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11. 이글루

by 지금은

호야가 동생과 마당 가에 수북이 쌓여 있는 눈을 담장 밑으로 모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이글루를 만들래?”

“이글루가 뭔데?”

“이 바보, 이글루도 몰라, 얼음집.”

“얼음집이 뭔데?”

“뭐긴 뭐야, 얼음으로 만든 집이지.”

“얼음집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데?”

“아이고 답답해, 무덤처럼 만들고 안을 파내는 거.”

호야가 방학 책을 가져다 동생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런데 만들어서 뭐 하게?”

“뭐 하기는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잠도 자지.”

“아이고 추워라, 얼어 죽겠다.”

“멍청이, 얼음 나라 사람들은 이글루에서 살면서 잠도 자고 낮에는 사냥도 한다.”

“사냥? 우리 마당에는 짐승도 없는데.”

“산으로 가서 잡으면 되지.”

“무엇으로?”

“작대기나 새총으로.”

“형은 새총으로 참새도 못 맞히면서.”

“토끼나 꿩은 크니까 맞힐 수가 있어.”

듣고 있던 동생이 고개를 끄떡입니다.

“그럼, 얼음집에서 밤에 자고 내일 토끼 잡으러 가는 거야?”

호야가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눈을 긁어모으고 넉가래로 모인 눈을 탁탁 두드립니다. 동생도 따라서 넉가래로 눈을 다집니다. 잠시 멈추었던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마당에 발목이 빠지도록 눈이 쌓였습니다. 호야와 동생은 신이 났습니다. 발목이 빠져도 많은 눈을 모으면 더 큰 이글루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형, 얼음집에서 밥을 먹어도 될까?”

“그걸 말이라고 해, 밥맛이 얼마나 좋은데.”

진짜 밥을 먹어 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자 동생은 더욱 신이 났습니다. 호야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을 모으자, 동생도 지지 않으려고 윗도리를 벗었습니다. 입으로 하얀 김을 힘차게 내뿜으면서 눈을 모읍니다. 마을 가려던 삼촌이 이 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야, 이 녀석들 눈을 열심히 치우는구나, 이제는 제법인걸.”

호야가 눈을 찡끗하자, 동생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았습니다.

“말하지 마, 누가 알면 우리들의 비밀이 탄로 나니까.”

“응.”

호야가 삽을 가지고 와서 구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부삽을 가지고 와서 거들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드디어 눈 집이 만들어졌습니다. 둘이 들어가서 앉을 정도의 작은 집입니다.

“너무 작은데.”

“야, 얼음집이니까 크면 더 추운 거야.”

“그렇구나.”

호야는 헛간으로 가서 빈 가마니를 가져다 깔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자 함께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만약을 위해서 양말을 두 켤레나 신었습니다. 아버지가 토끼털로 만들어 주신 귀마개를 하고 목도리도 둘렀습니다.

“형, 정말로 오늘 밤은 여기서 자는 거야?”

“그럼, 사내대장부인데.”

눈 집에서 밖을 내다보니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 듭니다. 호야네 집이 아주 커 보이고 주위가 온통 흰 눈으로 덮였습니다. 하얀 나라에 온 느낌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펑펑 내리던 눈발이 점점 가늘어지며 멈춰 갑니다. 반달과 별들이 내리는 눈 사이로 희미한 빛을 냅니다. 보통 때의 밤과는 전연 다릅니다.

“멋있지”

“응, 눈 나라 같다.”

“자식, 자기가 뭘 안다고.”

호야는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말합니다. 밤은 점점 깊어집니다. 시간이 지나갑니다. 깊어지는 밤만큼이나 앉아 있는 엉덩이가 점점 차가워지고 손과 발도 시려 옵니다. 그렇지만 동생은 참아야 합니다. 형과 낮에부터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빨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온몸이 시려오지만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춥다고 했다가는 못난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자, 이빨이 부딪치면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떨립니다. 동생은 할 수 없이 몸을 구부리고 무릎 사이에 머리와 손을 넣었습니다.

“왜 그래, 추워서 그러니?”

“아니.”

“그럼.”

“그냥”

호야도 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내대장부가 동생 앞에서 춥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참는 중입니다. 호야도 이빨이 떨리고 몸도 바들바들 떨립니다.

“형, 춥지?”

“아니.”

“정말?”

“응.”

“추운 것 같은데.”

“조금.”

“나도.”

동생은 말하는 가운데도 이빨을 부딪치며 몸을 떱니다. 호야도 동생의 몸과 닿자, 전기가 오르기나 한 것처럼 더 떨립니다. 참아보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추우면 들어가.”

“안 추운데.”

“떠는 것을 보니까 몹시 추운 모양인데 뭘 그래.”

“조금.”

“들어가.”

“조금만 더.”

“들어가.”

“그래도 될까? 그런데 형은?”

“나는 괜찮으니까.”

“그럼 내가 들어갈게.”

동생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의 그림자를 보니 엄마가 동생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엄마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별을 보던 엄마는 잠시 후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솥에서 고구마를 꺼내 가지고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니 엄마가 동생에게 고구마의 껍질을 벗겨서 주고 있습니다. 동생이 따뜻한 고구마를 먹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보입니다. 침이 꼴깍하고 넘어갔습니다. 내가 얼음집에 있다고 동생이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들어오라고 하면 빨리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쁜 놈, 형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추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동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호야가 얼음집에서 밤을 지내기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입니다. 이웃집에 갔던 삼촌이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밖으로 내밀었던 발을 재빨리 집어넣었습니다.

‘휴, 들킬 뻔했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삼촌이 옆에 세워 둔 넉가래를 들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마당을 치우려면 잘 치워야지, 눈이 길을 가로막으니 원.’

주위에 흩어져 있는 눈을 넉가래로 밀어서 눈 집 위로 던지고 눈 집을 '탁' 쳤습니다. 그러자 눈 집은 이내 무너져 버렸습니다. 호야는 그만 눈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엄마야.”

호야가 눈을 털며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삼촌은 깜짝 놀랐습니다. 방 안에 있던 동생과 엄마도 문을 열고 뛰쳐나왔습니다.

“이 녀석 어떻게 된 거야, 괜찮니?”

“응.”

“후유, 얼마나 놀랐는지 간 떨어질 뻔했다.”

엄마가 호야를 방문 앞뜰로 데리고 가서 눈을 떨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글루에.”

“이글루가 뭐야?”

듣고 있던 동생이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동생을 야단쳤습니다.

“형이 눈 속에 있다고 말해야지, 얼어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형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가 호야의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동생까지 열려 죽일 뻔했잖아.”

다음날이 되자, 최초와 동생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콧물을 흘리면서 훌쩍이기 시작했습니다. 삼촌이 만들어 주기로 한 얼음집의 약속은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일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동네 작은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