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추워도 20230203
봄은 도둑고양이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물 묻은 손이 문고리에 쩍 달라붙어 깜짝 놀랐습니다. 동장군 때문입니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야릇합니다. 마치 뜨거운 냄비 뚜껑에 손을 댔다가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손을 뗐던 생각이 듭니다. 과도한 차가움도 뜨거움도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는 뭐 다를 게 없습니다.
일이 있어 아침을 먹자마자 길을 나섰습니다. 기온이 올랐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영하의 날씨입니다. 하지만 얼마를 걷지 않아서 앞섶을 풀어헤쳤습니다. 목도리는 가방에 넣었습니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만 추운 날을 생각해서 겹겹이 껴입은 것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마스크도 곧 벗었습니다. 공기가 차기는 해도 콧속으로 스미는 공기가 상쾌합니다.
‘추워도 봄이 오나 봐.’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는 느낌입니다. 역 플랫 홈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는 동안 엉거주춤 서 있기가 싫었습니다. 전동차가 홈에 진입하기까지는 10분이나 남았습니다. 갑자기 만 보 생각이 났습니다. 홈의 끝에서 끝을 몇 차례 왕복했습니다. 걷다 보니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를 흉내라도 내려는 것처럼 한 사람이 뒤를 따라옵니다. 그도 만 보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드는 칸에 타려고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위험지역이라는 빨간 글자 밑에 노란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접근 금지’
끝에 있는 정지선에서 몸을 돌렸습니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그도 발길을 돌렸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는 자세로 끝을 향해 전진합니다. 드디어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경로석이 가까운 출입문 앞에 섰을 때 그는 바로 옆 출입문 앞에 섰습니다. 힐끔 보니 중년의 모습입니다.
요 며칠 춥다고 집안에서 창밖만 내다보았습니다. 갑자기 눈이 많이 오기도 했지만, 추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비하면 춥다 해도 견딜만합니다. 그때보다 기온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실제로 춥기야 더 춥겠지만 마음의 느낌은 충분히 참을 만합니다. ‘털모자, 목도리, 털장갑, 두꺼운 겉옷, 방한화.’
호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옛날 아무리 부자라 해도 지금처럼 보온이 잘 된 옷을 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임금보다도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어린 시절의 추위를 떠올립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여름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길이의 차이가 있을 뿐 겨울에도 홑겹의 옷입니다. 누구나 솜옷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솜옷이면 최고의 방한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울이 되면 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야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급박한 마음은 옛날입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의식주를 생각하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은 얼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일이 드뭅니다.
‘얼어 죽었다는 사람.’
사고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난 것을 보니 아이 어미가 두 살짜리를 혼자 두고 사흘이나 집을 비웠답니다. 편모라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봄이 되면 얼어 죽었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경제의 문제입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학생 수가 많지 않은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몇 사람씩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물론 얼어 죽기도 했겠지만 굶어 죽기도 했습니다. 최고의 고민은 의식주읩니다.
옛날이라고 해서 봄이 다를 것은 없습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봄이 오는 모습은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도둑고양이처럼 말입니다.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가 한발 물러섭니다. 그리고 다시 두어 발 다가섭니다. 멈칫멈칫 눈치를 봅니다.
내일이면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입니다. 하지만 동장군은 장군답게 그냥 입춘에 봄을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동안 씨름을 합니다. 돌진하다가 물러서다가 돌진하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합니다. 종래는 못 이기는 체하며 내년을 기약할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 길고양이가 공원 화장실 뒷벽 잔디 위에서 햇살을 쪼이고 있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올랐습니다. 그 고양이입니다. 누군가의 보살핌 때문입니다. 가장 편안한 자세입니다. 도둑고양이라고 말하기는 싫습니다. 봄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봄 고양이라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