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Jun 03. 2016

49. 룩셈부르크 관광

룩셈부르크 관광


오늘은 룩셈부르크로 가는 날이다. 

 

그리고 아내의 마지막 여행 날이다.  오늘까지 룩셈부르크에 가서 같이 여행하고 그곳에서 1박 한 후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와 아들은 다음 여행 국인 프랑스로 가게 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가서 일단 벨기에의 브뤼셀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벨기에는 이렇게 경유만 하지 일부러 들러서 관광하지는 않을 계획이었다.  나와 아들은 이미 가 보았고 브뤼셀이 관광으로 그렇게 인상적인 도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EU 본부가 브뤼셀에 있는 것이 그나마 볼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9시 19분 기차를 타고 브뤼셀로 출발했는데 11시 20분이 되어서 도착했다.  기차 여행 중에 어제 잔센 스칸스에서 구입한 초콜릿이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곳 역에서 내려서 다시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아무리 안내판을 찾아도 룩셈부르크 가는 기차는 없었다.  아들은 결국 인포메이션센터로 갔고 나와 아내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브뤼셀 역에도 이탈리아와 같이 관광 관련 기관의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의 문의에 답해주고 있었다.  얼른 가서 룩셈부르크 가는 기차를 물어보았는데 이 사람 역시 못 찾고 있었다.  베네룩스 동맹관계까지 있는 이들 나라이므로 역에만 오면 룩셈부르크 가는 기차가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뜻밖이었다.  결국 이 직원도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더니 타야 할 기차를 가르쳐주었다.  벨기에의 남부 도시 같은데 먼저 거기에 가서 다시 룩셈부르크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마침 아들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돌아왔고 같은 답을 가지고 왔다. 

 

다시 기차를 타고 벨기에 남부로 갔고 거기서 다시 룩셈부르크 가는 기차를 갈아타고서야 룩셈부르크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벨기에 남부 도시에서부터는 불어를 사용하는지 역에도 모든 안내판이 불어로 되어 있어서 우리는 눈뜬장님과 다를 바 없었다.


이곳에서는 오늘 반나절이 거의 전부이다.  룩셈부르크가 작은 도시지만 반나절은 그저 이 나라에 대한 느낌을 가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이 도시를 한번 와본 경험이 있는 아들은 도시지만 너무 경치가 좋고 이국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숙소인 호텔을 찾아가는데 살짝 헤매긴 했지만 역시나 아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를 힘들이지 않고 안내했다.  그런데 호텔 로비 데스크에서 아들과 직원의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졌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했다.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나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아들이 다 전면에 나서서 해결이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에게 SOS를 쳤다.

일단 가서 상황을 보니 아들 이야기는 분명히 이 호텔은 카드로 대금을 먼저 지불했는데 다시 카드로 결제를 하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나도 분명히 호텔 예약 시 카드로 먼저 결제한 기억이 있어서 대금 결제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는데도 데스크 직원은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의 영어는 너무 부족했고 그나마 불어식 발음이 강하게 들어있어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계속 우리가 잘 못 알아듣자 이 직원은 상당히 당황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자신 없어하는 영어가 더욱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상적인 대화가 거의 힘들어지는 순간 이 직원이 자기 보스를 전화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내가 전화를 받아보니 여성이었는데 이 분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이 여성의 말을 들어보니 내 카드로 일단 deposit만 잡아놓은 것이지 결제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예약 시 카드로 결제를 했고 내 한국 거래은행에서 금액이 결제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 여성분이 결제 여부를 거래 은행에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지금 시차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해외를 다녀보았지만 미리 결제를 하던지 아니면 와서 결제를 하였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니 이 여성분 이야기가 모든 룩셈부르크의 호텔들은 이런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너희가 카드로 결제하고 만일 못 오게 되면 손해 아니냐?  너희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주지시켰다.  내 판단으로는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들을 믿어보는 수밖에.  하긴 아무리 저렴한 호텔이라도 이런 것을 거짓말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카드로 결제를 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예약 시 카드 결제한 금액은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지 않았고 현지에서 결제한 금액만 인출되어 있었다. 금융이 상당히 발달된 룩셈부르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불이 넘는 세계 1위 국가이니 이런 시스템도 특이한 형태로 잘 구비되어 있었다.


우리의 방은 침대 3개가 있는 크지는 않지만 깨끗한 방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관광을 나오는데 이 지역이 모두 불어만 사용하고 영어가 생각보다 안 통하는 듯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룩셈부르크란 단어의 어원은 ‘작은 성’이라 하는데 로마 시대부터 지금의 벨기에 지역과 같은 인종인 트리 베리족이 살고 있었다.  5세기 초부터 동쪽의 프랑크족이 침입하여 그들의 지배를 받다가 10세기인 963년 아르덴의 지크프리트 백작이 이 곳의 땅을 구입하여 높은 곳에 성을 건설하고 데리고 있던 사병들과 주민들을 인근에 살게 하면서 독립된 국가로서 15세기까지 지속된다.

