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35. 반려자(伴侶者) 20230202

by 지금은

1. 반려자 배우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짝이 되는 벗,


3. 즐기거나 마치 자기 벗이라도 된 듯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항상 가까이하거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즘은 반려견이 대세입니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가끔 착각합니다. 아이가 타고 있겠다고 했는데 유모차에 강아지가 앉아 있습니다.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을 꺼려서일까요. 유모차의 용도가 달라진 느낌입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입니다.


“강아지 키우면 안 될까요?”


“왜?”


“귀여워서요.”


“네가 똥오줌 치우고 목욕시킬 수 있겠니?”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귀엽기는 한데 돌보는 일에는 자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나나 아내나 강아지가 귀엽다 생각은 들지만, 보살피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강아지 키울 힘이 있으면 아기를 키우지.’


단독주택에 살 때입니다. 조카 부부가 해외로 유학을 떠나면서 자신이 키우던 개를 맡겼습니다. 집안에서 생활하던 개를 마당에서 키우려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적응이 된 후에는 오히려 아파트에서 생활을 힘들어했습니다. 마당에서 맘대로 뛰놀던 개가 베란다에 갇혀있으니,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입니다. 먹이를 주어도 놀잇거리를 주어도 구석에 앉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환경의 변화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당이 넓은 집에 보냈습니다. 그 후 소식을 들으니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개를 키우는 이야기에는 소극적입니다.


“반려견(伴侶犬)을 좋아하십니까?”


손을 내젓습니다.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내 곁으로 다가오려 하면 재빨리 자리를 피합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동네에 갔을 때 낯 모르는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험상궂게 짖어대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하마터면 물린 번 한 일도 있습니다.


요즘은 반려의 범위가 다양해졌습니다. 반려자, 반려견, 반려묘를 비롯한 여러 동물, 곤충, 식물들까지 그 다양합니다.


지난 늦가을에는 아파트 화단에 시들어 가는 식물 ‘아이비’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물만 주면…….’


흙을 털어내고 줄기를 잘랐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투명한 병에 꽂아 창가에 놓았습니다. 희끗희끗 보이던 흰 눈썹 같은 실뿌리가 어느새 병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는 화분으로 옮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는 사이에 반려 식물이 됐나 봅니다. 그동안 틈틈이 물을 갈아주고 영양제도 주었습니다. 보살핌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알게 모르게 교감이 있었습니다. 집의 구조상 음지 식물이 있었으면 했는데 내 마음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잘 자라기를 기대합니다.


반려에 대해 더 말하라면 하나 더 보탤 수 있습니다. 바로 공입니다. 버킷리스트에 매일 만 보 걷기를 담았는데 겨울이 되면서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눈과 날씨 때문입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완책으로 공을 택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상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공을 찰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과 나만 있으면 됩니다. 이 겨울에는 눈이 오나 추우나 한낮이면 밖으로 나갑니다. 어린이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놀이터가 내 공차기 장소가 되었습니다.


‘탁, 데구루루 탁, 데구루루.’


공이 내 발끝을 떠나 앞의 놀이터 벽에 부딪히고 되돌아옵니다. 오고 가기를 반복합니다. 공의 흐름에 따라 내 몸이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입니다. 이렇게 40여 분 때로는 한 시간 가까이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내 몸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땀이 이마에 송송 맺힙니다. 공도 그럴까요.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공의 몸뚱이가 깨끗해졌습니다. 어제와는 달리 목욕시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제는 반려(伴侶 球)의 이름을 붙여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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