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되게 하는 일 20230206
우리 글쓰기 반에서 한 분이 자서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일주일 동안 갈고 닦은 글을 한 꼭지를 발표했습니다. 50여 년 전의 일을 회상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이 장소를 제공하여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열었습니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가르쳐야 할 과목 중에 부기와 타자를 맡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취업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부기와 타자, 그리고 주산이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급수가 있던 시절입니다. 이런 것들은 상업고등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과목을 담당하고 보니 타자기가 문제입니다. 타자기가 귀하다 보니 정작 실습하게 하려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연습을 할 수 있는 타자기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궁리 끝에 키보드를 만들었습니다. 두꺼운 종이에 타자기 모형에 맞게 단추를 달았습니다. 이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손가락 연습을 시켰습니다. 다 같이 어려운 처지이고 보니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피곤함을 잊고 재미있게 생활했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뜻이 맞고 잘살아 보자는 마음이니 공부 이외에도 서로의 교감이 생겨 여름 휴가철에는 야유회를 함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발표하고 미련이 남았는지 지리산 등반에 얽힌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떠나기 전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출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했는데 다음 날 하늘이 말끔히 갰습니다. 물이 불어난 계곡을 건널 때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남학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비탈을 오를 때입니다. 나이 많은 남학생이 손을 잡아주는 대신 손수건을 돌돌 말아 내밀었습니다. 손을 잡아주는 것이 쑥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숨겨진 이야기는 없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환경의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한 일이기보다는 나에게 시급한 시기였습니다. 내가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처음을 부딪친 어려움은 여러 가지 과목 중에 음악입니다.. 정식으로 건반악기를 배운 일이 없으니, 대학에 입학하여 익힌 오르간의 연주 실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연습을 많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막상 오르간 앞에 앉고 보니 아이들의 노래를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릅니다. 대책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채웠습니다. 학교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오르간이 한 대밖에 없을 줄이야, 악기는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계속되는 시달림에 종종 아픕니다.
‘오르간을 한 대 사, 아니 피아노를 한 대.’
하지만 내 경제 사정으로는 부담이 됩니다.
일주일 동안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오르간의 모의 건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두꺼운 종이로 모형 건반을 잘라 붙였습니다. 흰 건반, 검은 건반입니다. 누름 감은 없지만 건반의 위치를 익힐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다음 시간에 가르칠 노래 악보를 연습했습니다. 틈틈이 오르간 앞에 앉았습니다. 실물을 만지는 것만은 못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말처럼 노력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얼마 후 교재·교구실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쓸 것과 수리할 것, 폐기할 것을 정리하던 중 구석에서 오르간을 발견했습니다.
‘오르간이 여기에도 있었던 거야.’
반가운 마음에 뚜껑을 열고 건반을 눌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수리 불능입니다. 종이 건반 대신 오르간 건반을 떼어내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소리는 나지 교실의 책상 옆에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몰라서 물어. 풍금 건반이지.”
“소리가 나지 않아요.”
“목소리가 망가졌어요.”
나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종이 건반을 나는 풍금 건반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준비물입니다. 음계를 익히는 데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호기심이 있는 아이는 종이 건반으로 익힌 노래를 오르간으로 연주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길은 열려있습니다. 없는 길이 있다면 만들어 가도 됩니다. 없다고 부족하다고 불평만 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의 후예들이 어느새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