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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Apr 15. 2016

28. 피렌체 관광

피렌체 관광


어제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이 있어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니 상당히 피곤했다.  아들 역시 피곤한지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사실 어제 아들은 또 다른 고난도 있었다.  어제 로마에서 피렌체 올 때 우리는 처음으로 유레일 패스를 개시하게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패스 개시일에는 개시일 도장을 받는 약간의 절차가 있어서 역에 일찍 나가자고 했는데 아들은 스마트 폰에 정신이 팔려서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도장만 받으면 되니 크게 시간 걸릴 일 없다면서.

내심 불안했지만 항상 그래 왔듯이 아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역에 도착해 보니 대기 번호가 엄청났다.  아무리 사소한 도장을 받는 일에도 일단 대기 번호 순서가 와야 가능한 유럽에서(사실 우리나라도 같을 것이다) 예약한 기차를 타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했다.  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리저리 다녀 보았지만 뾰족한 묘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이런 일을 자초한 아들한테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 역시 자제하기로 했다.  이번에 기차를 놓치면 상당히 일정에 차질을 빚겠지만 아마도 장기적으로 볼 때 아들에게는 큰 교훈이 되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항상 생각하듯이 어차피 아들 여행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더니 빨리 기차를 타자고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하는 나에게 아들은 순서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창구에 가서 도장을 받아온 모양이었다.  소위 말해서 새치기를 한 것이다.  사실 전혀 그런 짓을 하지 못하는 성격의 아들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알 만 했다.  어제의 이런 작은 사고도 아들에게는 큰 공부가 되었을 줄 믿는다.


어쨌든 파란만장했던 어제의 사건들은 우리를 잠자리에서 쉽게 일어서지 못하게 했고 겨우 10시 10분 경이되어서 숙소를 나설 수 있었다.  아들의 오늘 일정은 스페인 세비야 때처럼 너무 더위가 심하니 하루 쉬어가는 날로 잡은 모양이다.


우리의 현금 사정이 급했기에 아들은 일단 역에 가서 유로화 현금 인출이 가능한 국제 ATM 기계를 찾아보자고 했고 나 역시 역에는 이런 기계가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하고 역으로 갔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현금 인출에 실패하고 역의 카페에서 핫도그와 음료수로 브런치를 먹었다. 

 

그리고는 더위를 뚫고 두오모로 향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이탈리아의 두오모 중에서는 밀라노의 두오모가 최고였었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고 피렌체의 두오모는 정말 너무 멋있었다.  밀라노의 두오모가 압도당할 만큼 웅장하다면, 피렌체의 두오모는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이 강성한 피렌체 공국의 종교적 중심지였고, 또 르네상스가 꽃핀 곳이었으니 이렇게 화려한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1296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170년이 걸려서 완성되었고 외벽이 여러 색의 대리석을 이용해서 상당히 화려했다.  한마디로 부자 티가 확 나는 두오모였다.

 두오모라는 말이 오늘날 돔(Dome)의 어원이니 이곳에도 당연히 큐뽈라라 불리는 주황색의 멋진 돔이 있었다.

두오모 바로 옆에는 탑이 있는데 지오또라는 사람이 설계한 지오또 종탑이라고 한다.  높이가 84미터라 하는데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명소이다.  건설 당시에도 완전한 예술품으로 칭송받았다고 하는데 지금 보아도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벽의 색채나 부조는 절로 감탄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외관에 심취한 나머지 또 지쳐서 오늘은 쉬는 날로 정하였기에 내부를 건성으로 보았는데, 돔 지붕의 내부에 그려진 벽화 그리고 464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또 지오또의 종탑도 414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탑의 꼭대기에 있는 테라스에 도달하고 그곳에도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바티칸의 싼 피에로 성당에서 한번 겪은 일이지만 이탈리아의 두오모는 꾸뽈라까지 항상 올라가서 건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계단이 바티칸에서는 500개가 넘었고 피렌체에서는 400개가 넘었다.

지금도 내부의 유서 깊은 벽화를 안 보고 온 것은 상당히 후회가 되지만,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도 464계단을 올라가서 전망대에 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이 피렌체의 두오모는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내 기억에 등재되었다.


