙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비는 전혀 소용이 없을 만큼 비는 엄청난 기세로 내렸고 가방 비닐 케이스도 가는 도중 바퀴에 걸려서 찢어지는 등 정말 피렌체는 처음 방문한 우리를 힘들게 했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나와 아들은 실내로 들어가기 미안할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내 가방의 접이식 손잡이가 고장이 나서 접혀 들어가지 않았다.

정말 오늘 하루는 우리에게 최악의 날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쳐 있는 우리를 맞이하는 데스크의 관리인은 깐깐한 표정이었고,  엄청 불친절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방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일단 방이 아주 넓었고 침대도 큰 침대로 2개나 있었고,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주방까지 있었다.  대만족이었다.

일단 가방을 열고 여행을 떠나 지금까지 한 번도 짐을 다 푼 적이 없었는데 모든 짐을 다 꺼내고 가방 접이식 손잡이 부분이 들어가는 부분을 분해해서 보니 손잡이가 접혀 들어가기 위한 밸브가 고장이 나 있었다.  앞으로 여행 일정은 많이 남았는데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더 걱정 안 하기로 했다.  어떻게 되겠지.


샤워하고 쉬고 있는데 생각보다 와이파이가 상당히 약했다.  아들이 잠깐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기에 걱정이 되어서 나가보니 방에서 많이 떨어진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이곳이 와이 파이가 가장 세다고 한다.  나도 거기서 국내 소식과 친구들과의 카톡들을 보고 있는데 능력 있는 아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빈 의자를 하나 구해서 나보고 앉으라고 가져다주었다.  참 대단한 아들이다.

아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나 혼자 복도에서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아까 깐깐했던 관리인이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갑자기 이 숙소에 대한 모든 것이 만족 상태로 바뀌었다.


오늘은 힘든 날이었지만 오전의 난관은 피렌체 역에서 만난 천사(?)때문에 해결되었고, 오후의 폭우로 인한 난관은 좋은 숙소로 해결된 하루였다.  또 예정에 없던 피사의 사탑도 볼 수 있었고.


 만일 우리 어머니가 이런 상황을 들으셨다면 ‘사람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셨을 테지만,  나는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 하면서 감사하기로 했다.


기억에 남는 피렌체의 첫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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