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을날 이야기 2

by 지금은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추석만 되면 석지골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큰할머니 댁에 들립니다. 물론 어리니까 혼자 가는 일은 없고 아버지와 삼촌들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성묘를 다녀오는 날은 항상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지만 한 번도 가지 않겠다고 한 때는 없습니다.

삼촌들은 내가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별과 달을 보면서 돌아와야 하는데 나를 책임질 사람은 삼촌들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올 때 업고 온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이십 리 길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더구나 내가 자라면서 해마다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올해도 아버지는 아침을 드시면서 물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성묘 갈래?”

대답은 당연합니다.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러자 삼촌은 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곁눈질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흡족해하십니다.

“당연히 다녀와야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부지런히 서둘러야 합니다. 석지골에는 한 집을 빼고, 모두가 우리와 친척이라서 집마다 방문해야 합니다. 냇가를 건너서 학교 앞을 지나고 또 냇가를 지나고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가야 합니다. 개울을 일곱 번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일곱째로 태어나신 것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묘를 다녀오는 동안 갈 때는 어떻게 갔는지 늘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올 때의 일은 해마다 다르게 기억을 해내곤 합니다. 늘 밤길입니다. 큰 할머니 댁에 들르기 전에 우선 할아버지 산소를 먼저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할머니 댁을 먼저 찾았다가는 어쩌면 성묘를 못 할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산소는 큰할머니께서 살고 있는 곳에서도 산속을 따라 많이 가야 합니다.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옛날 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높은 곳에 산소를 썼을까?”

“글쎄 말이지, 좋은 곳을 놔두고 말이야.”

“이거 한 번 왔다 가려면 여간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그렇습니다. 벼르지 않는다면 이곳까지 오기란 그리 쉽지 않음을 나도 알만합니다. 어떻게 상여를 메고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그냥 오르기도 벅찬 곳을 제물을 이고 지고 올랐다고 생각하니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길도 없는 산을 짐작으로 올랐습니다. 중간중간에는 나무와 칡덩굴, 가시나무들이 뒤엉켜 돌아가기도 하고 가지를 꺾어 가며 올랐습니다. 드디어 산 위에 올랐습니다. 산과 산이 겹친 시야는 어디를 봐도 골짜기와 등성이뿐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집도 동네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위로 보이는 것은 하늘과 구름과 산봉우리뿐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겉옷을 벗었습니다. 땀을 닦았습니다.

“올라오기는 힘들었어도 명당임은 틀림없군.”

“맞아요, 막힌 곳이 없이 사방으로 탁 트였으니 말입니다. 다만 저 아래 골짜기로 물이 좀 보인다면 더 좋은데.”

힘든 것은 잊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뿐입니다.

“아버지의 매사냥솜씨는 일품이었는데.”

“그럼요, 어머니가 속상해하셨지만, 한 번 사냥을 나가면 대단했죠. 몰이꾼을 여나 명씩이나 데리고 다니셨어요.”

“마음씨는 어떠시고요. 사람 좋아하는 거야 말도 못 하지요. 집안에 늘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으니 말이요.”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삼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할아버지는 사람 좋아하고 집안 살림에는 좀 관심이 적었다는 일 외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산소에 간다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다리가 아파서 삼촌들의 등을 빌리기는 하지만, 아직도 고향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는가 싶었는데 벌써 해는 머리 위를 훨씬 지나고, 깊은 골짜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만 내려가지.”

아버지의 말씀에 우리는 일어섰습니다. 오던 길을 놔두고 가파른 내리막 골짜기를 택했습니다. 아무래도 큰할머니 댁에 가려면 오던 길로 가다간 밤이 되어서야 들릴 게 뻔합니다. 골짜기가 매우 가파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미끄러지고 나자빠지기 십상입니다. 막대기를 하나씩 짚었습니다. 해마다 떨어져 쌓인 낙엽이 발목을 덮고 때로는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우리들을 제외하고는 이 골짜기를 밟아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려오는 동안 나의 제일 즐거운 시간입니다. 골짜기에서 머루를 따 먹고 다래도 따 먹고, 형이 원숭이처럼 줄기에 매달려 으름도 따 줍니다. 나는 머루, 으름, 다래 중에 으름을 제일 좋아합니다. 꼭 키위 색깔을 하고 바나나 모습을 하고, 아람 벌어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먹지 않아도 만지지 않아도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형은 으름만 보면 덩굴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열매를 따서 나에게 던져 주곤 했습니다. 입을 쫙 벌리고 들어낸 흰 속살이 입안으로 들어가면 까만 씨들이 입안에서 감돌지만, 그 향기롭고 보드라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귀하다는 산나물과 약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열매와 뿌리들은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나물이나 약초를 채집하러 이곳까지 오는 사람이 없겠다 싶습니다. 석지골 사람을 제외하고는 짐작하지 못할 테니까요. 우리들 또한 별 관심들이 없습니다. 억지로 발견하지 않으려 해도 가끔 발밑에 밟히는 더덕과 도라지가 삼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힘들여 캘 필요도 없습니다. 갖고 싶은 생각이라면 줄기를 잡고 쓰윽 위로 잡아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한 대로 어렵지 않게 뽑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낙엽을 헤치고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을 팔 필요도 없습니다.

큰 할머니 댁에 가면 식사 관계로 미안해하는 아버지께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찬거리는 걱정 없다. 고기반찬은 아니겠지만 밥 안쳐 놓고 앞산에 가면 나물은 천지이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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