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송편 좋아해요 20240317
송편 솔기가 터졌습니다. 김밥 옆구리가 터졌습니다. 무엇이 다를까? 재료, 먹는 시기, 색깔, 모양.
왜 터졌을까? 소를 많이 넣어서, 마무리가 서툴러서, 반죽을 잘 못해서, 무딘 칼로 썰어서…….
맛이 좋다고 합니다. 왜? 그냥 맛이 있으니까. 그래도 다홍치마라고 볼품이 있어야 눈길이 갑니다.
나는 송편을 자주 먹습니다. 김밥보다 더 자주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엇비슷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입에 넣는 순간 송편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송편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떡이라면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먹었다 하면 왜 그렇게 생목이 올랐는지 모릅니다. 고구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적으로 밥 이외에는 손이 성큼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송편은 물론 다른 떡을 얼마든지 자주 먹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만 해도 쌀이 귀한 때이고 보니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나 먹었습니다. 송편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추석을 떠올립니다. 아직도 가래떡과 송편은 설날과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작년에는 설과 추석이 바뀌었습니다. 일 년의 반이 남들보다 앞섰는지 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날에 송편을 먹고, 추석날에는 떡국을 먹었습니다. 철부지도 아니고 우리 고유의 풍습을 모르고 있다니 생각이 들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풍습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명절이라고 해서 꼭 관계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줄어들었습니다. 음식에 따른 입맛의 다양화와 기호식품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절에나 먹을 수 있었던 음식과 과자가 일상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입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명절의 추억거리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신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나에게 추석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요. 먼저 솔잎입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자 추석 전날이면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뒷동산에 가서 솔잎을 따오너라.”
그동안 해마다 보아온 일이니, 바구니를 들고 뒷산에 올랐습니다. 사시사철 흔한 게 솔잎입니다. 한 바구니를 채워 할머니께 보여드렸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싱싱한 것을 골라 따야 한다며 바구니를 두엄더미에 쏟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를 따라다녔지만 노는데 만 정신이 팔렸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차근차근 바구니에 가득 채웠습니다.
저녁 늦게 송편을 꺼냈습니다. 가마솥뚜껑을 열자 김이 풀썩하고 오르며 진한 솔향기가 부엌 언저리에 퍼집니다. 더운 김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광주리에 송편을 하나하나 담았습니다. 담아놓았다기보다는 줄을 맞추어 늘어놓았다는 말이 맞습니다. 솔기가 터진 송편을 한 곳으로 모아 놓습니다. 모양새로 보아 내가 만든 것입니다. 고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솔기를 꼭꼭 눌러 잘 오므려야 했지만 뭐 경쟁이라도 하는 양 제시간에 더 많이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핀잔을 받고 버티지 않기가 다행입니다. 터진 송편 몇 개로 끝났으니 말입니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고모의 송편이 가장 예쁩니다.
그릇을 빌리러 온 이웃집 아주머니가 고모를 보며 말했습니다.
“예쁜 아기 낳겠다.”
고모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습니다.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웬 아기야 하는 생각에 당황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칭찬에 부끄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김밥 옆구리가 터졌습니다. 어느 날 집에 혼자 있을 때 김밥을 먹고 싶어 이것저것 넣어 김으로 말았습니다. 내용물이 많아서인지 칼이 들지 않아서인지 써는데 생각한 만큼 잘리지 않습니다. 매끄럽지 않습니다. 옆구리가 터진 게 여러 개입니다. 보기와는 달리 맛은 괜찮지만 남이 보았다면 맛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은 점심에는 아내가 송편을 쪘습니다. 입에 넣으니 솔잎 향기는 없어도 진한 깨 맛이 혀를 춤추게 합니다. 솔기가 터진 송편이 아내의 입으로 향했습니다.
“여보, 부엌칼 줘 봐요.”
며칠 전에 먹은 김밥이 생각났습니다. 옆구리가 터졌습니다. 칼을 갈아야 합니다. 칼이 내 손에 쥐어졌습니다. 송편을 젓가락에 꼬인 아내의 손이 내 입으로 향합니다. 유년 시절 심하던 생목이 달아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