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에 스페인이 세계 최강국이었다가 무적함대가 영국에 무너지면서 그 주도권이 영국으로 넘어갔다고 알고 있었다. 일견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 약 200년에 걸쳐서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의 자리는 네덜란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즉 16-17세기가 그 시기인데 이 당시의 네덜란드의 국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각 시기별로 세계 최대의 부국 중에서 최고의 나라는 어디일까? 이런 질문에 사실 답을 주기는 힘들지만 각 시기별 세계 최대 부국의 국민소득이 그 당시의 2 위국의 국민소득에 비하여 어떤지 하는 지표로 분석해 보면 압도적으로 16-17세기의 네덜란드를 손꼽을 수 있다.
이 당시 2위 부국이었던 영국의 거의 2배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는데 역대 어느 1위 국도 2 위국에 비하여 2배에 달하는 이런 높은 수준을 보여준 나라는 없다.
또 이 당시가 해양력이 국력을 상징하는 지표였다고 하면 전 유럽이 보유하고 있던 선박수의 절반이 네덜란드 소유였다.
경제학의 고전인 영국의 아담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에서는 그 당시 네덜란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네덜란드가 영토나 인구수는 영국보다 적지만 훨씬 잘 사는 나라로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치로 제시하는 것이 그 당시 네덜란드 정부는 약 2% 금리로 돈을 차입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일반 서민도 3% 정도면 차입 가능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영국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이고 이미 쇠퇴 일로를 걷고 있던 스페인은 차입금리가 거의 40%에 육박했다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네덜란드의 국가 신용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증명해 준다.
그렇다면 과거 별 볼 일 없던 나라이고 주변국의 침입으로 고생하던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
앞의 스페인의 역사에서 언급했지만 1492년 유대인들의 추방령이 내려진 후 유대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이슬람 문화로 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이 네덜란드이다. 그것의 이유는 그 당시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사상인 ‘자유’였을 것이다.
당시 전 유럽이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었을 때이고 신. 구교의 대립은 많은 전쟁을 양산하고 있었다. 모든 나라가 신교와 구교 중에 하나를 선택했고 여기에 맞지 않는 국민에게는 모진 박해가 있었을 때였다. 여기에 가장 앞장서서 구교를 지켰던 곳이 스페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당시에 네덜란드는 신교. 구교 여부는 물론 유대인과 같은 전혀 다른 유대교 등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였다. 자연히 종교가 지배했던 당시 사회상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에 모여들었고 결국은 사람이 재산이라는 경제학의 원리에 맞게 네덜란드는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이런 교리에 근거하여 이에 맞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추방한 스페인은 빠르게 쇠퇴해 간다.
금융에 종사했던 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 당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금과 은이 국력의 척도라 하여 해외 유출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그런데 네덜란드만 예외였다. 모든 금과 은의 유입 및 유출이 자유로웠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완벽한 자본자유화를 시현한 것인데 지금부터 400-500년 전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자연스럽게 많은 경제활동이 네덜란드에 집결되어서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가서야 유가증권 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해서 자금의 해외 유입과 유출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유로운 사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렘브란트나 고호 등과 같은 많은 유명화가들을 이 작은 나라에서 배출했는데 역시 이 당시는 종교에 의해서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제한적이었던데 반하여 유독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것을 다 주제로 삼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가면 대마초가 합법이고 또 성 매매를 하는 곳도 공공연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도 다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내고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고 서방 세계의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네덜란드의 이런 문화를 접하면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이때마다 네덜란드인의 반응은 한결같다. 자유!
또 다른 요인은 우리가 모두 아는 네덜란드인 들의 근면성이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였는데 많은 간척사업을 통해서 이를 극복했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고 네덜란드인은 땅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물론 모든 사업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운도 많이 작용했다. 이 당시 유럽의 최대 곡창지대인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에서 큰 흉년이 들어서 곡물 가격이 거의 배로 올랐는데 이때 네덜란드에서 이 곡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소위 말하는 돈방석에 앉았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단지 운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 많은 간척사업을 통해서 넓은 경작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 이 당시의 부가가치가 높았던 사업 중에 청어잡이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 당시 전 유럽에서 청어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청어 떼는 발트해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청어떼들이 갑자기 서식처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옮기게 된다. 이 당시 자료에 의하면 북해에 얼마나 청어떼가 많았는지 배가 운항하는데 지장을 받았을 정도라 한다. 이것 역시 네덜란드가 어업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큰 돈을 버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도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가 청어잡이에 대한 모든 준비가 다 잘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북해가 네덜란드만 가지고 있는 내해가 아닐 텐데 인근 다른 나라는 네덜란드만큼 수혜를 못 입었다.
