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겨울날 이야기 1

by 지금은

눈이 내리는 밤이면 우리 집에는 어김없이 마을 사람이 모여듭니다. 어느 때는 남자 어른이 사랑방에 모여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여자 어른이 안방에 모여들기도 합니다. 잡담하기 위함도 아니고 놀음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어서 먹을 것을 생각하며 모여드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대부분 자신이 해야 할 일거리를 가지고 옵니다. 겨울밤에 꿍꿍거리며 혼자 일하기에는 지루하고 능률이 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핀잔을 듣기는 해도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 모이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옛날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불편한 날씨에도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나서서 입담 좋게 떠들어대는 일은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도 몇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몽당연필을 빼앗아 침을 잔뜩 묻혀 가며 종이에 소식을 적을 수도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 대부분은 겨울밤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직접 읽는 것까지는 사양하는데, 마지못해 책을 들었다 하면 정확하게 몇 분 못 가서 주위 사람들이 하품하거나 함께 눈까풀이 감기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삼촌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낭독의 전문가입니다. 삼촌이 책을 읽다가 목이 아프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대신 읽을 것을 권유하면 자신 없다고 꽁무니를 뺍니다.

“감기에 걸려서 말이 잘 안 나오네.”

“나는 원래 목소리가 좋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손사래를 칩니다.

우리 삼촌은 조선시대에 비유하면 같으면 전기수(傳奇叟)에 해당한다고 해야겠습니다. 장날 한구석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삼촌이 책을 낭독하다 보면 사람들은 어느새 장면에 빠져들고 맙니다. 기쁠 때는 손뼉을 치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제 일 인양 일어나 발을 구르며 좋아라 손이 머리 위까지 올라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합니다. 또 슬플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슬픈 감정을 내보입니다. 이 모든 사람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삼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성우쯤이나 된다고 할까. 어쨌든 글을 읽는 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무엇인가 있나 봅니다.

가끔 우리 동네에 찾아와 자고 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넋을 잃고 소리에 열중합니다. 물론 그중에는 무식한 사람도 있고 또 아는 것이 많은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같이 떠날 때는 감탄을 하고 갑니다.

“시골에서 썩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야, 좀 배웠으면 큰일을 할 재목인데, 참 아까운 분이군.”

나는 삼촌이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항상 잘 때는 삼촌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드는 버릇이 있는데 이야기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하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에 잠을 자야 할 때마다 불편을 느낍니다. 가끔 이야기 소리나 사람들의 소리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골을 내기도 하고 심통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삼촌은 좀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역정을 내곤 했습니다.

“이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들 하는 일에 끼어들어.”

“이제 다 큰 녀석이 아직도 삼촌 무릎을 베고 자다니.”

“글쎄 말이야, 내년에는 학교에 들어가야 할 녀석이, 우리 집 민식이는 세 살인데도 저 혼자 잔단다.”

혹시라도 우리 삼촌이 책을 읽은 것을 멈추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서이겠지요.

어느덧 밤이 늦어 이슥한 시간이건만 어른들은 일어나 집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 끝나지 못한 이야기를 다 들어야 속이 후련하기 때문입니다.

‘이 녀석, 홍련인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걱정도 안 하고 심통만 부리고 있어.’

나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습니다. 홍련인가 죽으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오늘은 새벽이 온다 해도 죽지는 않습니다. 삼촌의 이야기 실력으로는 아마 내일모래쯤이 돼야 죽을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온 지도 벌써 여러 해입니다. 역시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알고 있습니다. 처음 우리 동네에 이사 오는 사람이나 장가를 들어 늦게 참가한 사람들을 빼곤 말입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삼촌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기분에 휩싸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읽는 동안 잠깐 멈추라고 하고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에 대해 비평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며,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급하게 전개될 때는 삼촌에게 좀 더 빨리 읽을 것을 재촉하기도 합니다. 소피가 급한 사람은 참다못해 내가 일을 보고 올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좀 멈추라고 합니다. 삼촌은 그때마다 사람들의 심리 파악을 잘하는지 늘 동네 사람들을 긴장감에 휩싸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편하게 속도를 조절해 나간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늘 뜻한 대로입니다.

