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파아란 하늘에 흰 점이란다

구름 모자

by 지금은

봄이 되자 이 산 저 산의 눈이 녹기 시작하고 골짜기의 물들이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릅니다. 바위에 얼어붙어 있던 고드름이 녹으면서 ‘똑똑’ 초침 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일러줍니다. 겨우내 조용히 숨을 죽이고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나무들도 봄바람에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합니다.

굴속에서도 봄 내음을 느낀 다람쥐 부부가 아기들의 볼을 어루만지며 속삭입니다.

“아유, 귀여운 우리 아가들.”

“빨리 따스해져야 얘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갈텐데.”

“글쎄 말이에요, 밖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원.”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내가 먼저 굴 밖의 날씨를 알아보고 오리다.”

아빠 다람쥐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살금살금 굴속을 기어 나와 입구에서 밖을 내다봅니다. 햇살이 굴 입구를 가린 낙엽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벌써 마음속에는 따스한 봄기운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와! 이제는 완전한 봄이군.’

다람쥐는 기쁜 나머지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재빨리 낙엽을 밀어냈습니다. 봄 내음을 맡기 위해 숨을 힘껏 들이마셨습니다.

‘휙’ 하고 봄바람이 산 아래서 위로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올라왔습니다.

“아이 추워.”

다람쥐는 그만 몸을 옴츠리고 재빨리 굴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아직은 싸늘하게 느껴지는 봄바람에 코끝이 찡해 옵니다.

아빠 다람쥐는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야 겨울이 북쪽나라로 이사하기 위해 겨우 이삿짐을 싸는 중인가 봐요, 눈이 다 녹지 않고 코끝이 시린 것을 보면 말이에요.”

엄마 다람쥐는 아기들을 꼭 끌어안으며 대답합니다.

“아직 아기들이 눈을 뜨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눈은 떠야 봄이 시작된다고 할머니가 말씀을 하시 던 기억이 나는데, 아가의 눈이 뜰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합시다.”

엄마 다람쥐는 아기들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얘들아, 어서 눈을 뜨거라. 너희들이 눈을 뜨면 봄이 시작되는 거래요.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 렴.”

아기 다람쥐들은 알기라도 하듯이 엄마에게 고개 짓을 합니다.

드디어 보름이 지났습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품속에서 자란 아기 다람쥐 형제들은 무럭무럭 자라난 것입니다. 털도 없이 눈을 감고 태어난 새끼 다람쥐들이 이제는 또랑또랑 해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재롱을 부립니다. 보드라운 털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굴속에만 갇혀 답답해하던 아빠 다람쥐가 밖에서 돌아오더니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말합니다.

“이제는 동장군이 완전히 물러갔어요.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도 피었다우.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도 좋은 겠다오.”

저녁때가 되어 돌아온 아빠 다람쥐가 금방이라도 아이들 데리고 뛰쳐나갈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렇지만 엄마 다람쥐는 아빠 다람쥐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밤을 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아기 다람쥐들의 입에 넣어 주며 속삭입니다.

“너무 늦었어요, 내일이 좋을 것 같군요.”

아빠 다람쥐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슬며시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 잘 돌봐 줄 생각이나 미리 해봐야겠군.’

아빠는 책상에 앉아 밤이 깊어 가는 줄을 모릅니다.

다음날 부부 다람쥐는 아기 다람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 눈부셔라.”

밖으로 처음 나간 아기 다람쥐들은 태양을 쳐다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외쳤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익숙해졌습니다. 엄마 다람쥐를 졸졸 쫓아다니며 재롱을 부립니다. 뒤뚱뒤뚱하기도 하고 엄마를 쫓아 바위를 오르다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나무를 오르려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습니다. 아기 다람쥐들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와 떨어져 제법 먼 곳까지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구경합니다. 하마터면 무서운 짐승들에게 잡힐 뻔도 하고 사람들에게 붙들릴 뻔도 했지만 다람쥐 형제들을 용케도 위험을 벗어나 씩씩하게 생활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아기 다람쥐들은 제각기 살림을 차리고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던 날 부모는 다람쥐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가을이 다가오고 열매들이 익어 간단다. 겨울을 위해 각자 열심히 양식을 모아 놓으렴.”

