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봄의 길목에서 20230204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아침 일찍 친구한테서 예쁜 화분과 함께 입춘첩을 받았습니다. 화분은 난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실물은 아니고, 사진입니다. 메일이지만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것도 아침 식사 전입니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오늘이 입춘이고 내일이 정월대보름입니다.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의 세시 풍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방송국에서도 잊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TV 앞에 앉자 ‘황금연못’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시니어들의 무대입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늙어가니 교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어느새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입춘과 정월대보름에 대한 추억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오곡밥, 귀밝이술, 더위 팔기, 부럼 깨물기, 쥐불놀이, 석전, 연날리기, 시간이 많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내 추억을 먼저 말하면 더위 팔기입니다. 어제 삼촌이 일러준 대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이웃집으로 향했습니다.
“춘식아.”
친구가 선잠에서 깨었나 봅니다.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왜?”
“내 더위 사라고.”
내가 돌아서려는 순간 안방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문을 세게 밀었는지 문고리가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를 냈습니다. 곧 춘식 엄마가 마당을 향해 맨발로 뛰쳐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놈.”
아들의 등짝을 갈겼습니다.
“더위는 왜 사는 거야. 대답하지 말고 내 더위 가져가라 해야지. 작년에 더위 먹고 죽다 살아났잖아.”
나를 노려보고는 사납게 춘식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방 안에서 좋은 않은 말들이 쉼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발길을 돌리면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는 여름을 잘 넘겼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내 더위를 다른 친구에게 팔았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의 재미있는 풍습인데 그때는 액막이로 생각했나 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뜻은 봄을 맞이하여 집안에 복이 깃들고 좋은 일이 가득하여지라는 뜻입니다. 입춘은 24 절기 중 첫 번째로 새해의 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이날의 의미를 새기고 닥쳐올 일 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밖에 잠시 나갔다 오신 할머니는 올해 풍년이 들 거라고 하셨습니다. 손에는 보리가 들려있었습니다. 잠시 점을 치셨나 봅니다.
“보리 뿌리가 세 가닥이나 되지 않니!”
뿌리가 세 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내 고향 충청도에서는 입춘 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든다고 했습니다. 또 입춘 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풍년이 들고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매섭게 몰아치던 추위가 점차 누그러지더니만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갔더니 사람들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견공들도 많이 보입니다. 한 사람은 유모차에 세 마리나 태우고 나타났습니다. 하나의 장난감을 두고 세 마리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보리를 발견할 수 없기에 보리 점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씨로 보아 올해의 농사는 잘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로 했습니다. 농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가 한층 도약하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여 내가 더위를 판 친구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올해 더위를 먹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