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섬 아이들
“아이 시원하다. 아이 시원하다.”
할아버지께서 닭 국물을 드시면서 연신 같은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앞에 앉아 닭 다리를 뜯던 민수가 할아버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후후, 아이 시원하다. 복날에는 역시 닭죽이 최고야.”
다시 민수의 눈이 할아버지의 입으로 다가갑니다.
“할아버지 정말 시원하세요?”
“응.”
“에이, 할아버지! 저 놀리려고 그러시지요?”
“아니다. 시원하다.”
“정말요?”
“정말이고말고.”
민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할아버지는 바로 전과 같이 후하고 불고는 닭죽을 입에 넣으십니다. 다시 입을 벌려 ‘후후’ 하시며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분명 뜨거울 때 하는 버릇인데 이상하다.’
음식을 먹다 말고 다시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멋쩍으신 듯 말씀하십니다.
“얘야, 식기 전에 먹어라. 식으면 맛이 없느니라.”
‘이상하다. 식으면 맛이 없다고? 그건 그렇고 식기 전에 먹으면 무척이나 뜨거운데 시원하시다고 하시니 닭죽은 원래 뜨거워도 시원한 것일까?’
그냥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 녀석아, 어서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 할아비가 모두 빼앗아 먹을 테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도 언젠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은 옳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민수는 할아버지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닭죽을 휘휘 저어서 한 숟갈 크게 퍼서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아니, 아니.”
할아버지가 말릴 틈도 없이 입에 넣고 꿀꺽 삼켰습니다.
“얘 얘야.”
민수는 갑자기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일어나 발을 구르며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재빨리 부엌으로 나가시고, 이어 엄마가 찬물을 가지고 뛰어 들어오셨습니다.
“민수야, 민수야, 빨리빨리.”
엄마가 먹여주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미련한 것아, 뜨거우니 ‘후우’ 불어서 천천히 먹어야지.”
“할아버지가 시원하다고 하셔서.”
“어른과 어린이는 다른 거예요.”
들어오신 할아버지께서 엄마와 민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어린 것 앞에서 괜히 할애비가 주책을 부렸구나.”
무안해하시는 할아버지께 엄마는 민수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차분하지 못하고 천방지축이라 그렇지요, 아버님은 신경 쓰지 마셔요.”
“······.”
“민수 녀석 때문에 아버님 식사도 편히 못 하셨네요.”
며칠 후 민수가 저녁때 학교 운동장에 공을 차러 갔습니다. 교문에 들어서자, 학교가 시끌벅적합니다. 조용하던 학교가 어른들의 떠드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아이들이 있을 때보다 더 시끄럽습니다.
‘웬일일까?’
민수가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자, 오동나무 아래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몇 분 모여 계십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이웃집 아저씨들이 무엇인가를 잡수십니다. 모른 척하려다가 희정이가 눈에 띄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희정아!”
하고 부르자 선생님께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셨습니다. 동네 아저씨들도 반기는 눈치십니다.
“이리와, 매운탕 먹어라.”
“그래, 이리 와!”
기와집 아저씨가 솥에서 펄펄 끓는 국물을 퍼서 민수에게 내미셨습니다.
“받아.”
민수는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 나의 등을 밀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아침에 복날이라고 하셨지요.”
“복날에는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지?”
“네.”
“아주 얼큰하고 시원하단다. 먹어 보거라.”
받아 들기는 했지만 망설여집니다. 맵고 뜨거워 보이는데 선생님은 시원하다고 먹어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영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아저씨들의 재촉에 민수는 할 수 없이 숟가락으로 아주 조금 떠서 혀끝에 대어보았습니다. 톡 쏘는 것이 맵겠구나 하는 순간 입안에 침이 잔뜩 고였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자 입안이 조금 화끈거리는 기분입니다. 선생님 말씀만 믿고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가는 할아버지 말씀 때보다 더 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아, 얼큰한 것이 시원하구먼.”
“아주 잘 끓였어요.”
“누가 끓인 건데 그래요.”
어른들이 너무나 맛있게 잡수십니다.
‘먹어볼까 말까?’
“왜 그러고 있어?”
“정말 시원한가요?”
“그럼, 얼큰하고 시원하고.”
“정말이세요?”
“아니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니?”
“그래도?”
선생님이 증명이라도 해 보이시려는 듯 내 숟가락을 빼앗아 국물을 한 숟갈 푹 떴습니다. 주위에 있던 어른들의 눈동자가 모두 나를 향했습니다.
“민수는 좋겠네, 선생님께서 다 먹여주고.”
숟가락이 입 가까이 다가올수록 민수의 입은 점점 굳게 오므려집니다. 드디어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선생님!”
민수는 뒷걸음질을 몇 발작하다가 드디어 운동장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녀석도, 부끄러워하기는.”
‘그런 게 아니고요, 선생님은 우리 할아버지하고 똑같아요. 마치 나이 많은 청개구리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