이 지역은 아르덴 고원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 고원은 험준한 산지 지형으로서 해발고도가 400-500미터가 되며 600미터가 되는 봉우리도 몇 개가 있다.  모젤강이 빠르게 흐르면서 이 고원을 침식시켜서 곳곳에 깊은 골짜기와 절벽을 만들어 놓았다.

이 바위 계곡 위에 튼튼한 성벽을 쌓아 놓았고 이 계곡에 둘러싸인 아래 평지에 마을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위의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보는 듯하다. 

이런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지크프리트 백작은 이 언덕 위에 성벽을 계속 쌓아 가면서 요새를 구축했는데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요새로 불리게 된다.

이런 천혜의 튼튼한 요새를 강대국들이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강대한 세력들인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가,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이 차례로 지배하였으며, 1867년 런던조약으로 프로이센 이 철수하고 대공국으로서 중립이 인정되었다.

1867년 강대국들에 의해서 영세중립이 보장되었는데도 제 1,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침략을 받았고 1944년 해방된 이후 작은 나라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1948년 네덜란드, 벨기에와 베네룩스 동맹을 체결하였고 1949년에는 스스로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EU와 NATO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EU 본부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지만 룩셈부르크에는 EU의 유럽 사법재판소, 유럽 투자은행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의외로 철광석의 매장량이 풍부해서 유럽의 강철 조합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으며, 급성장한 금융산업 그리고 관광 수입 등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불이 넘는 세계 1위의 잘 사는 나라이다.


룩셈부르크는 여느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우리가 보아야 할 곳은 당연히 성벽과 박물관등이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일 것이다. 

 아들이 방향을 잡고 그쪽으로 걸어가다가 높은 계곡의 남아있는 성벽터에 도달하였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정말 압권이었다.  많은 도시들을 보아왔지만 룩셈부르크처럼 계곡 위에 성벽과 성이 있고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아래쪽에 또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이 골짜기를 지나 상대편의 높은 계곡 위에 또 성이 보이는 이런 모습은 정말 생경한 풍경이었다.

이 성벽 위의 구간에서 많은 부분은 파괴되고 철거된 곳도 있는데 과거 지크프리트 백작이 쌓은 성곽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히는 보크의 포대라는 곳도 아름다웠다. 사실 영세중립국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남아있던 요새와 성루 그리고 지하요새를 철거해야만 하였었는데 룩셈부르크 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보호를 받게 되어서 오늘날 우리도 이 역사 깊은 곳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상당히 아름답다.

여기서 아름 광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시가지의 모습이 깨끗하고 무언가 유럽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거리였다. 이곳에서 아이쇼핑을 하다가 아내가 식기 파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포크와 나이프 세트가 크기별로 되어 있는 큰 세트가 있었는데 너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물어보니 독일제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좁은 나라에서 제조업이 크게 있을 리는 경제성이 안 맞겠고 고급품은 주로 이웃나라인 독일제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으나 어차피 집에서 필요해서 새로 장만하려던 참이라고 하면서 구입했다.

그 외 몇몇 상점들에서 아이쇼핑을 했는데 국민소득 1위 나라답게 모두 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이었다.  이제 아름 광장으로 왔다.  이곳이 룩셈부르크의 중심이 되는 광장인데 내 눈에는 그야말로 카페 광장이었다.  룩셈부르크 만의 정서가 묻어있는 카페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카페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근처에 대공 궁전이 있다.  룩셈부르크 최초의 시청으로 사용되다가 1841년부터 대공이 거주하는 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대공의 영빈관과 집무실로 이용 중이라 한다.

또 근처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현재 이 성당은 대공가의 결혼이나 주요 인사의 결혼, 그리고 장례식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3개의 첨탑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쯤에서 관광을 마무리하고 다시 아름 광장에 가서 그들만의 독특한 카페 문화를 맛보았다.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곳에서 저녁식사도 했다.  52.40유로의 가격이 나왔다.   짧았지만 강렬했고 이국적이었던 룩셈부르크의 마지막 저녁을 음미했다.


아들이 데리고 온 룩셈부르크는 나 혼자였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못 가 보았을 것 같다.  아들 덕분에 이곳에도 오게 되었는데 상당히 특색 있고 느낌이 있는 도시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봉우리에 그리고 까마득한 밑의 골짜기에 이어서 맞은편 높은 봉우리에 연결되어 성과 마을이 있는 이런 도시 모습은 룩셈부르크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강대국들은 모두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천혜의 요새였을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침략과 정복을 당하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으로 많은 관광 수입을 올리는 룩셈부르크 역시 조상 덕을 본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거 10세기부터 축조되었던 성벽이 완벽하게 남아있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이만큼 남아있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 까?


룩셈부르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정말 아름다운 도시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48. 헤이그 및 잔세스칸스 관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