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섬 아이들
“선생님 뭘 하세요?
김이 펄펄 나는 주전자를 난로에서 내려 창 옆으로 밀어놓는 선생님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아침을 안 드셨나 봐요?”
“아아, 아니다. 벌써 먹고 난로까지 피웠잖니.”
민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옆으로 다가섰습니다. 아무래도 궁금한 눈치입니다. 선생님은 슬그머니 민주의 등을 밀어 난로 옆으로 서게 하였습니다.
“춥지, 갑자기 추워졌어. 영하 9도라던데.”
“선생님, 하나도 안 추운데요.”
하고 손을 비벼대자, 인석이가 옆에 서 있다가 말했습니다.
“요런 여우 같으니라고, 아까 고개 내려올 때는 추워서 죽겠다고 죽는 시늉하더니만.”
“언제? 오빠가 죽는시늉했잖아.”
“어쭈, 이 위대하신 오빠를 놀려?”
주먹을 불끈 쥐자, 민지가 선생님 등 뒤로 숨었습니다.
“그만두어라. 오늘부터는 방학인데도 나오라고 했으니, 책을 많이 읽고 가야지.”
선생님이 책을 펴들자 아이들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도 가라앉았습니다. 난로 주변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등 뒤로 햇살이 곱게 펴지고 있습니다. 노란 햇살, 빨간 햇살, 검은 햇살······, 아이들의 옷을 따라 자리를 바꾸며 물들여 갑니다.
‘아이, 햇살이 곱기도 해라.’
선생님은 잠시 후 살며시 일어나 냄비를 난로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창문으로 다가가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켰습니다.
“아! 시원하다.”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 시원하다.”
아이들도 다가와 기지개를 켰습니다.
“지금부터 십 분간 휴식이다. 화장실 갈 사람은 예쁘게 화장하고 오거라.”
“예, 예쁘게 하고 올게요.”
아이들 두서너 명이 쪼르르 문을 향해 다가갑니다.
조용하던 교무실은 갑자기 노란 햇살과 함께 조잘대는 소리로 가득 차 버립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냄비도 볼록볼록 움직이며 달각거리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라면 잡수시려고요?”
“응.”
“아까 아침 드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또 라면을 드시려고요?”
“응.”
“아이고, 선생님은 돼지인가 봐.”
꼬마 민나가 도순이 뒤에서 숨어 있다가 고개를 쏘옥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너, 선생님께 그런 말을 하다니.”
도순이가 미래의 목을 껴안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갔던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수선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추어라.”
“정말 춥다.”
아이들이 몸을 떨면서 난로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더욱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하마터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연통에 닿을 정도입니다.
“한발 물러서야지.”
“너무 추어요.”
“안 되겠다.”
선생님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냄비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민지가 물었습니다.
“뭐 하시려고요?”
“응, 네가 하도 춥다고 하니 민지의 엉덩이를 난로에 구워 줄까 하고 생각 중이다. 좋겠지?”
“네, 네 좋아요. 그러면 겨우내 춥지 않을 거예요.”
“좋기는 좋은데, 그건 안 돼.”
민지가 볼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왜 안 될까?”
“그건요 그래요. 엉덩이가 익으면 도깨비가 뜯어먹으니까요.”
“어떻게 그런 걸 알았지?”
“네, 금방 책에서 읽었어요.”
듣고 있던 아이들이 민지 옆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느 책인데?”
“이 책.”
민지가 능청스레 읽던 책을 들자, 아이들이 서로 다투어 빼앗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예쁜 미래부터 읽어봐.”
민나가 궁금하다는 듯이 책장을 하나씩 넘기며 살펴보았습니다.
잠시 후 ‘으응’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책을 너무나 더디게 읽으니까, 그렇지.”
이 학년 성재가 빼앗아 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으응’ 역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너는 너무 빨리 책장을 넘기니까 그렇지.”
이번에는 삼 학년 성태가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너무 뚱뚱해서 글씨가 가리잖아.”
정찬이가 다시 책장을 차근차근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반 정도 넘기다가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눈이 아파서 안 되겠어.”
“그럴 거야.”
민지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으흐흐’
선생님이 꼬마들의 얼굴을 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 민지 누나 말이 맞는가 봐. 선생님이 도깨비 흉내를 내시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렇지만.”
정찬이는 아직도 눈을 비비며 의심스러운 표정입니다. 민지와 선생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는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잠깐만, 해답은 있다.”
“뭔데요?”
“비밀.”
선생님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냄비를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 정말 라면이에요?”
“응.”
“같이 먹으면 안 될까요?”
“안 돼.”
“같이 먹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다 같이 입맛을 다셨습니다.
“안 돼, 선생님 아침 식사를 안 하신 게 틀림없어.”
인석이가 아이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나 아침 먹었다.”
“그럼요?”
“콩 반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데 라면 한 가닥씩이라도 나눠 먹어야지.”
선생님이 머리 위로 들고 있던 냄비를 내렸습니다.
‘꼴깍’하고 지현이의 군침이 넘어갔습니다. 민지의 군침도 넘어갔습니다. 선생님의 군침도 넘어갔습니다.
“짜잔.”
선생님이 냄비 뚜껑을 열었습니다.
“야 야호!”
아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쳤습니다.
“하나가 모자라는데 이를 어쩐담.”
갑자기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열네 개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아주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선생님, 하나가 남는데요?”
“맞아요, 하나가 남아요.”
“그럼 남나 봐야지.”
선생님의 손이 민지에게 다가갔습니다. 다음은 지성이, 민나, 정찬이······.
아이들의 손이 하나씩 주먹으로 변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눈이 다시 냄비로 향했습니다.
‘하나가 남는데요.’
모두 주먹이 허리 뒤로 숨었습니다. 눈동자가 또랑또랑 빛납니다.
“선생님!”
“이 녀석들, 이것은.”
“맞아요, 선생님도 드셔야지요.”
눈치 빠른 용석이가 재빨리 말했습니다.
“맞아, 선생님이 제일 먼저 드셔야 해.”
아이들이 합창하듯 말했습니다.
“요 귀여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옜다, 소금이다.”
‘탁탁’ 껍질 벗기는 모습이 요란합니다. 이마에 쳐서 벗기는 녀석, 책상 모서리에 치는 녀석, 무릎에 부딪쳐 깨는 녀석, 아 글쎄 유리창에 살살 쳐서 벗기는 녀석까지. 모두 신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쪄주신 달걀이 제일 맛있어요.”
“다음에 또 먹고 싶어서 그러지?”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은 민지의 책이 제일 인기가 있었습니다. 비록 도깨비라는 글씨는 하나도 없었지만, 달걀 도깨비를 찾는 데 열중하다 보니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니까요. 제목부터 맨 뒷장 책값까지 다 읽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