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14. 달집

by 지금은

“야, 호야, 달맞이 가자.”

저녁을 먹고 있는데 승호가 왔습니다. 작년에도 가자고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달음박질을 잘하지 못해 항상 친구들과 시합하면 뒤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 가길 잘했습니다. 따라갔더라면 곤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 때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달구경을 한 후 달집을 태우고 돌아올 때는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뒤에 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생각에 서로 앞서려고 죽을힘을 다해 뜁니다. 뒤처진 사람은 무서움에 오금이 저립니다. 명수가 한 말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야 안 들려? 달집 태우러 가자.”

“가기 싫은데.”

“왜?”

“그냥.”

“무서워서 그렇지?”

“아니.”

“그럼?”

“그냥 가기 싫어.”

“무서워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니.”

“그럼 가자. 달집을 태우며 소원을 빌면 일 년 내내 건강해진다는 데.”

“그래도.”

“동네 큰형들도 간다고 하는 데 같이 가자.”

호야는 승호가 조르는 바람에 마지못해 따라나섰습니다. 만약 올해도 따라가지 않는다면 동네 아이들의 놀림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호야는 겁쟁이라고 소문을 낼지도 모릅니다. 승호는 힘이 세고 급한 성격이라 가끔 동네 친구들을 괴롭힙니다. 짓궂은 짓을 잘합니다. 친구들은 힘이 센 승호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덤벼들었다가는 얻어터지기가 일쑤입니다.

동네 큰 마당으로 갔더니 벌써 형들과 친구들이 달집 태울 준비를 해서 모여 있었습니다.

“호야가 웬일이니?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가지 않더니.”

“응, 작년 재작년에는 우리들이 가는 줄을 몰랐대.”

승호가 둘러댔습니다. 달빛이 주위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봉우리 위로 떠오르기 전에 부지런히 가야겠다.”

형들이 앞장을 서고 우리는 뒤를 따라서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등성이에 거의 오르자, 달의 머리 부분이 살짝 보입니다.

“조금 늦었는데 부지런히 올라가자.”

형들이 뛰어서 올라가자, 우리들도 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산마루에 이르렀습니다. 서늘한 날씨인데도 이마에 땀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은 달구경을 하다가 산마루에 만들어 놓은 달집에 불을 놓았습니다. 모두 둘러서서 각자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달님 올해는 장가를 가게 해 주세요.”

호중이 삼촌이 먼저 달님에게 빌자 모인 사람이 차례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돌아갈 때 아무런 일 없이 잘 가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소원 빌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우리는 달을 바라보며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반달’ ‘달맞이 가자’ 노래들을 이어서 불렀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달이 점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만 가자.”

호중이 삼촌이 말했습니다. 모두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숲 속을 지나는 길은 나뭇가지들에 가려서 점차 어두워집니다. 건너편에서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들이 지나는 나무 옆에서 새들이 놀라서 날아올랐습니다. 호야도 놀라 머리가 쭈뼛해집니다. 드디어 호중이 삼촌을 비롯한 형들이 우리들을 놀라게 해 주려고 달음박질합니다. 아이들이 뒤따라 달립니다. 호야는 친구들을 앞서 달렸지만, 점점 뒤처지기 시작합니다. 호야보다도 작은아이들도 앞서 나갔습니다. 산 밑을 거의 내려왔을 때입니다. 벌써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랑을 따라 나무들이 귀신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지난번 한 친구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누가 말했는데 한밤중에 도랑 건너 묘에서 사람의 다리가 불쑥 솟아오른 것을 봤다지.’

무서워서 도랑을 건너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호야는 할 수 없이 도랑 앞에 멈춰 섰습니다. 묘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침침해진 달빛에는 묘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봉분만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졸졸 흘러가는 도랑물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부엉이 울음소리와 여우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서 있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데리러 올 사람도 없습니다. 드디어 호야는 용기를 내어 도랑을 건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묘지 옆을 지나칠 때는 무서운 마음에 눈을 감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바로 눈을 감은 게 잘못이었습니다. 묘지를 지나 비탈길을 달리다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그만 나동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일어서 달렸습니다. 외딴집 앞에 다다라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멈췄습니다. 팔과 다리가 쓰라려 사립문 앞에 주저앉아 살펴보았습니다. 팔꿈치가 벗겨지고 바지 무릎이 찢어져서 피가 맺혔습니다. 긴장이 풀리자 몹시 아픕니다. 호야는 겨우 일어나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리를 절면서 걸었습니다.

다음 날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어젯밤에 달구경하고 달집을 태운 사람들 손들어 봐요.”

많은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호야도 따라서 손을 들었습니다.

“모두 소원을 빌었겠지요?”

“네.”

“그럼, 호야가 말해 봐요.”

“선생님 저는 올해 내내 건강하고 달집을 태우고 돌아갈 때 무사히 집까지 가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래서 소원이 이루어졌나요? 달님은 마음씨가 착하니까 들어주셨겠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게 아니고요, 달님은 귀머거리인가 봐요.”

“왜?”

“집으로 돌아갈 때 무사히 도착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그만 산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팔꿈치와 무릎을 다쳤거든요. 정말 귀머거리, 애꾸눈인가 봐요. 돌아오는 길도 밝혀 주지 못하니까요.”

반 친구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선생님도 웃었습니다.

어젯밤 생각에 다리의 힘이 빠지고 무릎이 더 아파 오는 것 같습니다. 호야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달님은 반딧불만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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