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숙소에서 아침에 일어나니 좋긴 하였는데 화장실과 샤워하는 곳이 아래층이어서 내려갈 일이 아득했다. 어제 밤 주인과는 아직 인사도 못 나누었는데 층계를 내려가서 아래층 거실을 지나가는 동안 혹시 집주인과 만날까 봐 상당히 어색하고 또 불편했다. 새벽에 한번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오래된 건물이라 계단 내려가는데 너무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다른 사람들의 단잠을 깨울까 봐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아들이 아래층에 다녀오더니 집주인과 만나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곳은 진정 B&B 에 맞게 아침을 제공한다고 한다. 여행 와서 아침을 주는 B&B는 처음인 것 같다.
내려가서 샤워하고 올라와서 셋이서 아침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미 식탁에는 3층에 있었던 다른 가족이 식사 중 이었는데 남편은 미국인으로 보였고 가족들은 동양계여서 서로 다른 2 가족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미국인 남편이 우리를 보고 ‘안녕하세요?’ 하고는 한국 인사를 해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 미국인인데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에 여행 왔다고 한다. 미국인 남편은 인사 정도만 한국말을 하는 정도였다.
더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이 이 가족은 외출을 했고 우리 가족이 아침을 먹을 차례였다.
집주인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첫 인상은 전형적인 네덜란드인이었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인이라 함은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옛날 동화책이나 만화책에서 등장하는 북유럽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잿빛의 곱슬머리에 단정하게 정리된 수염 그리고 안경을 쓰고 있는 어딘지 모르게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그런 느낌이다.
남자 혼자서 차린 아침 식탁은 예상을 뒤엎고 상당히 훌륭했다. 여러 종류의 빵과 취향대로 먹을 수 있는 음료수, 그리고 각종 버터와 잼들이 놓여 있었다. 음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접시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집주인은 거실의 한편에서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식사 후 우리가 그릇을 치우려 하자 집주인이 그대로 두라고 한다.
잘 대접받는 느낌의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는 세탁기를 이용해서 옷들을 세탁했다.
오늘은 네덜란드의 마지막 날이고 내일은 룩셈부르크로 떠나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헤이그를 가고 이어서 풍차마을인 잔세스칸스를 간다고 한다.
10시경 숙소를 나와서 먼저 중앙역으로 가서 헤이그로 향했다. 암스테르담과는 가까워서 기차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준 열사의 일로 귀에 익은 헤이그는 사실 미국식 발음이고 이곳에서는 덴 하그(Den Haag)라고 발음된다. 네덜란드 어도 독일어와 상당히 비슷한 것 같고 앞의 덴(den)은 아마도 정관사일 것이다.
여왕이 사는 왕궁이 이곳에 있으며 네덜란드 정부청사 그리고 국회의사당이 있는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이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마두로담(Madurodam)이라는 곳을 구경할 계획이다. 이곳은 모두들 아시겠지만 네덜란드의 주요 명소들을 1/25로 작게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냥 들을 때는 장난감 같고 조악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나 실제로 가서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신기한 곳이다.
매표소부터 무언가 만화 같은 느낌이다.
입장료는 1인당 15유로씩이었다.
10년 전 네덜란드를 처음 왔을 때 이 마두로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출장이었는데 휴일 시간을 내서 이곳을 방문했었다. 나로서는 두 번째 방문이고 아들 역시 고등학교 졸업하고 첫 유럽 배낭여행 왔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아내만 이곳이 첫 번째 방문인 셈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전과 똑같이 잘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우리가 어제 보았던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담 광장, 그리고 유명한 스키폴 공항도 있었으며 공항에 있는 여러 나라의 국적기 중에 대한항공도 눈길을 끈다.
암스테르담의 상징인 운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헬기를 타고 보면 도시가 이렇게 보일 것 같다.
이중에서도 나를 감동시킨 것은 거리의 가로수들이 조화가 아니라 실제 나무를 작게 분재를 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이것을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시간을 즐긴 후 다음 목적지인 잔세스칸스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이곳 헤이그도 50분 정도밖에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지만 잔세 스칸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불과 1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이 잔세스칸스에서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명물 풍차를 구경할 수 있는 풍차마을이다.
잔세스칸스 역에 도착한 후 역사를 나와서 걸어갔는데 풍차마을로 가기 전에 이 지역 냄새가 물씬 나는 빵집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맛있는 집 같아서 들어가 보았는데 갓 구워낸 각종 빵들이 너무 맛있어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몇 개의 빵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특이하고 훌륭했다. 더욱 특이한 점은 이 집에서 초콜릿도 만들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종류의 초콜릿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초콜릿이 있었다. 잔세스칸스를 관광하고 가면서 초콜릿을 사기로 했다. 이 집의 주인은 모녀인 듯 보였는데 매상을 올려주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해 주었다.
이 빵집을 나와서 조금 더 걸어가자 정말 내 눈을 의심할 만한 동화 속의 전경이 펼쳐졌다.
마을에 있는 예쁜 집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넓은 푸른 초원과 큰 호수와 함께 풍차가 그림같이 펼쳐져있었다.
이 마을은 우리가 먼저 다녀온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같이 가만히 앉아서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그런 장소였다. 호숫가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이 한편의 동화 영화를 찍기 위하여 만든 세트장 같았다.
나와 아들은 앉아서 이런 분위기를 흠뻑 느꼈고 아내는 풍차 집의 내부에 들어가 풍차의 원리를 연구(?)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위하여 그곳을 떠났는데 다리 위에서 배가 지나갈수 있도록 다리가 올라가는 것을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의 다리가 개폐식 다리였던 것이다.
다시 역 쪽으로 오면서 아까 그 빵집에 들러서 종류별로 초콜릿을 구입했다. 어찌나 먹어보라고 주는지 거의 사는 것만큼 먹기도 했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와서 담 광장으로 와서 어제 보아두었던 스테이크 집으로 갔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스테이크를 음미하면서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가격은 세 명이 45유로가 나왔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보면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국가 중에 가장 스테이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이것 같다. 이렇게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격도 합리적이고 또 스테이크 집이 상당히 많이 있다.
숙소로 돌아오니 1층에서 격조 있는 칵테일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느낌은 집주인의 어떤 작품 발표회 정도의 분위기였다. 집주인과 간단한 눈인사만 하고 우리는 2층 우리 방으로 올라갔는데 보면 볼수록 이 집주인은 상당히 미스터리해 보인다.
어찌 되었던 단 2박 만을 한 네덜란드 여행은 암스테르담뿐 아니라 헤이그와 잔세스칸스까지 경험하는 좋은 여행이었다. 특히 이번에 처음 가본 잔세스칸스가 나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