결국 어떤 운이 다가와도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그것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준비 없이 놀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운이 닥쳐도 그것을 움켜쥘 능력이 없게 된다.
이 당시 네덜란드의 산업 구조를 보면 제조업보다는 금융의 비중이 컸고, 해외투자를 활발하게 해서 해외투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2배 수준의 규모였다고 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활발한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해외투자규모가 국내총생산의 절반 수준 정도 밖에는 안된다.
물론 이것을 보고 미국의 해외투자가 네덜란드에 비하면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바로 양국의 내수 시장의 차이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국토가 좁고 인구수도 적은 관계로 내수시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살길은 활발하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반면에 미국은 광활한 영토와 많은 인구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최강의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해외투자를 많이 하여도 국내총생산에 비하면 그 비율이 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를 연구하자는 분위기가 어떤 정권하에서는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무조건 모방하기에는 조금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과거 같이 너무 해외 의존도가 크면 해외변수에 너무 민감하게 경제가 작용하게 되고 결국은 내수 시장 역시 어느 규모로는 키워 놓아야 서로 조화가 이루어질 것 같다.
이런 네덜란드도 역사가 항상 그러하듯이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항상 뻔한 답인 돈을 버니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근로의욕이 사라지고 돈을 번 사람들은 그것을 재투자하지 않고 사치품이나 별장 사들이기에 치중했다. 자본가들만이 아니고 노동자들도 길드라는 조직을 통해서 단합함으로써 임금이 해마다 높아지고 이런 것들은 필연적으로 제조업의 경쟁력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래서 제조업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호황을 구가하던 경제는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조세 수입이 줄어들자 사치품이라 생각되는 소비재에 대해서 과중한 세금이 부과되고 이것은 더욱 소비를 위축시켜서 경제 악화를 심화시키게 되었다. 지금도 네덜란드의 집들을 보면 창들이 좁거나 커튼이 짧거나 한데 모두 이 당시 이런 것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라 한다. 어째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서 상당히 우려가 된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 모든 것보다 더한 요인은 초창기 유대인을 비롯한 인구 유입과 반대로 많은 금융전문가를 포함한 고급 인력들이 영국으로 대거 유출하면서 네덜란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영국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세계 최강국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당시 영국에는 명예혁명이 일어나고 네덜란드의 빌렘 3세가 영국의 공동 국왕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혼자 가지 않고 자기 세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약 3만 명 정도를 데리고 간다. 이때 금융전문가들이 많이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한 때 대표적인 영국의 투자은행이었던 베어링이 이런 네덜란드계 금융인들이 영국에서 세운 은행이었다. 당연히 스페인에서 쫓겨나 네덜란드에 들어와서 금융업의 꽃을 피웠던 유대인들도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의 하락과 영국의 상승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래저래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영국과 감정이 안 좋아진 네덜란드 금융기관이 영국과의 거래를 줄이고 프랑스로 대출선을 바꾸었는데 여기서 요즘 말하는 금융권의 부실 채권이 급증하고 이것이 또 발목을 잡게 된다. (권홍후 저 ‘부의 역사’ 참조 및 인용)
이렇게 세계 1위의 자리를 내어준 네덜란드는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데 정상의 자리는 오르기는 힘들지만 내려오기는 간단하고 한 번 밀리면 다시 오르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세상 이치를 다시 한번 증명해 준다.
이런 네덜란드는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데 우선 가까운 일본을 근대화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닿았는데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듯이 하멜이라는 사람이 일본으로 가다가 우리나라에 표류하면서 또 이 하멜이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으로 남기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본격적인 통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사실 하멜보다 우리와 네덜란드 관계를 이어준 분이 계시는데 바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이다.
