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지도

입이 간질간질 3

by 지금은

지도를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지도입니다.

‘이를 어쩌지?’

슬그머니 이불을 접었습니다. 접었습니다. 오랜만에 그려본 지도입니다. 섬이 작게 그려져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검정 팬티와 바닥은 푹 젖어있습니다. 엎드려 잔 덕분입니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습니다.

‘꿈만 안 꾸었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제 늦도록 논 것이 화근입니다. 밤이 밝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술래잡기했습니다. 보름달이 문제입니다. 아니, 친구들이 문제입니다. 친구들이 놀자고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달이 밤하늘을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구름이 달을 가려주기만 했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동구 밖 개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안개가 내 마음을 아는지 동네를 감쌌습니다. 잠에서 일찍 깨어난 것이 다행입니다. 식구들보다 늦게 일어났다면 분명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개울에 가서 목욕하는 척하고 옷을 빨아 입어야겠습니다.

“왜 옷이 젖었니?”

누군가 물으면 개울에서 세수하다가 미끄러졌다고 둘러대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에헴, 누구냐?”

생각지도 않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미순네 할아버지 음성입니다. 나는 대답을 할 사이도 없이 징검다리 옆에 미끄러지듯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아니, 미끄러진 게 분명합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할아버지도 놀랐음이 분명합니다.

“누 누구.”

“돌다리에서 미끄러졌어요.”

안개가 너무 짙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나 보구나. 이왕 빠진 김에 미역이나 감고 가거라.”

아침을 먹고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엄마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옷 벗어. 젖은 옷 입으면 가난해진다고 하던데.”

나는 낯을 붉히며 옷을 벗었습니다. 밖을 보니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엄마가 옷을 집어 들어 코로 가져갔습니다.

“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해가 얼굴을 드러내면 이불은 얼룩을 보이며 마당 한가운데에 자랑스럽게 일광욕할 것입니다.

이전 05화45. 맹콩이와 복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