“염려 마셔요, 우리는 안 배워도 다 알아요.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것과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고 몹시 추워서 밖으로 다닐 수도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그러자 부부 다람쥐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식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자기 자식들이 모두 너무나 똑똑해 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한동안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아빠는 아이들에게 양식을 모으는 방법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얘들아, 하늘에 점을 잘 찍어야 한다. 하늘이라서 점을 잘못 찍으면 보이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 단다. 구름에 파란 점을 찍으렴.”

엄마가 더욱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어서 다시 말합니다.

“점을 찍는 것은 말이야,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번 알았지? 구름 아래 수풀 속에 양식 모 아 놓은 다음 가랑잎으로 잘 가려 놓는 거야.”

아이들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음, 바로 저 아래구나.’

드디어 가을이 무르익고 단풍잎과 들판의 곡식들이 영글어가자, 다람쥐 형제들을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양식 모으기를 시작해야겠지?”

다람쥐들은 양식을 부지런히 모아 풀 속에 모아 놓고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습니다.

“저 구름 왼편으로 두 발짝.”

또 모아 놓고는 말했습니다.

“토끼 구름 바로 아래.”

또 부지런히 모아 놓고는 다시 말했습니다.

“꽃구름 아래 산 밑으로 열 발짝.”

다람쥐 형제들을 신이 났습니다. 올해도 풍년이라서 먹을 것들이 아주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겨울 양식은 충분하겠지.”

“그래그래, 이만하면 충분해.”

형제들은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 매우 궁금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어서 빨리 겨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펄펄 눈이옵니다.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송이송이 눈꽃 송이를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드디어 날이 추워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온 산에 물들었던 단풍잎들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져 쌓입니다. 다람쥐는 마지막으로 잘 여문 열매들을 알뜰하게 모으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더 모으면 내년 봄까지의 양식은 충분하고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부부에게도 줄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다람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드디어 첫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겨울 양식을 굴속에 저장하고 잠을 자야 할 때가 다가오는가 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열심히 모아 논 양식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바람이 불고 제법 날이 차갑지만 모아 논 양식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추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 양식을 모아 놓고 아무도 모르게 표시해 놓았으니까, 문제없지.’

눈이 그치고 햇살이 비추자, 다람쥐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자신이 표시해 놓았던 가까운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저 구름 아래였지.’

재빠르게 달려간 다람쥐는 바로 구름 아래 멈춰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러고는 낙엽으로 가려 놓았던 자리를 두 발로 헤쳤습니다.

‘아니?’

하늘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 다람쥐는 저만치 가 있는 구름을 향해 달렸습니다.

‘토끼 구름 옆으로 한 발짝인데 위치를 잘못 알았군.’

수풀로 들어간 다람쥐는 낙엽을 헤쳤습니다.

‘아니, 여기도 아닌데.’

다람쥐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구름이 다시 저만치 가 있습니다.

‘저곳인데 잘못 알았군.’

달려간 다람쥐는 다시 구름 아래 수풀의 낙엽을 헤쳤습니다.

‘이곳도 아닌데, 여기도 아닌데. 바위 옆도 아니고, 물푸레나무 아래도.’

다람쥐 형제들은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종일 하늘의 구름을 보며 달렸습니다. 오후가 되자 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구름이 어디 갔지, 내 구름이 어디 갔지? 내 구름, 내 구름.’

다람쥐는 발이 시린 것도, 콧등이 시린 것도 참고 달렸습니다. 온 산을 이리저리 달리자, 이마와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합니다.

‘내 구름, 내 구름, 내 구름.’

구름 모자 할아버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습니다.

‘아유, 불쌍해라. 이를 어쩐담?’

다음해 봄이 되었습니다.

수풀 속에는 도토리 식구들이 옹기종기 태어날 것입니다. 알밤 식구들이 소복이 태어날 것입니다. 개암 식구들이 총총히 태어날 것입니다. 산은 도토리나무, 밤나무, 개암나무로 가득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온 산이 도토리나무, 알밤나무, 개암나무로 수풀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다람쥐들은 하늘에 점을 찍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요.

할아버지는 다시 아래를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부모에 그 애들이구먼.”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리고 다람쥐들이 사는 깊은 산 속은 선녀님들이 뿌려 준 함박눈이 수풀을 감싸안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들은 굴속 깊이 겨울잠을 청했습니다.

‘왜냐구요.’

내년에도 하늘에 점을 찍어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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