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먹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손에 쥔 것은 탐스럽고 반질반질한 천도복숭아였지만, 혀끝에 맴도는 새콤달콤한 맛은 이상하게도 어릴 적 개복숭아와 돌배의 거칠고 투박한 맛을 함께 불러왔다.
어릴 적, 시골길을 걷다 보면 이웃집 담장 너머로 개복숭아 나무가 보이곤 했다. 정식으로 심어 기르는 복숭아나무가 아니라,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자리를 잡고, 아무도 크게 돌보지 않아 야생답게 자란 나무였다. 그래서 열매도 크지 않고, 껍질은 거칠고 단단했지만, 여름 햇살을 가득 머금은 그 맛은 어린 나에게는 더없이 귀한 간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손을 뻗어 아직 덜 익은 열매를 따서 깨물면, 혀끝이 찡할 만큼 시큼한 맛이 퍼졌다. 이 맛이야말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개복숭아의 맛이다.
돌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산길을 오르다 만나던 돌배나무는 가을 무렵이면 작은 알맹이 같은 열매를 달았다. 한입 베어 물면 모래알처럼 거친 질감이 씹히고, 떫은맛이 먼저 올라왔지만 씹다 보면 은근한 단맛이 배어 나왔다. 시원한 우물가에서 씻어 먹던 그 돌배는 지금 먹는 어떤 고급 과일보다도 내 기억 속에서 달콤하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내 앞에는 잘 닦여 포장된 복숭아들이 마트 진열대에 가득하다. 천도복숭아, 백도, 황도, 이름도 다양한 복숭아들이 계절마다 넘쳐난다. 가격도 제각각이지만, 조금만 손을 뻗으면 언제든 살 수 있다. 냉장고를 열면 시원하게 식혀 둔 복숭아가 기다리고, 조금만 손질하면 먹기 좋게 잘라낼 수도 있다. 예전처럼 흙 묻은 손으로 급히 닦아 베어 물 필요도 없다. 세상은 참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 속에서 가끔은 그 투박한 맛이 그리워진다. 먹으면서 얼굴을 찡그리던 개복숭아의 신맛, 씹을수록 묘하게 단맛이 배어 나오던 돌배의 투박한 단맛, 그리고 함께 웃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그립다. 그때는 과일 하나가 계절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고, 작은 열매 하나에도 여름과 가을이 다 들어 있었다.
지금 먹는 복숭아는 달콤하고 부드럽다. 한입 깨물면 과즙이 흘러내려 손가락마저 달콤해진다. 세련된 맛이지만, 어쩐지 그 맛만으로는 기억을 건드리지 못한다. 결국 과일은 맛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먹던 풍경과 사람, 그리고 계절의 공기가 함께 기억 속에 자리하는 것 같다.
복숭아를 먹다가, 나는 다시 어린 날의 여름으로 돌아간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땀에 젖은 옷을 펄럭이며 친구들과 개복숭아를 따 먹던 오후, 돌배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간. 그 순간들이 지금 풍요로움 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지금의 복숭아는 나에게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온 시절과 오늘의 삶을 잇는 다리다. 달콤한 과즙 속에 담긴 것은 풍요의 증거이자, 한편으로는 그리움의 무늬다. 세상은 변했고, 나는 자랐으며, 과일은 더 정갈해졌다.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기억 덕분에 지금의 풍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복숭아를 먹다가, 나는 오늘도 과거와 현재를 함께 씹어 삼킨다. 새콤한 그리움과 달콤한 현재가 입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삶의 맛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