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대보름 음식 20240317

by 지금은

정월 대보름은 개가 싫어하는 날입니다. 홀대를 받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런 일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개가 그냥 개가 아닙니다. 애완견, 반려견 소리를 듣습니다. 견주가 스스로 개 엄마라는 말도 합니다. 반려견은 상전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참 세상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개들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니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투정을 부릴 만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고유 풍습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정월 대보름은 명절 중의 하나로 사람들에게는 먹을 게 많습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오곡밥과 묵은 나물 반찬을 먹고 귀밝이술과 부럼을 깹니다. 약밥도 먹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 그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볼까 합니다. 우선 눈을 뜨자마자 부럼을 깨뜨립니다. 종기나 부스럼이 생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사람의 몸에 부스럼이 많았습니다. 청결하지 못한 위생 때문이었을까요. 요즘은 의식적으로 부럼을 깨뜨리지 않아도 부스럼이 난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많고 영양상태가 좋으며 늘 몸을 깨끗이 하는 습관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귀밝이술이 있습니다. 새벽에 데우지 않은 찬술을 남녀 구별 없이 조금씩 마시는 데 말 그대로 귀가 밝아진다고 믿습니다.


오곡밥과 묵나물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이상의 곡물을 섞어 지은 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아홉 번 먹기도 합니다. 나무를 아홉 짐 해야 합니다. 부지런함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약밥이 있습니다. 찹쌀을 시루에 찐 뒤에 꿀이나 설탕, 참기름, 대추 등을 쪄서 거른 것을 섞습니다. 다시 진간장, 밤, 대추, 계피, 곶감, 잣 등을 넣어 시루에 익힌 밥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해의 액운을 막아줍니다. 우리 할머니가 잘하는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할머니의 솜씨를 칭찬하곤 했습니다.


혹시 김밥이 정월대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날 먹는 전통음식인 복 쌈이 바로 김밥의 기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 쌈은 말 그대로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복과 풍년을 기원하며 먹는 음식입니다. 고사리, 취나물 도라지, 가지 등을 말려두었다가 볶아 김에 싸서 먹었습니다. 복 쌈을 볏섬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때에는 김을 손으로 대강 잘라먹었습니다.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벼농사를 망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대보름 밤에 밥 훔쳐 먹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슥한 밤에 몰래 남의 집 솥뚜껑을 열고 밥을 가져다 먹었습니다. 어른들은 이런 풍습에 익숙해 있어서 저녁을 먹고 으레 한두 그릇 솥에 넣어 놓았습니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말에 잠을 참으며 날을 새야 했으니 당연히 속이 출출했을 겁니다. 참지 못하고 잠이든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몰래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놓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놀렸습니다. 나의 눈썹이 다음날 하얗게 물든 때도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이날은 김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특히 백김치를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고, 동치미를 먹으면 논에 이끼가 끼어 벼농사를 망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날은 모든 종류의 김치를 피했다고 합니다. 나는 십 대에 이미 머리에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보름날 김치를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 합니다. 이십 대에는 백발이 되었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 애 어른이라는 놀림을 받은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차를 타면 일찍부터 자리를 양보받기도 했습니다.


개 이야기를 하다 멈췄습니다. 즐거워해야 할 대보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개 보름 쇠듯’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 개에 비유한 것입니다. 대보름날에는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굶겼습니다. 밥을 주면 여름철에 파리만 꼬일 뿐 몸이 마른다고 여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개밥바라기’가 떠오릅니다. 금성과 개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여름철이면 별이 지기도 전에 주인 식구들이 들로 일을 나갔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옵니다. 말뚝에 묶인 개는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개의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안다면 옛날에 살던 개는 억울하다고 하겠지요.


정월대보름이라고 해서 평일과 다를 것도 없지만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풍습이 남아있습니다. K팝과 함께 어느덧 우리의 음식 문화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음식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대보름을 맞이하여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며 조상들의 숨결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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