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눈길
학교가 파할 무렵부터 눈이 또 펑펑 내립니다. 눈발이 굵어집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온통 눈으로 덮인 산과 들은 온통 새하얀 세상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쌓인 눈에 종아리까지 빠집니다.
호야는 매일 다니던 길이니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동주와 정은은 날이 춥고 눈이 너무 많이 왔다고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애들의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엄마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호야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눈싸움하고 싶어 고집을 부렸습니다.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맞바람을 피하려고 여러 번 뒤로 돌아섰습니다.
‘이렇게 추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소용이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고 온 것이 잘못입니다. 학교를 떠났지만, 집까지 반도 못 갔습니다. 벌써 손발이 시리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긴 목도리로 얼굴과 목을 감쌌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눈 속에 빠진 신발 속의 양말은 젖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바람이 그만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찬 바람이 퍼붓는 눈을 호야의 앞으로 몰아옵니다. 눈 뜨기가 불편합니다.
갯골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 무렵부터는 눈이 더 세차게 쏟아집니다. 바람이 폭풍우인 양 한바탕 눈을 흩날리며 지나갑니다. 길 위의 소나무 가지가 휘청하더니 털썩하고 호야에게 눈 뭉치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길인지 논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논두렁 밑으로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얼마 가지 못해 그만 둑 아래의 낭떠러지로 미끄러지며 빠져버렸습니다. 바람이 몰아온 눈은 호야의 키보다 더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호야가 눈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급한 김에 팔을 내저어 겨우 얼굴을 눈 위로 내밀었습니다. 눈이 코로 들어가고 입으로도 들어갔습니다.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겨우 논바닥에 발이 닿으면서 눈을 헤치고 나올 수가 있습니다. 눈이 적게 쌓인 곳을 골라서 길 위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올라가려는 곳은 눈 더미가 앞을 가로막고 훼방을 놓습니다. 잠시 이곳저곳으로 헤쳐 가며 살펴보았습니다. 눈대중이 맞았습니다. 조심스레 길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마중을 나오겠지.’
기대와는 달리 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매우 긴장되었습니다. 거북이처럼 걸어갑니다. 천천히 눈은 그치고 햇살이 밝게 비치기 사직했습니다. 오늘의 햇살은 차가운 눈에 얼어붙어서 그런지 춥게만 느껴집니다. 장구목까지 갔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산 밑의 절벽 길을 겨우 지났습니다. 부엉골 앞 내에 이르러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호야가 막대기로 눈 쌓인 바위를 탁탁 쳤습니다. 꿩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바위 건너편으로 날아오릅니다. 호야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너무너무 놀랐습니다.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가 쭈뼛해지며 진땀이 났습니다. 손발이 시리다가 못해 이제는 감각이 없습니다. 콧물이 떨어지다가 앞자락에 얼어붙었습니다. 너무너무 추운 날입니다. 새벽에는 세수하고 문고리를 잡았더니 손가락이 문고리에 쩍 달라붙었습니다. 우리 집 누렁소의 코에서는 하루 종일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습니다. 큰골 입구에까지 갔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도랑을 건너서 입구로 들어서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은이네 밭 길옆 감나무 밑까지 갔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춥습니다.
호야는 집에 도착하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콧물과 눈물이 턱밑에 매달립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삼촌이 말했습니다.
“호야야 춥지. 어서 이불 밑으로 들어와.”
손이 곱아 책보를 풀지 못했습니다. 어깨에 둘러멘 채로 그냥 이불 밑에 손과 발을 넣었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따뜻한 바닥에 손발을 넣자 얼었던 손발이 녹으며 더욱 저리고 아려 옵니다. 더욱 큰 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삼촌이 달랬습니다.
“씩씩한 사내대장부는 우는 것이 아니란다.”
씩씩한 사내대장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손발이 저리고 아리고 아픕니다.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삼촌은 호야의 눈치를 보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울다가 슬며시 잠이 들었습니다. 해지는 바깥의 바람은 점점 세어집니다. 문풍지가 호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 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