결과가 좋아서인지 이때부터 네덜란드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상당히 호의적으로 바뀐다. 한국 축구에 대해서 기존 한국 축구 지도자와는 전혀 다른 진단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 훈련시킨 이 명장은 한국 축구를 바꾸어 놓았고 기존 한국의 축구 지도자를 무능한 자로 만들었다.
이런 능력과 더불어 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히딩크의 외국어 실력이었다.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를 현지인과 같은 수준으로 구사하는 그를 외국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심지어는 히딩크가 언어에 상당한 소질이 있다고도 신문기사에서는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히딩크가 네덜란드의 표준일 정도로 모든 네덜란드인들은 외국어 1-2개 정도는 유창하게 구사한다. 히딩크만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어는 전 국민이 자유롭게 구사하는 듯하다.
내가 보기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면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 중 홍콩에 가 보면 영어를 잘 구사하지만 택시를 타면 전혀 안 통한다. 즉 어느 정도 교육이 된 사람들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택시를 타도 영어가 통하기는 하지만 싱가포르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다. 오죽하면 싱글리시라는 조롱도 받는다. 자국민들끼리만 통하는 영어인 것이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택시 기사는 물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트럭 운전수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그것도 훌륭한 발음으로. 어떨 때는 영국보다 더 영어를 잘 하는 것 같다. 사실 영국에서도 웨일스나 스코트랜드 등의 짙은 사투리가 섞인 영어를 들으면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이렇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에 대해서 네덜란드인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영어를 회화 위주로 배우고 모든 고등학교 졸업 시 영국인과 free talking 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람 말이 모든 고등학교에 적용되는 것 인 줄은 모르겠으나 사실이라면 네덜란드의 모든 고등학교 졸업자는 현지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얼마 전 잡지에서 우연히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분이 쓴 글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의 중학교 정도 들어가서는 영어를 정말 강도 높게 가르친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지금도 국민소득이 5만 불이 넘는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수로 내수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거 16-17세기와 마찬가지로 국내보다는 해외투자 그리고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해외로 취업을 한다. 이런 현실에 맞게 젋은이 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영어 교육을 하는데 반하여 우리의 영어교육은 시험을 위한 한국만의 영어교육인 것 같아서 너무 답답하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영어 배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는데 전혀 현실세계에서는 도움이 안 되니 심각하게 반성해 볼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네덜란드인들의 해외 경쟁력은 아주 우수하다고 인정을 받는다. 영어의 완벽한 구사와 조상 때부터 해외로 눈을 돌린 덕인지 국제적인 적응력이 남다르다. 반면에 같은 처지의 보통 한국인들의 국제 경쟁력은 아예 없다고 보인다. 가장 기본이 되는 영어 구사가 자유롭지 못하고 국제적인 적응력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앞으로도 한국에서의 일자리는 한계가 있는데 언제까지 국내에서 이 많은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되어서 몸부림을 쳐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근본 문제를 해결 못하고 바뀌는 정권마다 대기업에게 애국하는 마음으로 많은 취업을 하라고 압박하니 참 한심하다.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청년들이 더욱 불쌍하고…
네덜란드는 많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출장 갔을 때 현지 비즈니스맨들과 사적인 대화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나라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매력적이고 또 상당히 부럽기까지 하다.
이밖에 내가 느낀 다른 점은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네덜란드에서 명품 브랜드의 샵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장사가 전혀 안 된다고 한다.
히딩크처럼 돈이 많고 또 스페인에서의 생활이 길었던 이유인지 예외적인 사람도 있지만.
또 유럽 여러 나라 중 스테이크 먹기가 가장 쉬운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육식을 많이 하고 또 다들 대식가들이다. 그런데도 길을 다니다 보면 미국에서와 같이 비만인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체격이 크고 또 건강해 보인다. 결국 육식으로 비만해지는 것이 아니고 미국인들같이 소위 패스트푸드라고 하는 정크푸드를 먹기 때문에 비만해지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많은 의사들이 육식을 줄이고 현미밥과 채식만이 건강의 지름길인양 열변을 토하는데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접할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느낀 점들만 쓰려고 해도 별도의 제목으로 길게 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