또 이 두오모와 종탑 앞에는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얼핏 보면 외벽의 색채나 느낌이 비슷해서 이 두오모의 부속건물 정도로 보이나 실은 이 두모 모보다 약 1세기 전에 건설된 세례당이다.  두오모 건설 전까지 약 100년간은 이 세례당이 성당으로 사용되었으며 단테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피렌체의 수호성인인 산 죠반니에게 바쳐진 이 성당은 그래서 지금도 산 조반니 세례당이라 불리어진다.  이 세례당은 3개의 문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두오모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의 문이 유명한데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한 곳이라 한다.  성서 창세기의 이야기를 담은 10개의 부조가 있는데 상당히 아름답다.  그런데 이것은 복사본이고 진품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두오모에서 나와서 남쪽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는데 이 길이 피렌체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이다.  깔짜이우올리(Calzaiuoli)거리라 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쇼핑에 부쩍 눈을 뜬 아들과 함께 아이쇼핑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거리 말고 명품 브랜드들만 모여있는 거리가 또 있다.  그곳에는 여러 명품들이 있는데 피렌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페라가모가 특히 유명하다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에 도착해서 보니 이탈리아 와서는 오랜만에 보는 드넓은 공간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조각품들이 광장에 전시되어있어 신기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책을 보니 모두 모조품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진품들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손상되기 시작하자 진품들은 모두 미술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중 다비드와 헤라클레스의 조각이 정문을 지키고 있는 멋진 건물이 베키오 궁전이라 한다.  과거 피렌체 공국의 청사였으며 지금도 피렌체 시청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넓은 공간과 걸터앉을 수 있는 광장에서 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혼자 사진 찍으며 다니는 한 외국 청년이 상당히 낯이 익었다.  아들 역시 어디서 본 것 같다며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 기억력이 남다른 나는 바로 이 청년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로마로 비행기 타고 올 때 우리와 같은 좌석에 앉았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했다.  여행 중에는 이것도 대단한 인연이라고 내가 말을 건네려 하자 이 청년도 바로 기억하고는 파안대소했다.  이 청년은 브라질에서 온 학생이고 로마에서부터 이 피렌체까지 그리고 내일 베네치아로 떠나는 일정까지 우리와 똑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 청년의 영어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다.  Yesterday와 tomorrow를 구별 못할 정도였으니.  아쉽지만 이쯤에서 작별을 고해야 했다.

너무나 반가운 만남이었고 이렇게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을 쌓아가는 것도 여행이 주는 크나 큰 즐거움이다.

그 후에도 유럽을 여행하면서 심심치 않게 브라질에서 온 관광객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너무 영어를 못했다.  이 당시 브라질 경제가 아주 좋았으므로 많은 관광객들이 유럽에 온 것 같았다.  물론 나의 몇 안 되는 경험으로 브라질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 당시는 그랬다.


그 청년이 광장을 떠나면서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관광책자를 보던 아들은 근처에 있는 단테 생가에 가보자고 했다.

막상 가서 보니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고 사진도 찍어 왔지만 누가 보면 피렌체에 있는 일반 주택보다도 더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ATM 기계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international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어서 아들이 국내 은행에서 만들어 온 카드를 넣고 현금을 인출해보기로 했는데 카드를 입력하고 필요 금액을 입력하고 기다리는 순간 우리는 긴장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아내와 만나기로 한 오스트리아 짤스브르크까지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았다.

드디어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유로화 지폐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의 감동이란?

현금 2,000유로가 생기자 너무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페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여행 내내 이런 국제 현금 인출이 가능한 ATM 기계를 찾았었는데 결국 피렌체에서 만나게 되었다. 역시 피렌체는 국제적인 도시인 것 같다.  

이제부터 여행은 아들 돈으로 하는 것으로 알겠지만 걱정 마시라.  약 1개월 뒤 한국에 가자마자 후하게 환율을 적용해서 30만 원을 아들에게 주었으니깐.


어느덧 시간도 오후 4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피렌체의 더위에 지친 아들은 그만 숙소에 돌아가서 쉬자고 했다.  가는 길에 피자집에서 큰 피자와 음료수를 사서 숙소에 가지고 와서 먹었다.  상당히 큰 피자였는데도 음료수 포함 13.7유로 밖에 안 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푹 쉬었는데, 이 날의 휴식 덕분인지 아들이 식욕을 되찾아서 나의 시름을 덜어주었고, 나 역시 더운 하루였음을 감안할 때 컨디션을 많이 회복하고 있었다.

오늘은 날이 더워서 쉬어가는 날로 잡았는데 피렌체의 화려함은 우리를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오늘 본 피렌체는 생각 이상으로 아름다운 도시였고, 화려한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답게 내가 좋아하는 화려함도 가지고 있어서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와야 할 도시로 마음의 결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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