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봄비를 맞으며

by 지금은

봄비는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다가온다.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을 견디고 난 뒤 처음 내리는 보슬비는, 오래 기다린 친구의 살포시 건네는 손길 같았다. 우산 없이 길을 나서자, 머리카락과 어깨 위로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촉촉한 빗방울이 스며들었다. 피부를 스치는 순간, 오래 묵은 마음의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빗속을 걷는 길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흙냄새가 깊게 번지고, 갓 피어난 꽃잎 위에는 물방울이 맺혀 햇살을 기다리며 투명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풀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작고 맑게, 마치 은은한 종소리처럼 내 귀에 울렸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며, 그 작은 물방울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순간까지 지켜보았다.

어릴 적, 나는 우산 없이 봄비 속을 달리며 온몸으로 자유를 느꼈다. 진흙 묻은 운동화 밑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흙의 질감, 손끝에 스치는 빗물,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스치며 남기는 작은 떨림, 그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다. 세상의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컸던 그 시절, 비를 맞으며 느낀 자유로움은 삶의 가장 순수한 기쁨이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비를 피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오늘은 그 순수한 기쁨을 다시 느끼고 싶어 길 위에 멈춰 섰다.

나무들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짙은 초록빛으로 빛났다. 빗물에 젖은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흙에 부딪히며 맑게 튀었다. 꽃잎 위의 빗방울은 햇살에 반사되어 작은 보석처럼 빛났고, 떨어지는 빗방울이 잎과 잎 사이로 미끄러질 때 나는 연못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처럼 마음속까지 잔잔히 울렸다.

봄비 속에서 나는 온 세상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흙 위로 스며드는 물기,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이 모두 내 몸과 마음을 감쌌다. 발밑에서 튀는 물방울 소리와 물에 젖은 흙의 질감이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비는 말이 없지만, 그 속삭임은 마음 깊이 스며들어 조용한 위로가 된다.

봄비는 내게 새로운 시작의 선율처럼 느껴졌다. 젖은 어깨 위로 스며든 기운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세상의 소란과는 다른 고요한 리듬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삶도 그러하리라. 꽃은 빗물을 맞고 피어나고, 나무는 빗물 속에서 자라듯, 인간도 때때로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 속에서 성장한다. 오늘 나는 봄비를 피하지 않고 맞았다. 그 빗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삶의 빗방울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빗속을 걸으며, 나는 공기의 냉기와 습기, 빗물에 젖은 옷감의 촉감, 발밑에서 튀는 물방울 소리, 흙냄새, 나뭇잎과 꽃의 향기까지 모두 느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오감이 깨어나고, 그 모든 감각이 내 안에서 잔잔한 노래를 불러왔다. 봄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세상과 나 자신을 온전히 느꼈고, 그 순간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빗속에서 느끼는 온갖 감각과 함께, 마음도 천천히 적셔지며 자유로워졌다. 봄비 속을 걷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세상을 더욱 가까이 느꼈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나는 그 속에서 오히려 삶의 맑은 숨결과 따스한 위로를 발견했다. 봄비는 단순한 계절의 현상이 아니라, 삶 속 작은 기적을 알려주는 선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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