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섬 아이들
“아이 셔라.”
경재가 살구나무에서 살구를 따서 한입 물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리다 수돗가 도랑에 뱉어 버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막 살구나무를 지나시다가 이 모습을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가 시어서 그러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 그래.”
“선생님, 살구 드릴까요?”
경재가 살구를 내밀었습니다.
“너나 많이 먹지.”
“엄청 셔요. 쓰기도 하고요.”
“그럼, 왜 먹니?”
“선생님께서 쓴 게 약이라고 하셨잖아요.”
“원, 녀석도.”
언젠가 농담 삼아 한 말을, 말썽을 잘 피우던 경재가 잘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신기한가 봅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다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선생님이 평상 주위에 떨어진 살구를 두 개 주워서 경재에게 내밀었습니다. 받아 들고 살펴보자, 살구는 땅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갈라지고 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경재의 눈이 손바닥에서 선생님의 얼굴로 옮겨졌습니다.
“선생님, 이런 걸 주세요.”
“왜?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러니?”
“네.”
선생님이 경재의 손에서 살구를 빼앗아 수돗가로 내려섰습니다. 수도꼭지에서 시원한 물이 흘러내려 살구에 묻은 흙들이 깨끗이 씻겨 내렸습니다. 선생님은 살구를 한 입 벼 물고는 입맛을 다십니다.
“선생님, 뭘 그렇게 맛있게 잡수세요?”
먹을 것을 특히 좋아하는 성태가 책가방을 멘 채 선생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응, 성태로구나!”
“네, 안녕하세요?”
“오냐. 궁금하지?”
선생님은 성태에게 하나 남은 살구를 내밀었습니다.
“뭔데요?”
“먹어봐.”
성태는 살구를 받아 들자, 입에 넣고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곁에 있던 경재도 입맛을 다시며 물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니?”
“응”
“실텐데.”
“아냐, 맛있어.”
“야, 거짓말 마라. 그거 개살구라 엄청 신 건데.”
“개살구? 아닌데, 맛있는데.”
“참살구야”
“맛있는데.”
성태가 다시 입맛을 다십니다. 경재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닌데?”
아침 햇살이 오동나무 사이에 스며들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모두 열두 명이 선생님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뭔가 궁금한 눈치들입니다. 참다못한 명근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뭐가?”
“아닌데?”
“개살구.”
“아닌데.”
“맞다, 개살구.”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
“아닌데.”
“맛있다.”
선생님이 다시 평상 주위를 둘러보시고 살구 세 개를 주워서 수돗물에 씻었습니다.
“정찬이 반쪽, 용석이 반쪽, 미래 반쪽.”
선생님이 눈을 찡끗했습니다.
“선생님, 맛있는데요.”
“야, 거짓말 마라. 개살구는 얼마나 신데 그래.”
경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개살구는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어야 하는 거야.”
“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용석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살구가 매달린 나뭇가지 아래에서 고개를 뒤로 젖혔습니다.
“형아, 왜 입을 벌리고 하늘을 봐?”
“살구 먹으려고.”
아이들이 낄낄 웃었습니다.
“온종일 있어야겠네.”
“빨리 바람이나 불라고 해.”
“차라리 떨어질 때를 기다리느니 따먹는 게 났겠다.”
“선생님이 개살구는 따 먹는 게 아니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겠니.”
아이들이 평상 주위를 맴돌며 살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용석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하늘만 봅니다.
“이 형 체면에 땅에 떨어진 것이야 먹을 수 있겠니?”
“형이면 단가?”
아이들이 각자 살구를 주워 맛있게 먹지만 용석이는 그저 그렇게 있습니다. 도저히 땅에 떨어진 것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인 모양입니다.
공부 시간이 되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용석이는 형과 오빠로서 체면을 중시하니까 머물러 있는 게 좋겠지. 살구 맛은 봐야 하지 않겠니?”
“네.”
오동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자, 햇살이 경재의 얼굴에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아마도 살구가 입으로 떨어지려는 모양이지요?’
이 모습을 살그머니 바라보던 정수가 선생님 몰래 용석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형아, 살구 떨어졌어?”
“지금 막 떨어지려고 해.”
용석이도 한 발짝 곁에서 입을 벌리고 눈이 하늘을 향했습니다.
“형아!”
“쉿”
정찬이가 다가와 살구를 향해 입을 벌렸습니다.
미래가 다가와 입을 벌렸습니다.
지성이도 다가왔습니다.
성태, 명근이, 도순이, 지만이도 다가왔습니다.
꼬마 희경이도 나무 아래 섰습니다.
“오빠들 왜 그래?”
“야, 조용히 하고 입 벌려.”
희정이는 이상하다는 듯 오빠 언니들을 둘러보고는 하늘로 그저 입을 벌렸습니다.
“이 녀석들, 그래도 양반 체면은 있어서!”
선생님이 살구나무 둥치를 발로 쾅쾅 굴렀습니다. 후드득.
“아야야.”
살구가 아이들의 이마를 때렸습니다.
“이 녀석들, 어서 빨리 하나씩 먹고 들어가자.”
선생님이 살구를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경재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진짜 맛있을까요?”
“글쎄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데. 백문(百聞)이 불여일미(不如一味)겠지.”
뒤에 있던 지만이가 경재의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인마, 선생님이 어려운 말씀을 하시면 진짜야.”
“정말?”
“속아만 봤냐? 진짜인지는 나도 모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