동네 사람이 모여들어 책을 읽을 때면 밤사이에 언제나 긴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고,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 멈춰 버렸습니다. 삼촌은 휴식 시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광덕산 발매 장에서 출발한 트럭은 나무를 가득 싣고 앞개울을 건널 때마다 요란스러운 굉음을 내며 다리 없는 자갈길을 용트림하듯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겨울마다 계속되는 발매는 벌써 여러 해째입니다. 나는 언제부터 광덕산 발매가 시작됐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왠지 할머니가 짜증스럽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석유를 한 등잔씩 들고 오게. 석유를 감당할 수가 있어야지.”

갑자기 등잔불을 꺼버리자 잠시 방 안이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자 달빛과 별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아니, 눈빛도 있습니다. 등잔불만은 못해도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찬바람 들어와 문 닫아.”

누군가 다시 등잔불을 켰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석유를 가지고 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석유를 한 방울이라도 가져온 사람은 없으니까요. 할머니는 말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야겠다고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이 사람들아, 그래도 낯짝이 있어야지. 하루 한 날 그냥 오나. 우리 집 동치미는 바닥이 나게 생겼네 그려.”

동네 사람들은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웃어넘긴답니다. 우리 집에는 봄이 올 때까지 동치미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할머니는 늘 이야기가 중간에 멈출 때마다 부엌으로 나가시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할머니는 자식의 이야기를 무척 좋아 하지만, 삼촌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을 흡족해하십니다.

또 방으로 들어오시면서 항상 동네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뭐 줄 게 있어야지, 오늘도 동치미일세. 시원하게 한 쪽씩 먹고 가게나.”

할머니는 큰 양푼에 살얼음이 붙은 팔뚝만 한 동치미를 가득 담아 상에 받쳐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일 때에는 앞집 아저씨를 불러서 상을 들게 하시기도 하시지만 어찌했던 할머니의 손은 항상 크셨습니다.

“아이고, 아주머니. 이거 미안해서.”

“아이고, 우리 누님은 항상 인정이 많으셔.”

각자 한마디씩 하는데 사실 우리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아주머니 누님, 언니, 형님 등으로 통합니다. 이리저리 따져 보면 친척의 친지에 사돈의 팔촌에 안 걸리는 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시집을 가고 가자마자 다시 또 이곳에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이파리가 그대로 붙어 있는 동치미를 부엌칼로 죽죽 갈라서 한 사람에 하나씩 돌리기 시작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오기도 하지만 동치미를 먹으려고 오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동치미 담그는 실력은 동네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선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나의 짜증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졸음은 자꾸만 밀려오는데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웃어대는 소리에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몇 번인가 다른 방에 가서 자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어느새 잠이 달아나는지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오줌만 자꾸 마려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동치미를 먹고 국물을 마시고도 돌아갈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제 슬슬 시작하시지요.”

할 일이 없을 때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 하는 아저씨가 슬그머니 운을 뗐습니다.

“그만들 가서 자야지, 내일 할 일들도 있을 텐데.”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아저씨의 말을 거들었습니다.

“눈도 많이 오고 내일이야 뭐 특별히 할 일들이 있나? 정 할 일이 있다면야 나무가 떨어진 집은 산에 가서 청솔가지 한 짐 해 오면 되지.”

“더구나 달도 밝고 별도 초롱초롱하니 싱숭생숭 잠이나 오겠어요. 차라리 낮잠 자는 게 낫지.”

“그래 맞아. 어서 읽게.”

삼촌은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할 수 없지, 먹여서 쫓아 버리려고 했는데 가지도 않고 우리 집 석유는 바닥이 나겠다. 내 일부터는 아예 불일랑 켜 생각을 말게.”

“아이고, 아주머니. 농담도, 그러면 내일은 이야기를 어떻게 들으라고.”

