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by 지금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아베마리아를 자주 듣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성당에 가기를 그만둔 후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미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점차 종교에 대한 진실을 따져보게 되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교회 안과 밖에서의 사람들의 태도가 다름에 의문이 생겼다.

‘거짓과 참’

갈등 속에서도 처음에는 단순히 아베마리아의 잔잔한 느낌이 좋아서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곡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서서히 차분해진다.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한 겹씩 벗겨지는 듯했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감싸주는 빛과 숨결 같았다.

그 고요하고 엄숙한 선율 속에서 나는 늘 한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나의 어머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철이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밤낮없이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궂은 날 맑은 날 가리지 않고 일 년 내내 무거운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하신 어머니. 어느 날 눈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치셨어도 일을 놓지 못하셨다.

시험 성적과 진로에 고민할 때 나를 다독여 주려고 더 긴장하시던 그 마음도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엄마니까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넘겼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 무심한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흘려보냈는지를,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평생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었다. 꿈을 접고, 하고 싶은 일도 뒤로 미루며, 오로지 우리 형제들이 잘되길 바랐다.

어머니는 동생이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사망하자 한 때 마음을 잡지 못하셨다. 나는 이때에도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지 못하고 위로는커녕 먼발치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마음씨 상냥한 손녀는 달랐다. 먼저 간 자식을 위해 믿음을 가져보라는 설득으로 천주교회에 발을 들여놓으시며 다소의 안정을 찾으셨다. 이후 늘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아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 기도는 교회 종소리보다 맑았고, 그 헌신은 어떤 음악보다 숭고했다.

어머니마저 사고로 갑자기 세상으로 떠나신 후 나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을 겪게 되었다. 어느 날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라디오를 통해 내 귀를 찾아왔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큰 울림이었다. 이후 아베마리아를 들을 때마다, 그 선율이 곧 어머니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한 겨울의 안방 아랫목의 이 불속처럼 포근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베마리아는 곧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곧 아베마리아가 되어버렸다.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나는 자연스럽게 이 곡을 찾는다. 마음이 심란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아베마리아의 첫 음이 울리면 세상이 잠시 멈춘다. 그 순간 눈을 감고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종교를 갖지 않아도 괜찮다. 이 선율을 듣고 있으면,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분이 곧 나의 어머니였음을 안다. 내 어머니의 그 사랑이야말로 신의 사랑보다 조금도 부족이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음이 사라져도 방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여운이 남는다.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어머니,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사랑이 어떤 기도였는지를.”

생각한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큰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고,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삶이 아닐까.

어머니가 내게 보여주신 삶이 바로 그런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매번 다시 배우고, 또 다짐한다.

오늘도 나는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어머니, 당신이 내게 남겨준 사랑이 오늘을 버티게 합니다.”

그 이름은 곧 기도이고, 위로이며, 삶의 의미다. 아베마리아와 어머니, 두 이름은 이제 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나를 조용히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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