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꽃
다음날 소년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따뜻하던 날씨가 갑자기 차기는 했어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마음에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바퀴의 부족한 바람을 넣기 위해 소녀의 집 울타리를 지나 밭 아래 외딴집으로 향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날 무렵입니다. 보이지 않던 소녀가 갑자기 뛰어와 반가운 듯 말했습니다.
“어디 가니?”
“서리골.”
“왜?”
“아버지 심부름.”
“자전거를 탈 줄 모르니?”
“바퀴에 바람이 빠졌어.”
“잘 타?”
“응.”
“그럼 나도 태울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지도 몰라.”
“얼마나?”
“한 두어 시간쯤 더.”
소년은 언덕길을 내려가 개울을 건너 소녀를 뒤에 태웠습니다. 천천히 자전거를 밀며 울퉁불퉁한 튀어나온 돌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갔습니다.
“너는 왜 안타니?”
“······.”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구나?”
“그게 아니라······.”
소녀는 소년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얼마를 가다가 소녀는 다시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탈 줄 모르나봐.”
“그게 아니라. 엉덩이가 아플 텐데.”
소년은 소녀를 짐받이에 태운 채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자전거가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소년은 되도록 바퀴가 돌부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핸들에 힘주고 페달을 조심조심 밟았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듯 이리 덜컹 저리 덜컹 계속 요동을 칩니다. 한참을 가던 소년이 부끄러운 듯 말을 꺼냈습니다.
“불편하지?”
“아니, 재미있어. 꼭 말 타는 기분인걸.”
이마의 땀을 닦을 수는 없어도 소년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녀를 뒤에 태우고 신나게 길을 달린다는 마음에, 땀에 젖은 신발이 거슬리기는 해도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소녀는 소년과는 달리 추웠습니다. 몸을 잔뜩 옴츠리고 계속 소년의 등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추운가 봐.”
소년은 오르막길에서 내리자, 겉옷을 벗어 소녀의 몸에 걸쳐 주었습니다. 얇고 하얀 옷이 어딘지 추울 것만 같았습니다.
“이름이 뭐지?”
“서석.”
“나는 명자 김명자.”
“너 저 산 너머 저 멀리 가보고 싶은 생각을 해봤니?”
“아니.”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싶어.”
“······.”
“가끔 잠을 자면서 그런 꿈을 꾼단다.”
“추워 보이는구나.”
말하는 소녀의 입술은 아침보다 더 파랬습니다. 소년은 등에 걸쳐 주었던 옷을 다시 여미고는 단추를 하나씩 채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