다시 삼촌의 이야기책 넘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삼촌을 조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래봐야 동네 사람들로부터 꾸중이나 듣고 못난이라는 핀잔만 들을 테니까요. 슬그머니 무릎에서 일어나 삼촌 뒤로 기어서 고구마 통가리로 올라갔습니다. 잠을 자기에는 이곳이 가장 아늑할 것입니다. 긴 수수깡을 엮고 안에 볏짚으로 덧대었기 때문에 불빛을 막아 주는 것이 잠을 자기에는 괜찮습니다. 다만 눕다 보면 고구마가 등에 배겨서 불편하지만, 그것도 잘 피해서 모로 눕는다면 뜨끈뜨끈한 아랫목만은 못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집에서는 급한 대로 잠들 수 있는 곳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분명 이야기의 전개되는 내용이 심각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쯤이 내가 잠들기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삼촌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해도 마음을 삭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돌아가면 삼촌은 새우잠을 자는 나를 통가리에서 반짝 안아 내려 늘 하던 대로 아랫목에 자리 잡아 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나 되어야 돌아갈까? 사실 나는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잠이 들어도 사람들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지 잘 압니다. 분명 새벽닭이 막 울기 전, 또는 다른 나무를 가득 실은 자동차가 냇가를 지나갈 때입니다. 사람들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어나 군불을 지피고 마당과 사립문 앞길에 쌓인 눈을 치울 것이니까요.

진짜로 발매터에서 나무를 실은 차가 냇가를 지나가는가 봅니다.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의 말씀도 잠결에 어렴풋이 들립니다. 안 봐도 안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다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밤엘랑 오려거든 그냥 오지 말게나. 나이 많은 늙은이가 자네들 시중만 들어서야 하겠나.”

“예, 알았어요.”

“눈이 많이 왔네, 그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눈 쌓이는 것도 몰랐어.”

앞서서 신발을 신는 사람의 이야기를 선두로 한마디씩 하면서 집으로 향합니다. 할머니의 푸념도 시작됩니다.

“얘, 눈이나 좀 붙여라. 남는 것도 없이 밤을 새웠으니 원. 내일부터는 아예 사립문을 걸 어 닫아야겠나보다.”

삼촌은 나를 안아 내리고 못 이기는 척 내 옆에 모로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삼촌 옆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참고 참았던 오줌도 누어야 하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군불 때는 소리가 시끄러워 눈을 감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다 압니다. 오늘 밤에도 어제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내일 새벽이 되면 또 같은 말을 하시리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들은 내년 봄 준비하기 전까지는 올 것이고 오늘은 장마당을 다녀온 누군가 삼촌의 손에 새 이야기책을 들려줄 것입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며 할머니의 정답을 기억하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사립문을 걸어 닫으려면 오늘 밤부터 해야지요.”

할머니는 혀를 차셨습니다.

“이 녀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오는 것을 싫어하면 되냐? 아직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도 안했는데 저녁 먹고 왔다가 사립문 걸어 닫은 것을 볼 때 너라면 좋겠니.”

“할머니가 먼저 그렇게 말하고 뭘 그래요.”

“그래도 그렇지, 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식구들인데.”

할머니의 옆에 쪼그려 앉아 아궁이 앞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바람이 ‘휙’하고 궁둥이를 돌아 나뭇간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의 답은 틀림없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책이라도 사 오라고 해야지.”

이것도 틀림없는 정답입니다. 신작로에 눈이 어느 정도 녹으면 사람들은 나뭇짐을 지고 넙티 고개를 넘고 그중에는 누군가 이야기책을 또 한 권 사가지고 올 게 분명합니다. 삼촌이 읽는 이야기가 다 끝나 버리면 안 되니까요.

‘참 참았던 오줌을 누어야겠어요.’

나는 외양간을 돌아 두엄더미로 향했습니다. 바지를 내리고 앞에 있는 오동나무를 향해 힘을 줍니다. 고개를 드니 가지 사이로 샛별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이겠지요. 무르익는 겨울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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