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간질간질 1
‘코코코’ 놀이하다가 갑자기 하름이가 경인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사람은 왜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둘일까?”
“그야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글쎄 하느님이 왜 귀를 두 개 만들었느냐 말이지.”
“…….”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잘 들으라고 귀가 둘이 아닐까?”
“그렇기는 한 것 같은데, 달래는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제 말을 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집에 갈 때까지 달래가 듣는 것이 많은가? 남에게 말하는 것이 많은가 눈여겨보면 되겠지.”
“네.”
그런데 옛날에도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면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가끔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도 가끔은 그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가끔 공부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네.”
“친구들이나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재미있는 것을 볼 때처럼 해야 하는 거야. 눈이 둘인 이유도 마찬가지란다. 눈이 안 보인다거나 귀가 먹었다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갑갑하겠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군가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때처럼 기분이 좋은 경우는 없을 듯합니다. 내말을 잘 듣고 있을 때는 괜히 신이 납니다. 태도를 바꾸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언젠가 책을 보았는데 참된 대화는 바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데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