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여치의 울음소리와 함께 논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더니만 금세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동나무 아래 뒷간에서도 여치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지붕 사이로 빠끔히 뚫린 구멍을 통해 별들도 더욱 샛노랗게 익어갑니다.
이제는 정말로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했나 봅니다. 쇠풀을 뜯기려 산모롱이를 돌다 보면 머루가 검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으름도 덩굴 사이로 숨어 수줍은 듯 입을 벌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추석이 지나면 내 입이 달콤해질 게 분명합니다.
‘가을에는 산에 가는 것이 사촌 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옛 속담이 생각나서 산으로 갈지 생각도 했지만, 오늘은 유리 됫병을 들고 앞 논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논두렁을 밟고 오는데 수많은 메뚜기가 뛰고 날았습니다. 강아지풀 줄기를 뽑아서 잠깐 꿰기 시작한 메뚜기가 다섯 꾸러미나 됐습니다.
“많이도 잡았구나!”
엄마는 작은 손으로 잡은 게 신기하다는 듯 손을 보더니 메뚜기를 기름에 볶았습니다. 고소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메뚜기를 잡는 것이 났겠지.’
냇가를 따라 줄지어 선 논두렁을 밟으며 메뚜기를 잡아 병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논 가장자리에 서 있는 허수아비의 몸에도 노랗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새들은 무서워서 가까이하지 않는데 메뚜기란 놈들은 허수아비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메뚜기가 어찌나 많은지 잡는 것보다는 손으로 움켜잡아 병에 담는다는 표현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잠깐 사이 병에 가득 찼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만 집으로 돌아올까 하다가 더 잡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의 닭이 좋아할 게 분명합니다. 또 식구들에게 칭찬받는 기쁨도 있습니다. 됫병을 논둑 위에 내려놓고 강아지풀의 줄기를 뽑았습니다.
“많이 잡았니?”
명희가 병을 들고 메뚜기를 잡으러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습니다.
“많이도 잡았네, 더 잡으려고?”
“많이 잡지 못했어. 조금만 더 잡고 가려고.”
그러자 명희가 내 됫병을 들어 보이고는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잡았니? 나한테 반만 줄래?”
“안 돼.”
나는 명희가 들여다보는 병을 재빨리 낚아챘습니다. 왜냐하면 병희는 손힘이 세서 그냥 두었다가는 빼앗길지 모릅니다. 그러자 명희가 다시 내 병을 낚아챘습니다.
“남자가 쩨쩨하게.”
다시 병을 빼앗으려고 명희의 손을 쳐버렸습니다. 그러자 병이 떨어지면서 그만 논둑 아래 개울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나도 명희도 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퍽’
재빨리 미끄러져 다가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흩어진 메뚜기는 다시 잡으면 되지만 엄마가 얼마나 아끼시는 됫병인데.
한참을 노려보던 나는 명희를 향해 말했습니다.
“네 병 내놓고 깨진 병은 네가 가져.”
그러자 명희도 노려보다가 말했습니다.
“내 병을 왜 너에게 주니? 저는 메뚜기도 안 주면서.”
“네가 내 병을 빼앗았으니까, 그렇지.”
“지가 빼앗으려다 깨 버리고는 뭘 그래.”
옥신각신 말다툼했습니다. 논에 있는 메뚜기들은 저녁이 되자 더 활발하게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햇빛이 개울 건너로 잠시 옮겨갔다가 다시 개울을 건너왔습니다. 우리들이 계속 말다툼하는 사이, 태양은 벌써 몇 번인가 우리들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이윽고 주위를 노랗게 물들이며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 위에 머물렀습니다. 우리의 다툼이 아직도 끝나지 않자, 마지막으로 얼굴을 더욱 샛노랗게 물들이며 산을 넘었습니다.
“계집애가 괜히 남자 하는 일에 참견해서는.”
“뭐 제가 그렇게 잘났다고 보여 달라면 보여 줄 것이지. 누가 아주 빼앗나.”
“시작은 네가 하고 나한테 미루고 있네?”
“그래도 남자가 되가지고서는.”
아무래도 명희의 병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힘도 세지만 여간 앙칼진 계집애가 아닙니다. 슬그머니 돌아서서 아래 논으로 가기에 다투기를 포기했습니다.
‘나쁜 계집애.’
논둑을 내려갔습니다. 병 주둥이는 두 동강으로 나고 메뚜기는 흩어졌지만, 메뚜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깨진 병을 주워 들고 흩어진 메뚜기들을 강아지풀 줄기에 다시 꿰었습니다.
깨진 유리병에 손가락이 스쳐서 피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혼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닦는 동안 후회가 됩니다.
‘차라리 산으로 갈걸 그랬지, 됫박을 가지고 왔더라면 나았을 텐데.’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가 망설여집니다. 하늘에 나타나는 별을 백 개쯤은 세어 보고 다시 물속에 잠겨 흔들거리는 별들도 세어 보았습니다. 더는 세어 볼 게 없자 깨어진 병을 들고 메뚜기 꾸러미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초승달이 건넛마을 산 위에 걸려 있습니다.
사립문으로 들어가다가 병을 돌담 밑에 숨겼습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니?”
“······.”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갈을 놓고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이 애가 어디 아픈가? 소를 굶길 생각인가.”
엄마가 쇠죽을 푸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새 베짱이가 울음을 토해냅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 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풀 꾸러미를 들고 밖으로 나와 뒤꼍으로 가서 닭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갑게 메뚜기를 쪼아 먹습니다. 돌멩이를 주워 뒷동산을 향해 힘껏 던지고 바위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턱을 고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제 본 별이 오늘도 변함없이 반짝이고 가끔 별똥별이 하늘을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이제는 초승달도 지고 밤이 점점 깊어 갑니다. 베짱이들의 소리만 요란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