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간을 모으는 별

2. 시간을 모으는 별

by 지금은

숫자로 가득한 별을 떠난 뒤, 우리의 배는 한동안 고요한 우주를 미끄러지듯 항해했다.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별빛이 그의 눈에 부드럽게 비쳤고, 눈동자 속에는 무언가 깊은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나는 침묵 속에서, 조금 전의 숫자에 갇힌 남자를 떠올렸다. 계산으로는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다른 별에 도착했다. 이번 별은 겉모습부터 이상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 정지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유가 드러났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공기는 너무 무거워서 조금만 숨을 쉬어도 가슴이 뻐근했다.

별 한가운데에는 수많은 유리병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크고 작은 병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안에는 반짝이는 모래가 담겨 있었다. 어떤 모래는 은빛으로, 어떤 모래는 금빛으로 빛나며 마치 별빛 조각처럼 보였다. 하지만 병은 뚜껑으로 꽉 닫혀 있었고, 빛은 갇힌 채 가늘게 떨며 그 안에서 힘겹게 살아 있었다.

병들 사이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시계를 고치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손에는 낡은 모래시계를 쥐고 있었다. 그는 같은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흘러내린 모래를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다시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집요하게 모래알을 쫓았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러나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래시계를 붙잡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바빠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야 하거든요.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건 사라져 버리니까.”

아이의 눈이 가볍게 떨렸다.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 물었다.

“왜 시간을 병 속에 가두려 하세요?”

남자는 움찔하며 아이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피로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시간은 흘러가면 잃어버리잖니. 기억은 흐려지고, 순간은 사라지고, 하지만 이렇게 병에 담아두면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가질 수 있어. 절대로 잃지 않지.”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잃는 것에 대한 공포, 그리고 붙잡지 못할 것에 대한 집착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병 속에서 모래를 한 줌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햇살 같은 빛이 모래알에 스며들어 잠시 반짝이다가, 이내 바람도 없는 공간에서 스르르 흩어졌다. 마치 사라지는 듯 눈앞에서 숨어들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별의 정적을 깨뜨리듯 울렸다.

“보세요. 이렇게 흩어지는 게 시간의 모습이에요. 붙잡으려 하면 더 빨리 사라져요. 시간은 우리 곁을 지나가야만 새로운 순간이 태어나요.”

남자는 손에 움켜쥔 병을 바라보았다. 병 속의 모래알은 여전히 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 빛은 차갑고 닫힌 감옥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나는 모아야만 해. 그래야 잃지 않아. 흘러가게 두면 나는 텅 비고 말 거야.”

아이의 얼굴에 잠시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곧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잃는 게 아니라, 사는 거예요. 시간이 흘러야 기쁨도, 슬픔도, 다시 찾아오잖아요. 흘러가지 않는다면 새로운 만남도 없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저릿했다. 떠나온 고향, 지나간 계절, 손에서 흘러간 수많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들을 붙잡고 싶어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잊히는 것이 두려워 기억을 움켜쥐려 애쓴 적이, 추억을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아이의 말이 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시간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흩어진 모래가 반짝이며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라짐이 허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 한쪽에 환한 빛을 남겼다. 그것은 붙잡아둔 시간이 아닌, 살아낸 시간만이 남기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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